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다가 위로를 받았다
레빈에 의하면 어떤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정착되어 있는 조직은 ‘해동-혼란-재동결’의 과정을 거쳐 변화한다. 여기서 이 프로세스가 ‘해동’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해동이라는 것은 바로 ‘끝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앞으로의 일을 ‘시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쿠르트 레빈의 지적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즉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18번째 무기,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철학을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쿠르트 레빈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누구인지도 모르는 철학자에게 위로를 받았다.
퇴사를 고민할 무렵 ‘시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한 주에 주제 하나를 계속 썼으니 시작을 주제로 한 글이 7개다. 그중 「나는 어리석은 원숭이였다」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있다. 그 역시도 당연한 말이다. 그 당연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이 좁은 병 속에, 간식이 들어 있어서.**
그때 나는 퇴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을 때였다. 마음으로는 결정했어도 말로는 꺼내지 못할 때였다. 그 글을 쓰고 2개월 뒤, 퇴사를 선언했다. 그리고 또 2개월이 흘렀다. 퇴사 후 한 달은 퇴사가 별로 실감 나지 않은 채로 흘렀다. 또 그 뒤로 한 달은 외주 작업을 하면서 보냈다. 나, 퇴사한 거지? 가끔 그렇게 자문하기도 했다. 어딘가 찜찜한 게 남아 있었다.
요 며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면서부터였나.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 신청하라는 우편물을 받고부터였나. 이제는 정말 퇴사가 피부로 통장으로 와 닿았다. 내가 잘한 일이었을까. 아니라고 한 들 돌아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상태로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이전의 나와 종지부를 찍은 것이구나.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미 서류상(전산상) 근로자 신분이 종료되었고, 이를 증명하듯 매번 우편이 날아왔는데도, 나만 혼자, 내 마음만 혼자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미련이었을까.
이제는 털어버려야겠다. 미련이든 그리움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털어버리고, 혼란과 재동결의 단계로 넘어가야겠다.
*출처_ 야마구치 슈 저, 김윤경 역,『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151쪽), 다산초당, 2019
**내가 내 글을 인용하는 날이 오다니.
https://brunch.co.kr/@damhae/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