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을 따라
※ 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특히! 반전이 큰 작품입니다.
※ 영화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주관적인 시선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모두 너에 대해 알고 있어. 모르는 척할 뿐이지.
많은 사람이 명작으로 꼽는 영화 <트루먼 쇼>.
영화의 명성에 비해 나는 최근에서야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인지라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었는데,
실제 영화는 내가 상상한 분위기나 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흘러갔다.
러닝타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빠져서 봤던 영화.
그렇기에 이 작품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스포일러가 가득 담긴 이 글은 꼭 감상 이후 봐주시길 권해드린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라곤 믿기지 않는 완성도.
시쳇말로 영화의 '때깔'이 아주 좋다.
젊은 날의 짐 캐리는 정말 잘생겼더라...
영화는 트루먼(배우: 짐 캐리)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시작된다.
거울을 보며 씻고, 마당에서 마주친 이웃과 살가운 인사를 나눈다.
보험회사에 출근해 주어진 일을 하고, 퇴근 후엔 아내와 시간을 보낸다.
너무 평화로워서 단조롭기까지 한 일상이다.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아버지를 길에서 마주치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알 수 없는 자들이 아버지를 차에 싣고 사라져 버린다.
트루먼은 엄마와 이 일을 상의하지만 엄마는 너의 정신적인 문제라 단정 지을 뿐.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건 아내도 마찬가지다.
외로워진 트루먼은 오래전 보관해 둔 짐을 정리하다가
실비아(배우: 나타샤 맥켈혼)가 두고 간 옷을 발견하곤 회상에 빠진다.
대학 시절 우연히 만난 실비아에게 첫눈에 반한 트루먼.
우여곡절 끝에 실비아와 늦은 밤 해변에 가고 그곳에서 첫 키스를 나누지만,
실비아는 계속 "너와 얘기하면 안 돼"라는 말만 반복할 뿐.
실비아의 예언대로 모르는 남자가 해변에 들이닥친 뒤
자신이 실비아의 아버지라 주장하며 그를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기 직전, 실비아가 트루먼에게 남긴 말.
여기서 나와서 나를 찾아
영화는 삶을 살아가는 트루먼과,
그런 트루먼의 삶을 카메라 렌즈로 관망하는 시청자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알고 보니 트루먼의 삶은 방송사에 의해 제작된 거대 프로젝트였으며,
트루먼이 사는 곳, 만나는 사람 모두 철저한 각본에 의해 꾸며진 세트였던 것.
실비아는 유일하게 트루먼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한 인물이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징조들을 감지한 트루먼은,
늘 똑같은 일상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도로에 난입해도 그 누구도 자신에게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트루먼이 사는 세상에서는 화를 내는 사람도,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도 없다.
차도에 뛰어들지만 자신을 제지하는 사람도,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없다.
그제야 트루먼은 알아차린다.
이 모든 세계가 가짜라는 걸.
영화의 반전이 드러나기 전부터 영화는 트루먼이 감시당한다는 걸 보여준다.
트루먼을 비추는 화면이 렌즈처럼 나오기도 하고,
그의 전신이 나오는 풍경은 꼭 그의 동선을 추적하는 CCTV 화면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트루먼도, 그의 모습을 보는 영화 관객도 같은 의문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가?
트루먼 쇼는 방송사에서 트루먼이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을
24시간 생방송으로 방영하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이다.
한 대로 시작한 카메라는 해당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고
5천대로 늘어나 트루먼의 모든 일상을 보여준다.
작은 나라의 총생산액과 맞먹는 매출 때문에 이젠 멈출 수도 없는 프로그램.
아니, 누구 하나 멈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방송사에서는 트루먼에게 더 자극적인 대본으로 조종하려 들고
시청자들은 그런 트루먼의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시청한다.
이쯤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저 사람들은 저 프로그램을 왜 보고 있는가?
만드는 입장에서는 돈이 되니까 만든다 치지만, 보는 건 도대체 왜?
트루먼이라는 이름의 철자는 TRUMAN이다. 의도적으로 지은 이름일 것이다.
진실(TRUE)과 사람(MAN)의 합성어가 아닐까 싶다.
한국식으로 지어보면 '정말임' 씨 정도 되려나. 남자니까 '정말현' 정도?
영화는 트루먼이 한밤 중 몰래 세트장에서 도망치면서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시청자들은 트루먼이 탈출에 성공했다 아니다로 내기를 시작하고,
방송사 직원들은 트루먼을 다시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히 타자화시켜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다니.
트루먼은 결국 탈출에 성공하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
모든 게 거짓이었던 곳에서 벗어나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트루먼에게 진실은 오직 하나.
그 자신만이 진실된 존재라는 것뿐이리라.
트루먼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5천 대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봐준 눈은 단 하나. 실비아뿐이었다.
'트루먼 쇼'의 총괄자인 크리스토프(배우: 에드 해리스)는
트루먼이 가엾지도 않냐는 실비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겨운 곳이지."
크리스토프는 탈출 직전의 트루먼에게도 같은 말을 한다.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 만든 그곳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 게 없어.
자넨 떠나지 못해. 자넨 여기 속해있어. 내 세상에."
당신의 선택이 궁금하다.
온통 가짜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소리치거나 상처 주지 않는 세상.
진실되지만 감정 소모를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 세상.
어디에서 살 것인가?
이규리 시인의 <락스 한 방울>이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꽃꽂이하는 사람이 말해주었다.
꽃을 더 오래 보려면 꽃병에 락스 한 방울 떨어뜨리면 된다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연장되는 삶이 있는 것이다.
상처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하지만 산다는 일이, 상처 없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선택권이 많아진다는 것과 동의어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할 것이냐.
적당히 회피하다가 돌파할 건 돌파하며 나만의 길을 찾을 것이냐.
어떤 어른이 되든, 남을 향한 연민은 잊지 않으며 살고 싶다.
어디서든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렌즈 대신
남의 진실된 마음을 보려 노력하는 실비아의 눈이 되기를 바라며.
트루먼이 탈출에 성공하고, 쇼를 보던 시청자는 옆사람에게 묻는다.
"다른 채널에선 뭐 해?"
가십이라는 게 이렇게나 얄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