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5.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를 응원해
요새 일을 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때마다 유튜브에서 푸바오 영상을 보며 화를 달래곤 한다.
사랑과 애정으로 푸바오를 키우는 강바오 송바오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종의 경계를 뛰어넘은 교감을 하는 푸바오의 모습에 치밀어 올랐던 분노가 쑥 내려가기 때문이다.
푸바오에게 입덕하자마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서는 각종 푸바오의 관련된 컨텐츠들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송바오가 푸바오에게 쓴 편지도 읽을 수 있었다.
"기억해 먼 훗날 암컷 판다로 살아가다가 너무 힘든 일을 겪고 지쳐서 손가락 하나 조차도 움직일 힘이 없을 때 누군가 8월의 댓잎 새순을 하나하나 모아서 너의 입에 넣어 준다는 건.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거야. 너를 아주 많이 응원 한다는 거야. 너의 엄마는 그렇게 힘을 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찾았단다. 지치고 힘들 땐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렴" by 송바오
이 편지를 보자마자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송바오가 푸바오에게 보낸 편지는 엄마가 나에게 또 내가 동오에게 보내는 편지였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완벽주의에 욕심도 많고 걱정도 많아 불안증을 달고 사는 사람인데
요 근래에 마음처럼 안 풀리는 일이 회사에서 계속 있었고 해결 방법도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서
끙끙 앓기만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았다.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거 빼고는 대충해라 그래도 괜찮다.
그게 뭐든 결국에는 너가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니 편이다.
요즘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라고 압박하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살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는게 목표였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또 열심히 달려서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게 목표였고, 취업한 후에는 남들보다 빨리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인생에 지칠대로 지친 나에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거 빼고는 뭐든 대충하라는 엄마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세상에 내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았다.
내가 동오에게 주는 사랑도 엄마가 나에게 주는 사랑도 송바오와 강바오가 푸바오에게 주는 사랑과 비슷하지 않을까. 조건 없는 사랑과 존재 자체에 대한 응원은 언제나 세상을 다시 살아가게 만들 힘을 준다.
그 힘은 그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모두 작용된다.
동오가 글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나도 동오에게 편지를 한 통 쓰려고 한다.
너를 처음 품에 안는 순간 나는 니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꼭 옆에 있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삶의 선택에 너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너는 아직 어리지만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올거야. 하지만 걱정하지마 그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내가 너의 옆에 있을게
그럼 생각했던 것 처럼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을 거야.
이별은 남겨진 이에게 큰 상처를 남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보낸 날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울테고
나는 너를 떠올릴때마다 웃음을 짓게 될거야.
그러니 매 순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가고 싶은 산책길만 가고
맨바닥에는 절대 눕지 않는 철부지 개공주로 살아줘
어떤 시절의 너라도 나에게는 영원한 아기 강아지야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