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를 따라
※ 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주관적인 시선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이 영화는 영화 <듄> 시리즈와 <그을린 사랑>을 만든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SF 소설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 이야기> 속
단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테드 창은 영화 <극한 직업>에 나오는 오정세 배우가 아니고
소설가의 본명이며, 대만계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재능이 충만한 사람의 작품을 보면 열등감과 부러움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그야말로 고약한 성질머리를 갖고 있다.
이 영화도 보는 내내 어찌나 배가 아팠는지.
드니 빌뇌브, 이 타고난 재능꾼!
할리우드의 엄청난 자본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네! 근데 또 잘해!
테드 창(창식이 말고), 진짜 부러워 죽겠다!
한 마디로 아주 좋은 영화라는 뜻.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배우: 에이미 아담스)의 딸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된다.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자라는 과정,
병원을 찾았다가 불치병을 진단받은 이후
딸이 죽는 과정까지 고요한 울림으로 훑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뉴스. 전 세계 12곳에 미확인 우주선이 생겨났다는 속보.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우주선 속 외계인이 쓰는 언어를 해석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받고,
우주선이 서있는 몬태나 주에 가게 된다.
우주선은 18시간마다 한 번씩 문이 열리고,
거기로 들어가면 두 명(혹은 마리?)의 외계인과 얼마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외계인의 다리가 거대한 손가락, 혹은 문어 다리처럼 생겼기 때문에
정부는 그들을 '다섯 개의 다리'라는 뜻의 '헵타포드'로 명명한다.
정부가 에이미에게 지시한 것.
"왜 지구에 왔는가."
이 질문을 헵타포드에게 던지고, 대답을 듣는 일이다.
미국 정부의 요구와 달리,
에이미는 아주 기본적인 단어부터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헵타포드에게 한 문장을 이해시키기 위해선
나, 너, 우리, 묻다 등 기본적인 개념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다.
으레 종말, 혹은 거대한 변화를 앞둔 영화에서 나오는
흔한 학자와 정부의 대결 구도다.
정부는 효율을 추구하고 학자는 학문의 논리대로 일을 처리하려 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
그 불협화음 속에서 루이스는 계속 딸의 기억을 떠올린다.
일부러 떠올리려 하는 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딸이 루이스를 찾아오는 식이다.
헵타포드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루이스.
루이스 옆에는 과학자 이안(배우: 제레미 레너, a.k.a 호크아이)도 함께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나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이 논리로 헵타포드와 천천히 소통하고 싶은 루이스지만 정부는 계속 재촉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나라는 아예 헵타포드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헵타포드가 "우리는 무기를 주러 왔다."고 말했기 때문.
루이스는 '무기'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많고,
그들이 '무기'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며 전면전을 반대하지만
결국 세계 전쟁 발발 직전까지 도달하고,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그러다 참지 못한 루이스가 혼자 헵타포드를 만나러 가고,
그들과 독대하면서 '무기'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된다.
딸의 기억을 떠올리다 기절 직전인 자신을 부축하는 이안에게,
루이스가 매달리며 묻는다.
이 아이는 누구죠?
여기서 영화의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된다.
딸을 잃은 엄마의 흔한 망상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반전이다.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이 아이가 누구냐니.
이안은 루이스에게 "결혼한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
도대체 '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이윽고 헵타포드가 말한 '무기'의 진정한 뜻이 밝혀진다.
그들의 무기는 다름 아닌 그들이 사용한 '언어'였다.
루이스는 왜 인간에게 언어를 주려고 하는지 묻고, 그들은 답한다.
"3000년 뒤에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루이스는 다시 묻는다.
미래를 어떻게 알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루이스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답이 있음을.
헵타포드가 사용하는 언어는 시제가 없다.
즉, 시간에 대한 개념이 인간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모두 공존하는 존재일 뿐.
시간을 얼마든지 건너뛸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밀이 풀린다.
루이스가 봤던 한나는 자신의 미래였다.
헵타포드어를 정복해 강의하는 자신의 모습도,
이안과 사랑에 빠지게 될 자신의 모습도,
사랑의 결과물로 만나게 될 한나도,
불치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죽게 될 한나의 미래까지도.
루이스는 자신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모두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헵타포드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알고도 이 삶을 똑같이 살아갈 것인가?
대답까지 명확하게 하기는 힘든, 우리 삶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루이스는 기로에 빠진다.
이안과 사랑에 빠져도 결국 헤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를 가지면 한나가 태어나겠지만, 그 한나는 성인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안과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걸까?
이안과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아야 할까?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한나의 모습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할까?
이별이 두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걱정과 불안을 양 어깨에 달고 사는 나는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아, 그때 그러지 말걸.
조금만 더 참을걸. 말을 참든 외로움을 참든 술을 참든.
하필 그 타이밍에 왜 거길 갔는지.
단 1분 후의 미래조차 살아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덜덜 떨며 날려먹은 내 청춘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에게 참 많이 물었던 질문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난 다르게 행동했을까.
아직까지 답하지 못한 그 질문을 반복하는 나에게,
영화 <컨택트>가 묻는다.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똑같이 살 것인가?
은근슬쩍 답까지 알려주는 것 같다.
미래를 알면서도 똑같이 살아가는 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좋은 영화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 얼마나 많은 물음표가 찍히느냐'에 그 방점을 둔다.
그런 면에서 <컨택트>는 오랜만에 만난 수작이었다.
루이스의 기억 속에 한나의 모습이 시시때때로 방문했듯이,
나의 일상 속에서도 <컨택트>가 불현듯 나타날 것 같다.
어리석은 후회에 사로잡혀 소중한 현재를 놓칠 때마다 말해줄 것 같다.
네 미래를 알고 있다면,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겠느냐고.
이안과 한나의 미래까지 모두 알면서도 루이스는 영화의 끝에서 이안을 끌어안는다.
나중에 찾아올 예정된 이별이 사무치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도,
지금 현재 찾아온 사랑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듯이.
영화 평가 사이트 '왓챠피디아'에 올라온 <컨택트> 리뷰 중
마음에 드는 것 두 개를 소개하며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