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는 마음. 온전히 믿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더 큰 용기는 없다. 취업의 실패, 사업의 실패, 결혼의 실패, 모든 실패들 속에서 밑바닥은 드러난다. 감정은 불완전한 상태로 놓인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주변으로부터 어쭙잖은 조언을 듣게 되는 가장 좋은 시기가 된다. 조언이라고 쓰고 폭언이라고 부르고 싶다.
말을 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도 아니 되고 그렇다고 가벼워서도 안된다. 항상 중심이 잡혀있어야 한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말을 하기에 앞서 신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조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언을 할 때에는 과연 자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위치인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나 현재 겪고 있는 심정, 또는 이해관계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과연 자신이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봐야 한다. 이렇듯 조언이라는 것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반면에 믿음이라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이다. 믿음을 주는 것에는 말로 주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는 마음을 말이라는 포장지에 감싸서 주는 것이다. 말이 아닌 눈빛, 행동, 은연중에 드러나는 뉘앙스나 느낌들도 믿음을 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즉 믿음의 본질은 마음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소홀 해진듯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느새 남을 깎아 내리려는 질투심이 사방에 만연한 삭막한 공간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자라난 우리라서 그런지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일도 서툴다.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까 싶다. 우리가 잃어버린 믿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다. 사랑을 주는 일도, 사랑을 받는 일도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폐해진 세상에서 더욱이 사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사랑 앞에서는 그릇된 일도 용서가 되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부모님께 상처를 줬던 일들도, 학창 시절에 선생님께 반항했던 일들도, 사소한 일들로 연인에게 아픔을 줬던 일들도, 이 모든 것은 사랑 앞에서 티끌 같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스승의 은혜, 부모님에 대한 효, 연인들의 애정, 이런 단어들은 결국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잊어버렸던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더 일깨울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사랑을 방치해서 잃어버려서는 아니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랑 없이니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사랑을 아끼지 말자. 비록 마음을 주는 것이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지라도 기꺼이 베풀어 살아가는 것도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