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현장 속으로 10회 (완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909061533261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 지역경찰의 현장을 잘 나타내는 표현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고 결심한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의 시간대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 무척 문학적인 표현이다. 또 지역 경찰의 현장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교대근무를 하는 지역 경찰은 주간근무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야간근무 때는 저녁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내가 처리하는 신고와 민원 하나하나가 개인지 늑대인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확인해야만 한다. 단순해 보이는 주민 간의 갈등이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늑대가 될 수도 있고, 경찰관을 괴롭히던 악성 민원인이 별안간 우호적인 개로 변할 수도 있다(사실 이 경우는 거의 겪어보지 못했다).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기하느라 퇴근 후엔 온몸이 녹초가 된다. 야간근무가 끝날 때쯤 밝아오는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텼다는 감정이 벅차오른다.
우리 편인 아이들도 언젠가는 늑대로
전 근무자에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 있지는 않은지, 장비는 제대로 보관되어 있는지 등의 상황을 인수인계 받으면서 우리 팀의 근무가 시작된다. PDA 배터리를 확인하고 근무일지를 출력한 뒤 게시판에 부착한다. 게시판에는 엊그제 발생한 절도 용의자의 사진이 붙어 있다. 순찰하면서 확인하기 위해 용의자의 사진을 한 장 더 출력해 순찰차에 싣는다. 경찰서에서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지명수배 전단지를 새로 제작해 배부하는데, 파출소별로 붙이는 장소가 지정돼 있다. 전단지의 유효기간이 끝나 새로 제작했으니, 이번 근무 때 지정 장소에 부착하라는 지시사항을 전달 받는다. 나는 전단지를 챙겨 순찰차를 운전한다. 그런데 지정 건물 관리자로부터 “미관상 수배전단지를 붙이기 싫은데 안 붙이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듣는다. 극히 일부의 일이거나 정말 지어낸 말이라 믿고 싶지만 수배 전단지를 부착할 때마다 이 말을 듣는다.
우리는 건물 관계자에게 빌다시피 사정한다. “여기 꼭 붙여야 하는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건물 관계자는 전단지를 흘겨보다 턱으로 구석진 곳을 가리키며 선심 쓰듯 저곳에 붙여놓고 가라고 한다. 나는 이 사람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건물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체 경비 시스템인 세콤보다 112를 먼저 호출하면서 이런 것 하나 협조해주지 않다니. 늑대가 분명하다. 그런데 진짜 늑대일까? 나는 불법 전단지를 부착하는 사람처럼 낮고 민첩한 자세로 수배 전단지를 붙인 뒤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순찰차가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순찰차를 지켜보거나, 경찰관을 향해 큰소리로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든다. 우리 편은 아이들밖에 없다는 선배의 쓸쓸한 말을 들으며 웃었다. “저 아이들도 10년만 지나면 술 마시고 경찰관에게 욕을 하겠지요?” 나의 물음에 선배는 미소로 답했다.
개가 늑대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2년간 이어지는 교육과정이 아이들을 사납게 만드는 것인지. 인성교육이 제일 중요한데 학교에선 도대체 무얼 가르치고 있는지 속으로 타박했지만 학교도 말 못할 사정은 있지 않겠나. 불현듯 언니와 오빠가 있다는 나에게 “아들이 있는데 왜 또 딸을 낳았지, 너희 부모는 왜 너를 낙태 안 했냐?”고 묻던 어느 장학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학교라는 시스템보다는 교육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문제인 것인가. 어딜 가나 사람이 문제구나. 초원을 뛰어다니는 사자를 채찍질해 서커스를 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듯 개를 늑대로 만들어내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겠지.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는 아무 잘못이 없다. 벨트가 멈추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는 사람이 문제다. 낙태되지 않은 나를 신기해하던 중년의 남자가 장학사라고 목에 힘주고 다닐 것을 상상하니, 그런 장학사가 학교에 온다고 대청소에 동원될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새벽의 벨소리, 개일까 늑대일까
파출소 입구는 순찰차의 신속한 출발을 위해 항시 비워놓는데, 일언반구도 없이 차를 세워놓고 도망가는 사람이 참 많다. 빈 공간인데 차 한 대는 주차할 수 있지 않느냐, 바쁜 척하지 말라는 적반하장을 들으면 나는 늑대로 돌변한다. 순찰차 앞을 가로로 막은 뒤 태연히 먼지를 털던 운전자도 봤다. 이러다 현장에 늦게 도착하면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 반면 정말 급한 일이 있는데 근처에 주차할 곳이 없다며 사정을 설명하는 사람에겐 한없이 순진한 개가 되어 친절히 안내한다. 말 한마디로 나의 태도는 천당과 지옥을 건너뛴다.
신고자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지금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니 경찰관이 자기 관내 지리도 모르느냐고 벌컥 화를 낼 때는 늑대를 넘어 용이 되어 불을 내뿜으며 으르렁거리고 싶다. 그렇게 경찰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는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 집 냉장고에 어떤 음식이 들어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관내는 넓고 건물은 많고, 주소조차 검색되지 않는 소규모 가게가 수두룩한데 어떻게 다 외울까. 주위에 보이는 간판을 말해달라는 나의 요구에 “고개를 들면 아파트가 보이고…”라며 중얼거리는 신고자의 위치는 도대체 어디인가. 대한민국 땅덩어리는 너무 좁다 생각했건만 아파트가 보이는 장소는 셀 수 없이 많구나.
부실공사로 천장에서 비가 새는 파출소의 쿰쿰한 공기를 맡으며 보내는 새벽. 고요한 공간을 어떤 감정도 높낮이도 없는 벨소리가 침범한다. 수화기를 노려보며 생각한다. 전화를 건 사람은 개일까, 늑대일까. 받아보니 이미 화가 난 채로 시비 걸 듯하는 말은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차량을 자기가 견인해도 문제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다. “네, 경찰관은 문제 없지요. 그런데 불법으로 견인하시는 선생님은 문제가 있을 거예요.” 실랑이를 벌이며 생각한다. 이번에도 역시 늑대구나. 개와 늑대의 시간이 이어지는 여기는 현장의 한가운데. 톱니바큇가 돌아가듯 유기적인 세상임에도 바큇살들이 부딪히며 내는 마찰음을 듣고 달려온 나는 대한민국의 경찰관. 틱틱거리며 스파크를 일으키는 현장을 잠재우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개와 늑대 모두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