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설 : 남녀의 정다운 이야기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에 선잠을 이루었다. 창문을 열어 가을을 반겨본다. 완연한 가을의 새벽공기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쌀쌀했다. 선선함과 쌀쌀함은 명확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선선함은 왠지 포근한 느낌을 기본 베이스로 하여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쌀쌀함은 서늘함이 주된 재료라서 차가운 이미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체활동이 활발한 대낮시간에 따사로운 햇볕아래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선선함이라면 해가 뜨기 전 풀잎 위로 서리가 맺힌듯한 느낌이 쌀쌀함에 가까운 형상이다.
가을은 선선함과 쌀쌀함이 공존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선선함보다는 쌀쌀함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봄이 선선함이라면 가을은 쌀쌀함에 가깝다. 그래서 봄과 가을은 닮은 듯 다른듯하다. 봄은 사계절의 시작만큼이나 만물의 시작을 뜻하는 반면에 가을은 이유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에 접어들어서야 고독이라는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고독과 가을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고독과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가을은 서로가 서로에게 누가 더 신세가 처량한지 싸우는 것처럼 퍽이나 닮아있다.
그러고 보면 고독함을 즐기는 편이다. 고독함이란 게 가을처럼 불완전한 상태에서 찾아오곤 한다. 그렇기에 이 시기가 아니면 다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고독이 찾아왔을 때에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마치 떠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며 사랑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행복을 잠시 느꼈다가 결국은 혼자임을 깨닫고서는 알게 되는 그러한 씁쓸함이 가져다주는 감정을 곱씹는 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자면 이런 혼잡한 감정에 빠졌기에 잠시나마 당신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깐 이러한 고독함을 가져다준 가을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싶다. 아니면 이렇게 가을에 고독함을 알게 해 준 떠나가버린 시월의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고독한 만큼이나 적막한 방안에 듣지 못할 궁금증들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어떠한 미래가 두려워서 헤어지게 된 것일까. 우리가 조금만 더 늦게 만났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우리는 서로가 만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한때는 서로에게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존재였는데 이제는 마음속의 온기가 길을 잃어 방황한다. 그렇게 한번 식어버린 마음은 도저히 여분의 사랑을 불태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을은 이렇게나 위험한 존재이다. 사랑이라는 불씨조차도 꺼지게 만드는 존재이니 말이다. 낮과 밤, 따뜻함과 차가움, 가을의 일교차가 무너지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다가오면 고독이라는 감정도 떠나갈 것이다. 뚜렷했던 온도의 경계가 무색해지는 만큼 감정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당신을 사랑했던 감정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