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기리 Nov 13. 2024

취기가 오른 밤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모은 글

중고거래로 소파를 장만하기로 했다. 소파를 사기까지 이것을 사야 할까, 아니면 굳이 불필요한데 사지 말아야 할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했던 이유는 비좁은 원룸에 소파를 들어놓는다는 것은 더 이상 집이 아니라 온갖 쓸모 있는 것들이 모여 오히려 쓸모없는 형태로 거듭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큰 마음을 먹고 소파를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소파를 구비하게 된 이유는 누군가 집에 찾아왔을 때 차가운 방바닥에 대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였다. 또한 이렇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었다.


소파를 옮기기 위해 친한 친구를 불렀다. 소파는 무겁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들기에는 애매했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렇듯 살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같이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친구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소파를 옮겼고 친구가 손을 내밀어주는 김에 방 구조도 재배치했다. 새롭게 방이 꾸려졌을 때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만 친구를 보내주고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 산 소파에 앉아서 맥주 캔을 땄다. '취익' 오랜만에 듣는 기분 좋은 소리가 설레게 만들었다. 한 모금 두 모금 맥주캔이 비어져 갈 때마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채울 수 없는 허기짐이 찾아왔다. 방안에 가득했던 온기가 한순간에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듯 찾아오는 공허함에 대해서 나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떠나가버린 친구의 뒷모습처럼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적적함으로 아롱지었다. 나는 왜 늘 적막함을 견디지 못하여 삐끗하듯 넘어지며 그림자를 밟아 어둠 속으로 이끌려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은 원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천성이었을까. 갑자기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웠다.


별거 아닌 긴 고요 속에 울컥하듯 감정이 기울었다. 방안에 혼자 않아 나에 대해서 읊어본다. 밤을 넘어서 새벽이 다가올수록 바래진 기억에 먼지를 툭툭 털어내듯 지나간 이야기에 대해서 꺼내어본다. 나의 이야기는 참으로 단조롭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늘 한정적인 사람으로 특정되었기에 더 이상 꺼내 볼 사랑이야기도 없었으며, 이별 또한 매한가지였다. 그 외적인 것은 늘 삶에 대해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이야기가 끝이었다. 이것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너무나도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런 내용을 가지고 글로 다룬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이가 적지 않은데 무엇하나 쓸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비루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찬란한 삶을 살았다면 달라졌을까. 그랬다 하더라도 별반차이가 없으려나. 인생이라는 것이 마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허상 같았다.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지. 도저히 해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까. 아니면 우리가 태어남으로써 받아들여하는 이전의 생에 대한 업보일까. 그렇다면 어딘가에 저물어 버린 이전 생의 기억을 마치 원피스를 찾듯 찾아야만 비로소 끝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이 맥주가 뭐라고 거울 비친 내 모습에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처량함의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도태되어 살아가는 삶이 이런 기분일까. 이것은 그리움일까.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을 원하지 않는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도 거울 속에서 보였다. 숨 죽여 우는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시간에 기대어 나를 달래는 모습이. 문득 불어는 바람에 허전함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너란 존재가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도 힘든데 너는 어떻게 지내니. 가끔은 이렇게 나처럼 지지리 궁상을 떠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 가끔은 밉지만 사랑한다는 말, 그 말,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데 말이야.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무리 보고 싶다고 외쳐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이 세상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야. 어느 날 문득 눈을 떴을 때 네가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미 늦어버린 것을 알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우리를 좀 더 담아 보려나. 사랑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데 왜 사랑에 대해서 갈구하는 것인지. 사랑이라는 불안정한 감정에 대해서 왜 그렇게도 하나같이 원하는지. 아직 남겨진 사랑이 많은데 이렇게 끝이 난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나는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서 살아가야 할까. 끝없는 방황이 삶이 내게 주어진 의미라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술기운이 달아올랐다.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하고 눈앞의 초점이 흐려진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힘이 부친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온다. 온 힘을 다해 지금 생각들이 떠나가지 않게 붙잡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지난 전생에 대한 기억이 잠시 옮겨와서 적어 놓은 글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사라질 기억에 대해서 적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술김에 적는 이 글들이 지난 생에 이루지 못한 것들, 스쳐갔던 사람들, 부귀와 영화 모든 것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적어 써 내려 가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한낱 인간이 신에 대한 영역, 아무도 가보지 못한, 증명되지 않는 과학에 대해서 반하는 글이지도 모른다.


(@912_gukilee)


이전 10화 우리가 잊어버렸던 사랑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