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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 Max Sep 06. 2020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가 #2

성장의 모습과 한계, 그래서 아름다운.

앞선 글(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가 #1)에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70여 개의 회사들이 성장하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지켜봐 왔다. 어떤 기업은 잘 성장하고, 어떤 기업은 그렇지 않았다. 계획대로 성장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A사는 소풍의 시드 투자 이후, 6개월 만에 수십 억 원의 자금을 투자받으며 급성장하는 곳이었다. 1년 만에 직원 숫자는 50여 명을 넘었고, 또다시 수십 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 대상지를 빠른 속도로 넓혀나갔다.


B사는 어려움 끝에 PMF(Product Market Fit)를 찾고 매달 성장세를 이어가던 곳이었다. 빠른 실행력이 돋보이는 Lean Startup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큰 자금은 아니었지만 또 한 번의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나가던 곳이었다.


큰 기대를 걸었던 두 기업은 결국 내리막길로 향했다. 임팩트를 유니콘급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애정을 갖고 투자했던 기업들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은 안타깝다는 말보다는 허탈함에 가깝다. 짧은 시간 내에 문을 닫은 곳이나, 긴 시간 생존하다 결국 사업 중단을 선언하는 곳까지 그 팀들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알기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은 참 어렵다. 1950년~2009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에서 거래된 기업들 중 대다수(거의 97%에 해당)가 50년 안에 문을 닫았다. 그중 절반은 10년 도 안되어 망했다. 


물론, 잘 성장하고 있는 회사들도 많다.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는 C사는 창업이래 거의 매년 흑자를 기록하더니 어느덧 배당을 하기 시작했다. 기술과 제품 개발에 힘쓰던 D사는 2년 만에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내자마자 의미 있는 매출은 물론이고 큰 금액의 후속투자를 유치하며 순항 중이다. 



왜 성장인가? 

지금까지 목격해온 기업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성장을 꿈꾸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업은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비용이 매출보다 크다면, 그 기업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매출에서 비용을 제한 나머지가 결국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익'을 통해서 설명된다. 


이 기업들은 왜 성장하려 했을까? 달리 말하자면 왜 이익을 얻고자 노력했을까? 이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이익을 내는 것은 기업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이기 때문이다. 왜 이 기업을 창업했는지와 같은 동기에서 비롯된 기업의 비전과 미션 등은 조직이 유지되고 성장해야만 달성이 되는 것이다. 여러 수단들 중에서 굳이 기업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창업가들이 어떤 동기나 비전을 갖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기업은 이익을 내야 의도한 일들을 달성할 수 있다. 


두 번째 답은 규모는 효율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규모를 지향한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효율성을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한 합보다 크다. 조직이 보여주는 경제성, 창의성 등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많아질수록 상호작용 역시 증가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더 높아진다. 기업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존재 목적을 더 잘 달성할 수 있다. (다만, 효율성의 증가 기울기가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의 효율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조직론의 설명이다.) 




성장은 어떤 모습인가? 

어떤 성장이라도 한계에 부딪히며 꺾이게 되고, 내리막을 걷던 기업들은 성장으로의 반전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 무너지는 피투자사를 지켜보아야 할 때다. 알다시피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한다.
가장 기쁜 순간은 내리막을 걷다 다시 성장할 때다.


정체나 지속적으로 성장하거나,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는 고객의 드나듦이나 지표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성장이든 정체든, 내리막이든 성장은 다음의 세 가지 모습의 변주다. 


지속적으로 이런 상태가 유지되기란 어렵다.


주지해야 할 것은 '성장을 지향'해도 필연적으로 정체나 내리막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흥망성쇠나 성장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S곡선이다. 그 단계나 속도가 다를 뿐 기업의 성장은 S곡선을 따른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유기체들은 물론이고, 기업과 같은 조직들은 초기의 태동기를 지나면, 급속도로 확산/성장하는 시기가 있고, 그 뒤에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성장의 속도나 크기는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앞서 내가 목격했던 성장들도 큰 틀에서 보면 S곡선의 단면 들일뿐이다. 

유기체는 물론이고 조직은 S곡선의 성장을 따른다. 


왜 그럴까? 물리학은 그 답을 이야기해준다.  



성장의 열쇠 : 무질서와 열린계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은 '질서를 생성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쓰거나 처리할 때마다 무질서, 즉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자연계는 물론이고 문명계도 피해갈 수 없는 이 법칙에 의하면, 기업은 엔트로피에 의해 필연적으로 무질서해진다. 그래서 기업가들은 자원, 사람, 문화 등의 새로운 동력을 지속적으로 조직에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의 무질서함이 줄어들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들이 투자유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익이 아니라면 투자 등의 외부자금 조달을 통해서만 기업이라는 조직은 에너지(자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에 빗대어 정리하자면, 어느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조직이라는 닫힌계를 열린계로 유지해내느냐가 관건이다. 성장은 조직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활용하여 의도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질서를 만드는 일이기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일해도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엔트로피라는 이유가 숨어있다.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표자들이 조직관리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직은 가만히 놔두면 자연적으로 무질서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다. 



성장의 한계 

그렇다면, 에너지가 무한정 투입된다면 조직은 계속 성장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물리학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유기체인 인간이 20대에 접어들면 더 이상 키가 크지 않는 것처럼 조직의 성장도 어느 지점을 지나면 정체를 거쳐 소멸의 단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투입된 에너지는 기존의 성장을 유지하는 데에 사용되거나 새로운 성장을 위해 사용된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에너지는 유지 혹은 생장에 쓰인다. 규모가 커지면 유지 관리에 쓰이는 에너지 역시 현격히 늘어난다. 효율성이 이전보다 떨어질뿐더러 다양성 등 여러 요인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지에 쓰이는 에너지가 늘어난다.


그에 맞춰서 투입되는 에너지/자원이 늘어나도 효율 및 속도의 차이로 인해 결국 성장은 한계에 다다른다는 것이 물리학의 결론이다. (자세한 것이 궁금한 분은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Scale)'을 권한다. 참고로 두꺼운 책이다.) 


고층빌딩으로 예를 들어보자. 인류가 지은 고층빌딩들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높은 건물은 높이 830m의 부르즈 칼리파다. 이 높은 빌딩의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예전에는 없었던 고강도의 강철, 시멘트 등의 원재료와 새로운 시공법 등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이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람이나 무게 같은 내 외부의 압력을 받아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즉, 인간의 키가 무한정 커질 수 없는 것도, 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투입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낼 수 있는 모세혈관 등의 구조로 인한 한계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따라서 에너지가 무한정 투입된다고 가정해도 모든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다음과 같은 그림이다. 성장에 한계가 있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아래의 그림과 같이 S곡선을 지속적으로 겹쳐 쌓아 올리면 된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아이디어다. (나는 연관성이 떨어지는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리는 거대한 기업집단이 탄생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S곡선을 쌓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무수한 S곡선을 계속 겹쳐서 쌓아 올리면 된다는 생각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img=Evolution of a Product, Sequoia Capital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떤 모습의 성장을 준비하든, 지금 어떤 단계에 있든 왜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성장은 공허하다. 한계가 명확할수록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목적이 분명해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하다면 심지어 현상유지/정체 자체가 전략이 될 수 있다. 무한정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아름다운 성장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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