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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Apr 19. 2023

나는 학교폭력 책임교사입니다

학교폭력을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감

"선생님 오늘 아침에 우리 반 여학생 한 명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습니다."


"어떤 학교폭력을 당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고, 우리 반 남학생 한 명이 인스타그램에 동의도 없이 사진을 올렸고 그 사진을 본 다른 반 남학생들이 뭐라고 댓글을 달았나 봐요."


"사이버 폭력을 당한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수업을 들어가야 하니, 쉬는 시간에 그 학생을 학생부로 보내주세요."


"그런데 선생님 문제가 있습니다. 그 여학생이 사진을 올린 학생과 같이 수업을 못 듣겠다고 하면서 교실에 안 들어가고 교무실에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교장선생님께 보고하고 즉시분리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1교시 수업에 있는데... 어쩌지? 큰일이네...)"




학생 한 명이 출근하자마자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학교폭력은 시급하게 조치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 사안처럼 사이버 폭력이나 성폭력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학교폭력 책임교사이면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과교사라는 것이다. 교사의 가장 큰 업무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교육학책과 선배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배웠다. 수업을 방치하거나 대충 가르치는 것은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을 들어가지 않거나 대충 수술하는 것과 같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순간 사이버 폭력을 당한 학생을 위해 학생부장님,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께 구두 보고하고 가피해학생에 대한 즉시분리를 처리해야 했다. 그럼 1교시 수업은 누군가에게 대신 들어가 달라고 부탁하거나 일단 들어가서(또는 늦게 들어가서) 자율학습을 시켜야만 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돌보기 위해 다수의 학생들을 방임해야 하는 상황. 결국 급하게 다른 교과와 수업교환을 했다. 이 때문에 나는 2교시, 3교시, 4교시, 5교시 연속 4시간 수업을 해야만 했다.



피해학생 보호를 위한 즉시분리 조치는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일단 학교폭력 관련 학생과 학부모에게 즉시분리를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나는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해당 학부모도 자녀의 말을 믿고 즉시분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누가 봐도 가피해자가 명백한 학교폭력을 제외하고는 가해자와 피해자란 말은 쓰지 않는다. 모두 관련학생이라고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은 있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본인은 그런 적 없다고 한다. 피해학생은 그 학생과 같은 반에서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자 그럼 학교폭력 책임교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피해학생의 입장에서 학교장의 승인을 받고 즉시분리 조치를 취하였다. 예상대로 1교시가 끝난 후 가해학생(으로 지목된)의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는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학생 말만 믿고 수업을 못 듣게 하는 조치를 취하면 어떻게 합니까? 책임질 수 있어요?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이런 엄포와 협박은 그래도 나같이 책임교사를 많이 한 사람은 익숙해서 괜찮다. (실제로 괜찮은 건 아니다. 괜찮은 척하는 거다.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저경력교사이면서 책임교사를 처음 해본 사람이다. 내 주변에는 이런 협박으로 한 여선생님이 하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시분리 당한 학생은 다른 교실에서 그냥 방치하면 안 된다. 수업이 없는 교사가 따로 이 학생을 관리해야 한다. 추후 계획을 세워 결손 된 수업을 따로 보충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에서 피해보상을 해주거나 아동인권침해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당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폭력 신고를 하면 즉시 학교폭력 신고대장을 작성한 후 48시간 이내로 해당 교육지원청에 공문으로 보고해야 한다.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사안은 관할 경찰서와 관련 행정기관에도 함께 보고해야 한다. 이 사안도 학생 한 명이 성희롱적인 내용의 댓글을 달아 경찰서에도 신고가 되었다. 학부모는 학교가 경찰서에 신고를 한 것을 두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법이 그렇다. 신고하지 않으면 책임교사인 내가 징계를 받는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관련 학생들을 불러 사실확인을 했다. 모두 한꺼번에 불러 조사를 하면 사실 관계 확인도 빠르고 좋을 텐데, 학생인권보호를 위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피해학생 1명, 가해학생 1명, 또 다른 가해학생 1명... 따로 불러서 사실확인을 해야 한다. 학생부실은 그냥 경찰서다.


조사를 하느라 점심도 못 먹었다. 동료교사가 안 쓰러웠는 지 두유 1개와 과자 몇 개를 주웠다. 나는 고맙다는 말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 먹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하면서부터 계속 살이 빠졌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학년 초가 되면 살을 빼고 싶은 선생님이 있으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하라고 말한다.


피해학생은 동의도 없이 자신의 사진을 올린 학생과 이 사진을 보고 댓글을 단 학생 모두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을 올린 학생은(나중에는 자기가 올렸다고 자백했다) 함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올렸는데 뭐가 문제냐고 억울해했다. 댓글은 단 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사진에 대한 느낌을 말한 것이 뭐가 학교폭력이냐고 오히려 자신들이 억울하다고 난리였다. 이럴 경우 학부모의 태도도 자녀들과 똑같이 대응한다. 학부모도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뭐가 문제냐고 하면서 가볍게 사과하면 되지 않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피해학생은 가해학생들 얼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 수업뿐만 아니라 복도에서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학교는 빨리 판단을 해야 한다. 피해학생이 가해학생들을 보기 싫다고 주장하면 학교장긴급조치로 법에 명시된 가해학생 조치 중 2호에 해당하는 '피해학생에 대한 접촉 금지'(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를 내려야 할지? 말지?를. 만약 조치를 내린다면 즉시 교육청에 공문으로 보고해야 한다.


사안조사는 하루 만에 끝나지 않는다.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모든 조사는 일과 중에 내가 수업이 없고 관련 학생 수업이 없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또는 퇴근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전담기구가 열리기 전까지(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업 준비할 시간이 없으므로 수업은 엉망이 되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폭력은 한 번에 한 건씩 차례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두세 건이 동시에 발생하기도 하고 간혹 다른 학교(지역) 학생들과 연관된 학교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14일 이내(상황에 따라 7일 연장 가능)로 학교폭력전담기구를 무조건 개최해야 한다.

과반수 이상이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학부모 위원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참석여부를 물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간절히 참석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전담기구 개최를 위해서는 학교폭력 관련 모든 서류를 위원별로 준비해야 한다. 전담기구 개최 목적은 단지 이 학교폭력 사안을 학교장자체종결로 처리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회부할지를 결정한다. 사안이 경미하여 학교장자체종결 요건을 갖추었더라도 피해학생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심의위원회로 넘어간다.

이번 건도 피해학생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넘어갔다. 이렇게 되면 할 일이 더 늘어난다. 심의위원회 요청 공문 작성을 위해 관련 서류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담기구 회의 결과에 대한 내부결재로 맡아야 한다.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갔다고 해서 이 학교폭력 사안이 해결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피해자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가해학생은 별것도 아닌 데 피해자 측에서 과도하게 반응한다고 학교를 괴롭힌다. 도대체 학교는 뭐 하고 있느냐고?


나도 심의위원회에 참석하여 학교폭력 책임교사로서 진술하였다.

너무 괴로웠다. 내가 학교폭력 책임교사가 아니었다면 이 학생들과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 교실에서 진달래꽃처럼 아름답게 만났을 것이다. 당연히 피해학생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이고 가해학생들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다. 심의위원들 앞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빠르면 3주 늦으면 한 달 후에 심의위원회 결과가 학부모와 학교에 동시에 통보된다. 피해학생 측이 원하는 학급교체(7호)가 아닌 학교에서의 봉사(3호) 조치가 내려졌다. 피해자는 너무 경미하게, 가해자는 너무 과도하게 조치가 내려졌다고 난리이다. 가해학생 학부모가 조치가 너무 과하다고 하여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 그럼 나는 또 관련 서류를 정리하여 보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위원회에 출석하여 진술도 해야 한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조치를 어떻게 했는지 추후에 결과 보고도 해야 한다. 혹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사안이라면 잊지 않고 해당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학생부 삭제 유무에 대한 회의도 열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학교폭력 책임교사인 내가 오롯이 다 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절차를 어기거나 잘못이 있을 시 징계를 받거나 고소를 당하는 것은 덤이다.






이야기가 깁니다. 그만큼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책임교사가 해야 할 일이 이렇게 길고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제가 학교폭력 책임교사, 학생부장, 학교폭력 담당 장학사의 경험을 살려 썼습니다. 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습니다.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용어입니다. 학교의 보직 중에 '책임교사'라는 명칭이 부여된 직은 학교폭력 책임교사가 유일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책임(責任)'이란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를 말합니다. 이기주 작가가 언어에는 온도가 있고 말에는 품격이 있다고 했던가요? 저는 여기에 말에는 '무게'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뭔가를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는 그것도 법령에 명시된 학교폭력을 책임진다는 말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퇴계 이황의 성리학'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에게는 매우 낯설게 다가옵니다. 때론 무섭기까지 하여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4조(전담기구 구성)


드라마 <더 글로리>, ***의 자녀의 학교폭력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매스컴에서는 가해학생, 피해학생, 학생들의 학부모만 언급합니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책임지는 교사(부장교사)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는 매우 일부분이며 더러는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경미한 학교폭력이라도 앞에서 이야기했던 힘든 절차를 거칩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걸핏하면 협박과 고소를 당합니다. 업무 담당자에게 승진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책임교사가 아니어도 받는 점수이고 교직사회 분위기가 승진에 관심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얼마 전에 발표한 교육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에서 책임교사들의 수업경감을 해주겠다는 내용은 좋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업무경감을 위해 더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여교사는 학교폭력 책임교사가 너무 힘들어서 하혈을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기간제 교사가 하는 경우도 많고 2년 이상 이 업무를 맡은 경우도 드뭅니다. 수당을 올려주고 승진가산점을 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학교폭력을 말할 때 묵묵히 학교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교사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news.eduhope.net/25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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