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만 가는데 잠들지 못한 이유는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보내버린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루 중에서 무엇을 붙잡고 싶었기에 눈을 감아도 더욱이 선명해지는 것인지 마치 어두운 방안에 환한 조명이 켜진 듯하다. 이것은 뇌에게도 신호가 전달되어 뇌에게 활력을 불어준다. 뇌의 연산속도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연산속도가 너무나도 빨라서 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온다. 멈추려고 해도 가속이 붙어버린 뇌는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만두겠다는 생각마저도 뇌의 연산에 힘을 불어넣는다. 생각의 연료는 이런저런 생각으로부터 빌려와 점점 불어난다. 거대해진 연료를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할 수 있다면 점등스위치를 끄는 듯 딸깍 소리와 함께 뇌의 신호를 꺼버리는 것이다.
이런 병이 도진 이유는 관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예기치 않은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존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눈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끔은 별게 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왜 비가 내렸는지, 책상 위에 놓인 컵은 언제부터 저 자리에 있었는지, 빨간 우체통은 중요한 소식을 무사히 잘 전달해주었는지,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가로등이 발길 닿는 곳까지 비춰주는지, 닫혀있던 마음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렇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관찰을 넘어 관심이 되어갈 때에는 마음에 생긴 틈이 커지기 시작한다. 관찰 대상에 감정이란 것을 이입하게 되었다. 나란히 발을 맞춰 걸을 때에도, 손등에 스쳐가는 온기에도,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살냄새에도, 마주 본 얼굴에서 다가오는 옅은 숨에도 모든 것에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는 항상 마음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대라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서로 줄다리기하듯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에게 이끌리게 될 때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비로소 좋아한다는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알기까지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심장의 혈관이 급속도로 확장되어 정상적인 뇌의 사고활동이 마비되는 것, 머리보다 마음이 더 빨리 반응할 때 우리는 첫눈에 빠져버리곤 한다.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이 전달되는 것,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을 끊는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끊으려고 다짐을 하는 순간부터 그 대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떠올랐기에 그 대상에 대한 감정도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네 시선에 떨리는 것도, 당신의 눈 속에서 사랑을 보았을 때에도, 끝내 입술이 포개어졌을 때에도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흘러가는 장면처럼 생생하게 감정이 살아있다. 그래, 이것은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