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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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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Feb 22. 2021

하루치의 봄날

어쩐지 씁쓸하더라


우리 집에서 천변 방향으로 나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고층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마트를 가기 위해선 꼭 지나쳐야 하는 길인데, 그 아파트 담장 바깥으로 튀어나온 매화나무 가지가 나를 향해 손짓한다. 내가 정의하는 봄의 시작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봄의 시작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낯선 하얀 꽃들이다. 봄이 옴과 동시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두 가지가 감정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따뜻해지는 기온과 개화 소식에 조금은 설레다가도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1월의 겨울이 계속됐으면 싶다. 정확히 말하면 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뭔 말인가 싶지만, 내 기분이 별로이기 때문에 봄이 왔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봄이 오면 꽃을 보러 나가야겠지. 하지만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KF94 마스크를 끼고 사람 없는 곳만 찾아다니면 되겠지만 어쩐지 번거롭고 사진 찍기도 귀찮고, 결정적으로 겁이 많은 편이다. 30년 넘게 살아본 결과 나는 면역력이 약한 편이다. 1년에 꼭 한 번은 감기 바이러스와 이하선염 등이 때때로 찾아오곤 했지만, 2020년에는 마스크를 열심히 낀 덕분인지 감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역시 코와 입을 통해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게 분명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게 원인이었어.

봄이 오면 꽃을 보러 나감과 동시에 사람을 만나야겠지. 혼자 보는 것보단 둘이 보는 게 더 기억에 확실히 남을 테니까. 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를 핑계 삼아 사람들과 거리를 둬본다. 모르겠다. 이제는 경각심도 줄고, 발열체크와 명부 작성 또한 기계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 행위들이 우리를 바이러스로부터 막아줄 거란 확신도 점차 줄어든다. 그저 이곳을 입장하기 위한 하나의 행동패턴으로 자리 잡는다.

코로나 1년이 넘도록 회사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는 어떤 호랑말코같은 한 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받다가 그냥 원래 그런 인간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친다. 상사나 대표, 나이 많은 직원이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는 행위 또한 직장 내 갑질 중 하나라고 포털 기사에서 읽었다. 몇 백 개의 댓글을 참 열심히도 읽었다. 나와 같이 부당함을 느끼는 동지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조금은 위로가 됐다. 결론은 지적해봐야 본전치기도 못하니까 내버려 두는 게 답이라는 것.

다시 봄으로 돌아가, 봄이 오면 꽃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옷도 얇아지니까 몸을 관리해야 되지 않나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본다. 크게 변하지 않는 몸무게이지만, 어쩐지 한 달에 한번은 식욕이 폭발하곤 한다. 나도 내 뱃속이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먹을 때가 있는데 폭식 이후 밀려오는 우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다가 또다시 혹독할 정도로 먹지 않는다. 나의 몸을 생각하다가 다시 걱정스러움에 빠진다. 3월이 되고 4월이 되어 수많은 봄꽃들이 우르르 피어날 것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아직 그 꽃들을 만날 준비가 안됐어. 한꺼번에 쏟아지는 화사한 풍경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뭐라고 끄적이던 간에 이미 봄은 이미 시작됐다. 봄이 와서 설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그저 살아내기에 급급한 또 하루치의 봄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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