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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땃쥐쓰 Feb 23. 2020

1-1

우리는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나의 마음속에서는 1차 프러포즈에 해당하는 중요하고도 단순한 대화를 나눈 뒤 아직 한 가지 주제가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결심은 전부터 만들어져 단단해져 있었지만 입밖에 내어 나의 가치관이 우리의 미래가 되도록 하는 일. 결혼식에 관한 주제이다. 우리가 여행을 간다면 결혼식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일단 우리는 돈이 없었다.

오빠는 학자금 대출을 낀 대학원생이었고 나는 박봉 중에 박봉이라는 아뜰리에(소규모 설계사무소) 직원이었으며 둘 다 근검절약을 모토로 살고 있지도 않았다.

퇴사 당시 손에 쥔 목돈은 이 천만 원. 천만 원을 후일을 위해 남겨두고 남은 천만 원은 결혼식과 나의 꿈, 나의 로망, 세계여행을 둘 다 이루기에는 작은 돈이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결혼을 포기했다. 아니, 여행을 선택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결혼식에 로망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나는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는 몸매와 얼굴인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리고 코스프레 1세대로써 웨딩드레스보다 파격적이고 화려한 의상을 만들고 입어봤다. 느껴보고 싶은 관심도, 사진 세례도, 주인공이 된 기분도 충분히 즐겼었다. 결혼식 하루 예쁜 화장과 옷을 입고 고작 몇 시간 손님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뜻밖의 덕후의 순기능)


- 결혼식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나는 우아하고 조신한 계열의 사람이 아닌데 세상 가장 참한 표정을 짓고 손님을 맞고 아버지의 손을 따라 입장하여 남편의 손에 인수인계되는 일련의 상징적 과정은 나의 일생을 조금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행사처럼 느껴졌다. 나는 건어물녀로 태어나 미대와 공대 넘나들며 가치관을 만들어왔고 다소 거칠은 언행과 장남 같은 무뚝뚝한 태도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장안에서만큼은 내가 아닌 다른 가면을 쓰듯이 '신부'로써 기능하는 것이 너무 오글거리게 느껴졌다.


- 그 와중에 그 행사는 중요도에 비해 너무 짧고 비쌌다. 도저히 그런 원하지 않는 일을 천만 원쯤 들여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나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스무 살 이후 타인의 결혼식 장에서 느껴왔던 작은 불편함 들은 나를 다른 방향의 미래로 이끌었다.


나는 결혼의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증명한 작은 반지 한 쌍 정도였다. 스튜디오 촬영도, 스냅사진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아중에 함께 사는 집에 결혼액자를 걸고 싶다면 여행 중에 잘 나온 엽짤(!)을 크게 뽑아 걸기로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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