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현장 속으로 9회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8301432461&code=115
가족의 보살핌 없이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눈물겹게 살아가는 아이들
왕복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세 살배기 여자아기를 발견한 것은 1년 전 어느 날이었다.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돌아다니던 아이는 아장아장 걷는 속도로 어떻게 차들이 쌩쌩 달리는 왕복 6차선 도로를 상처 하나 없이 건넌 걸까. 이를 본 경찰 선배는 “아기들 목숨은 삼신할머니가 구해주신다더니 정말인가보다”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갖고 있던 스카프로 아기의 하반신을 가려주셨고, 나와 선배는 아이를 안은 채 부모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6차선 도로 무단횡단하는 세 살 아기
아이는 자신의 이름도, 집이 어디인지도 말하지 못했다. 근처에 있는 가게에 전부 들어가 “이 아기를 본 적 있으시냐”고 묻고 다니길 수차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를 어색하게 안고 급히 주유소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손에 보물처럼 쥐고 있던 떡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화장실 바닥에 뒹군 떡을 버리려는 찰나, 아이가 떡을 향해 손을 내밀며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 눈에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리에는 산꼭대기에 쌓여 있는 만년설만큼이나 하얀 비듬이 가득했고, 입고 있던 상의에는 언제 빨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채 굳어 있었다. 아기의 얼굴과 손도 탄광에서 막 나온 광부마냥 거뭇거뭇했다.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건가. 집에서 도망쳐 나온 길이었나. 예사로 넘길 사안이 아닌 것 같아 여청수사팀에 지원 요청을 한 뒤 아이를 데리고 파출소로 갔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아이 엄마가 파출소에 도착했다. 여청수사팀과 함께 정보를 파악해보니 아이 엄마는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이었다. 심지어 집에는 이 아이 말고도 3명의 아이가 더 있는 상황. 명백한 방치로 보였지만 본인 몸도 추스르기 힘든 상태인 엄마에게 양질의 양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도대체 남편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끝인가? 나는 파출소에서 아껴 먹으려고 숨겨 둔 외제 과자를 아기 손에 꼭 쥐어주면서,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어른으로 클지를 상상해보았으나 앞이 깜깜했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클 수 있을까. ‘책임지지도 못할 아기를 왜 낳았느냐’는 소리가 목끝까지 차오르다 문득 깨달았다. 능력이 되는 사람만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아이를 낳고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는 것을. 더욱이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엄마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한 손에는 엄마 손을, 다른 손에는 내가 준 과자를 꼭 쥐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그때 만난 이 아이를 또 보고 말았다. 이번에도 혼자 집을 나와 지난번처럼 왕복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다가 달려오는 차량과 부딪힌 것이다. 다행히 운전자가 아기를 보고 급정거하여 상처가 크진 않았다. 나는 이 아기의 미래가 더 이상 그려지지 않았다. 시인 문태준의 시 ‘가재미’에 나오는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는 구절을 떠올렸다. 또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느끼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아빠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딸의 신고를 받고 후미진 골목으로 달려갔던 오후. 집 밖에는 피해자인 딸이 친구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저 XX 잡아가라”며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다가, 자신의 분노에 못이겨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통제 불가능 상태였다. 익룡처럼 고성을 내지르며 티라노처럼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막무가내인 아이를 잠재울 방도 따윈 없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빠에게 전화를 하니 나에게 “XXX, 죽여버린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 아이 역시 지적장애 3급을 앓고 있었다. 엄마는 폭력적인 아빠를 피해 집을 나간 지 오래 되었고 동생은 보육원에 있단다. 아이가 집 밖을 배회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어코 나쁜 놈들 눈에 걸린 모양이다. 성폭행을 당해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까지 있다는 아이는 욕설이 모국어인 듯 입만 열면 욕을 퍼부었다.
부모와 학교로부터도 버려진 아이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언어를 습득한다. 집안환경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상황에서 어쩌면 아이는 정녕 욕설을 모국어처럼 배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에도 같은 신고를 몇 번이나 받았지만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교 선생님도 포기했고, 애초에 올바른 부모도, 다른 가족도 없는 고립무원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긴 할까. 관련 기관에서 상담도 수차례 받았지만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젠 일련의 절차들이 귀찮기만 하다는 아이의 말은 그 자체로 현실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진정으로 배우는 건 어른들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다는 잔인한 현실과 누구든 강한 자에겐 약하게 굴고 약한 자에겐 독재자만큼 강하게 군림한다는 사회의 이치뿐일지도 몰랐다. 세상을 온몸으로 구르면서 너무도 빨리 익힌 아이들에게 한 명의 힘없는 경찰관인 내가 해줄 말은 없었다. 아이들은 나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날도 아무런 해결방안 없이 아이는 길 위로 돌아갔을 뿐이다.
교육과정 12년을 개근으로 꽉 채웠던 나는 학교 밖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는지 몰랐다. 아이라고 전부 착실한 학교생활을 하는 게 아니었고, 아기라고 올바른 부모 밑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일찍부터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생존 하나만을 위해 치열하게 싸움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조건 만남이나 성매매로 빠지는 아이들, 지옥과 같은 집을 벗어나 길 위를 전전하는 아이들, 의식주 중 아무것도 지원받지 못한 채 맨땅에서 힘겹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어느 곳에서도 이야기를 들은 적 없지만 눈앞에 분명히 있는 존재였던 그 어린 영혼들을 위해서 어른인 내가, 대한민국 경찰관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홀로 되묻는다. 나 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면 가재미처럼 흙 속에 납작 엎드린 채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아이들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조차 지워질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