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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리 Nov 20. 2024

너의 언어를 닮고 싶어졌다.

연애가 하고 싶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이를 증명하듯 길을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누군가의 대화소리에서도, 마주 앉은 지하철 안에서도 모든 곳에서 낯선 온기에 설렘을 느꼈다. 여태껏 익숙함이 좋아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익숙함이 도를 지나쳤는지 낯섦을 찾고 있다. 이런 마음은 불현듯 찾아오는 계절비 같았다. 어느 계절이든 계절비가 내리면 온도가 달라진다. 이처럼 혼자이고 싶었던 마음을 뒤집듯 이제는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도 연애를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지금껏 연애를 미루어 왔던 이유는 나의 삶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을 용서치 않아서였다. 그 사랑이라는 변수로 인해 삶이 바뀌는 것을 용납되지 않았다. 연애를 하면 좋은 에너지도 받지만 반대로 서로를 갉아먹는 에너지도 생기기도 한다. 나는 애초에 그러한 감정의 기복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사랑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연애를 시작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알아가는 시간을 못 견뎌했다. 그 시간들은 숱한 연애의 결과물이 만든 몹쓸 과정에 불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몽글몽글한 감정이 주는 불편함을 못 견뎌해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감정은 불완전한 감정으로 치부했다. 사랑하지만 사랑이 아닐 수도 있는, 언제든지 그만두기 쉬운, 그런 애매한 감정이 만든 관계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라도 어긋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 이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더 크게 작용되었다. 그래서인지 한시라도 빨리 편안한 관계에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편안함에 이르렀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서 온전히 알았다는 것으로 연애 초반처럼 감정의 표현이 거창할 필요도 없으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여 싸울 일도 없다. 또한 밥을 먹을 때나 나란히 길을 걸을 때 상대방의 취향을 고스란히 닮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연애 초반에 뜨겁게 타오르는 연애보다는 오래된 연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완숙함을 좋아했다. 이것은 마치 잔잔한 물결같이 사랑이 아닌 것 같아도 사랑인 것처럼 알게 모르게 나의 한쪽 마음을 내어준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연애로부터 도망치는 습관이 자리 잡은 듯하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이기적인 모습들이 그득했던 것이다. 상대를 알아가고 발맞춰 걸으려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 했으니 지금까지 연애를 못 했던 것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방향이 완숙함이라면 기꺼이 완숙함으로 가는 과정을 충분히 겪고 상대방과 함께 지나쳤을 때 다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었다. 이제는 조금은 달라지고 싶다. 연애를 하면서 상처를 받을지라도 기꺼이 너의 언어를 닮고 싶어졌다. 그렇게 너에게 스며들고 싶다.


(@912_guk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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