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용 Oct 06. 2018

아빠가 알아듣지 못해서 미안해.

아기 재우기 실패한 날

요즘엔 잠자는 시간 뒤에 꼭 '씩을' 붙인다. 예전엔 변명거리였다면 이젠 자랑거리다. 내 하루 일과는 직장동료들에게 자랑하면서 시작한다. '어제는 4시간 씩이나 잤다?'. 이제 직장 동료들은 내 수면 패턴을 외울 정도다. 눈 밑 다크서클과 멍한 표정만으로도 수면 시간을 맞출 정도다. 혹여나 내가 말을 걸지 않는 날이면, 먼저 묻곤 한다.



"오늘은 한 숨도 못 잤나 봐?"



맞다. 아기가 도무지 잠을 자지 않는다. 어제는 새벽 1시부터 울기 시작했다. 눈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통에 우는 모습에 아기를 들춰 업었다. 아기 보느라 하루 힘들었을 아내가 깰까 싶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높이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보통 이렇게 하면 그만 울음을 그친다. 보통날이었으면 글로 쓰지도 않았을 거다.



뭘 해도 애가 안 그친다. 3시가 넘은 시각까지 울어 댄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봤다. 내 포털 사이트 검색기록 1번이 '아기 재우는 법'이고, 2번이 '아기가 안 잘 때'다. 찾아낸 공통적인 방법은 아기에게 백색 소음을 들려주기였다. 아기가 자궁에서 듣던 소음이 백색소음이라며 편안해한다나.



새벽 3시에 헤어드라이기를 켰다. 위잉 소리가 들리자, 민폐라는 생각에 심장이 쫄깃해졌다. 다행히 오늘은 이 건물에 우리 가족뿐이다. 옆 집 어르신들은 따님 네로 놀러 가셨고, 윗집은 새벽 장사를 한다. 드라이기 바람에 방이 후끈해져 와도 아기 눈은 말똥거린다. 유튜브 영상을 재생해보기로 했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 비 오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조약돌 사이로 물 흐르는 소리 등 전국 각지 물소리가 나왔지만 아기는 울기만 한다. 인터넷 카페에서 본 방법대로 '쉬'소리를 20분간 내봐도 안된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이쯤 되니 아빠는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뭘 잘못했지?" "뭐가 잘못된 거지?" 머릿속 영상을 되짚어봐도 모르겠다. 꼭 연애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뭐만 하면 "진짜 뭐 잘못했는지 몰라?"라고 묻던 전 여자 친구 현 아내님. 아기도 똑같이 나에게 묻는 듯했다. 이게, 기선 제압을 하나.. 지금 보니 딱 눈매가 똑같은데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착한 날 좀 닮지.


창 너머로 컴컴하던 하늘이 파랗다. 날이 밝았나 보다. 소파에 누운 내 배 위에서 칭얼대던 아들도 축 늘어졌다. 지쳐 잠든 모양이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 볼록한 내 배에 내려앉은 것 같다. 잠자는 모습이 제일 이쁘다.


이 밤도 길었다. '응↗애↘' 다르고 '응↘애↗' 다르다던데. 나에겐 둘 다 '응애'다. 현석아, 아빠가 미안해. 못 알아들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똥 기저귀 위에서 발버둥 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