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들리를 따라
※ 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주관적인 시선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하죠?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이 영화는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오드리 헵번을
전설적인 여배우로 자리매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가장 사랑스러운 주인공의 탄생이자
시대를 빛낸 스타를 담아낸 최초의 주연작.
이 영화로 오드리 헵번은 그 해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각종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영화지만,
어쩐지 난 영화를 보고 다소 슬퍼졌다.
왜 그랬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한데,
공주가 평민 계급의 남자와 하룻밤 달콤한 휴가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1953년 영화다 보니 기본 제공되는 스틸컷의 화질이 좋진 않다.)
앤 공주(배우: 오드리 헵번)는 어느 나라의 공주다(?).
저명한 국가의 공주이자 차기 후계자로 설명되긴 하나,
영화에선 이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는다.
아직 전쟁의 여파가 가시지도 않았고
소위 열강들 사이의 질서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상에 비춰본다면
어느 국가로 특정되는 것에 위험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어느 국가의 공주인 앤 공주는
유럽 순방 일정 때문에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10분 단위로 쌓이는 스케줄,
앤 공주의 마음엔 귀 기울이지 않고
무지성으로 수면제만 처방하는 주치의의 태도에
앤 공주는 미치기 일보 직전.
그래서, 로마에 머무는 날 몰래 탈출을 감행한다.
그 시각, 집에 돌아가던 브레들리(배우: 그레고리 펙)는
수면제 기운 때문에 벤치에 잠든 앤 공주를 발견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브레들리의 직업은 신문사 기자.
다음 날 인터뷰 해야 하는 앤 공주가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출근했다가,
신문에 박힌 사진을 보고서야 앤 공주임을 알아본다.
브레들리는 사진사 친구에게 자신과 앤의 데이트를 몰래 찍어달라 부탁하고,
그 사진을 높은 값에 팔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철저히 계산된 데이트가 시작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공주님과,
공주님을 이용하려고 꼬드겼다가 진실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평민 남자.
이들의 이별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처럼 콘텐츠가 범람하는 세계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들의 결말이 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단지 '어떻게 이별하냐'가 궁금해서 끝까지 시청할 뿐.
영화를 본 후 느낀 점은, 영화가 참 따듯하다는 거다.
공주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브레들리의 계략은 앙큼하기 그지없으나
그의 시꺼먼 속내가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그저 친절하고 따듯하다.
영화엔 커다란 악역도 없고 소위 말하는 민폐 캐릭터도 없다.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 동화 같은 첫 만남,
언제라도 이와 같은 만남이 내 인생에서도 한 번은 일어날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영화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영화가 싫은 이유 중 하나는,
"킬킬킬, 인간의 본성은 이렇다! 아주 썩어빠졌지!"를 집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 같은 서바이벌물이나 각종 수사물이 이런 유행(?)을 선도하는 것 같다.
한계 상황으로 몰릴수록 추악해지는 게 정말 인간의 본성일까?
영화 <엑시트>의 흥행 이유를 애써 모른척하려고 작정했나?
나쁜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지만,
덮어 놓고 자극적, 폭력적인 모습만 노출하면서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불쾌함만 낳을 뿐이다.
처음엔 나쁜 목적으로 접근했더라도
그 사람과 유대를 쌓을수록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게 되고,
정말 힘들지만 결국 옳은 방향으로 발자국을 옮기는 게 참된 인간의 모습 아닐까.
현실에서 지키기 힘든 태도일지언정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만큼은 성숙한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극적인 모습'은 마약에 취하고 살육을 범하는 인물이 아니라,
어떻게든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 눈물을 흘리는 쪽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어른스럽고 성숙했으며, 친절하고 따듯했다.
브레들리의 친구조차도.
최소 5천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는 사진을 찍어 놓고,
파는 대신 앤 공주에게 로마 방문 선물이라고 쥐어주는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아주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 휴일은 저래야지. 그래야 다음 휴가를 기대할 수 있지.
인생 별 거 있나. 그런 거 기대하는 재미로 사는 건데.
앤 공주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나선 브레들리의 모습이 짠했다.
영화에서 가난에 대한 브레들리의 내면 묘사는 없지만,
내가 브레들리였다면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으지 않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지 않았을까.
브레들리가 사는 단출한 월세방은 주방이 없다.
앤 공주가 브레들리를 위해 요리를 해주겠다 말하는데,
그의 집엔 주방이 없기 때문에 공주의 마음을 받을 수 없다.
브레들리는 슬프게 중얼거린다.
이사를 가야겠어요. 주방이 있는 곳으로.
브레들리의 말을 들은 앤 공주는 이별을 직감한다.
자신은 돌아가야만 한다.
이 남자가 주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가더라도, 새 집에 결코 놀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공주가 카페에서 샴페인 한 잔을 시켜도
브레들리는 가격 때문에 손이 떨리는 처지 아닌가.
요즘 이사 준비를 한창 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장면이 왜 이렇게 슬프고 짠하게 느껴지는 거지?
요즘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당대 최고 인기 영화를 보며 작가가 느낀 감상을 건조하게 서술한 책이다.
작가가 1937년생인 만큼,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는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흑백 영화다.
그 책에선 <로마의 휴일> 정도면 <중증외상센터>만큼이나 최신 콘텐츠에 속한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수록된 영화나 배우들과 동시대가 아닌 게 무척 아쉬웠는데,
<로마의 휴일>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를 보며 슬펐던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사람이 현재엔 돌아가셨다는 자연의 섭리였다.
영화의 마지막엔 모든 소리가 음소거되고
앤 공주가 활짝 웃는 장면이 있다.
오드리 헵번의 미칠 듯 아름다운 미소에 내 숨이 멎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돌려보니 실제로 영화 소리가 음소거 처리되어 있었다.
아마 감독의 의도였겠지.
이렇게 아름다웠던 배우도 암 투병 중 6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헵번이 사망한 1993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미국 미남의 정석이라 일컬어지는 영원한 신사,
브레들리 역을 맡은 그레고리 펙이 무병장수 했다곤 하나 이미 2003년에 사망했다.
이들은 나에게 영원히 현재가 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마치 브레들리에게 앤 공주가 영원히 과거에서만 사는 여인이 된 것처럼.
Gregory Peck & Audrey Hepburn in 1988 Oscar Award Ceremony
두 사람이 1988년 오스카 시상식에 나란히 참여한 영상이 있다.
<로마의 휴일> 개봉 후 무려 35년이 지난 시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은 볼만한 영상. 2분밖에 안 된다.
영화가 흑백이 아니었다면
1953년 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로마의 휴일>.
시대가 변해도 사랑이란 감정은 영원하다.
그 모습이 끝없이 변주될 뿐.
이들의 사랑은 영원히 현재가 될 순 없겠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고개 끄덕일 분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