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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Jan 27. 2020

사랑 고백 I

그녀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그녀를 신이문 역에 내려다 주고 나는 카페로 왔다. 뜨거운 커피를 시켰다. 커피를 내렸다가 다시 끓이기라도 한 건지 커피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좋은 일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몸을 데우고 싶던 참이었다. 한 모금 커피를 넘겼다. 목을 타고 넘어간 커피가 빠르게 식었다.

  

  그녀를 내려다 주고 오는 길이 몹시 힘겨웠다. 우리는 밤을 내내 같이 보냈고 낮에는 스산한 왕의 무덤을 함께 돌았다. 날이 추워서 그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찬 바람에도 내 몸은 식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를 신이문역에 내려다 주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가 내린 옆 자리를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다. 운전대를 양 손으로 움켜쥐고 앞 차선만 뚫어져라 주시하며 돌아왔다. 옆자리에서 발가락을 꼬물거리는 그녀의 부재가 넌지시 말을 건다. 한 자 한 자 똑똑히 들리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울려 앞 차에게 주의를 주었다.

  

  "운전 똑바로 해. 이 새끼야." 나의 말이 운전석 밖으로 넘어갈 리 없는데 앞 차는 비상등을 켜 나의 애꿎은 분노에 볼멘소리로 답한다.

  

  주차장 안은 한기가 돌 정도로 춥고 어두웠다. 밖으로 나간 차들은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고 제자리를 지키는 몇 없는 차들은 두런두런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녀가 내린 옆 자리의 적막이 점점 더 커졌다. 나는 그제야 겨우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부재도 빠져나간 지 오래. 그녀는 이제 신이문에 있다. 신이문에서 여기까진 30분이 걸렸다. 그 사이 차들이 길 위에 찼을 테니 거슬러 올라간다면 50분이 걸릴 것이다. 차 옆에 서서 그 50분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커피는 존재감을 잔에 새기며 조금씩 비워졌다. 마음은 좀체 덥혀지지 않는데 커피만 계속해서 식어버렸다. 그녀는 신이문에 있다. 나는 여기에 있다. 그녀에게 가려면 50분이면 족하다. 나는 그 50분을 기꺼이 거슬러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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