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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Apr 26. 2023

연진아! 교무실 출입금지야!

오늘은 아이들이 처음 보는 중간고사 날입니다.

오늘은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치르는 2023년 첫 지필고사(중간고사) 보는 날입니다.

특히 작년까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1학기에 기말고사 한 번만 봤는데 올해부터는 중간고사도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중2부터 이렇게까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쓰럽고, 한편으론 시험을 잘 보겠다는 의지가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학생들만 시험 공부하느라 힘든 게 아닙니다. 당연히 학부모님도 아이 뒷수발하느라 힘드실 겁니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아이들은 있는 생색, 없는 생색 잔뜩 낼 테니까요.


시험 문제 출제하는 선생님들도 예민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길게는 3주 전부터 짧게는 2주 전부터 문제를 출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문제 출제기간에는 당연히 학생 출입도 금지됩니다.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싶지만 간혹 매스컴에서 나오는 시험지 도난 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안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기출문제, 학원문제, 시중에 시판되는 각종 참고서에 나온 문제는 똑같이 출제하면 안 됩니다. 많게는 1년에 4번 시험문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스갯소리로 시험문제 한 번 출제할 때마다 수명이 1년씩 단축된다고도 말합니다.

시험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항의가 들어옵니다. 시험이 어려우면 '왜 이렇게 어렵게 내서 아이들의 기를 꺾느냐?", 쉬우면 "이렇게 쉽게 내면 어떡하느냐? 변별력이 없어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데 불이익을 받지 않느냐?" 등등.

그래서 선생님들은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게 출제를 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절대로.


더 글로리를 패러디한 '교무실 출입금지' 안내판이 재밌습니다






오늘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이 기(氣)를 펴는 날입니다.

제가 쓴 글에서 몇 번 말씀드렸는데, 학교 교육과정이 공부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서만 운영되면 안 됩니다.

공부 말고(이외) 잘하는 것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교육과정이 운영되어야 합니다. '결을 따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139


이제 이 시험이 끝나면 공부 말고 다른 것을 잘하는 학생들이 기(氣)를 펴는 달[月]이 옵니다.

바로 가정의 달 5월입니다.

5월은 아이들이 가장 신나 하는 현장체험학습(봄소풍)과 체육대회(운동회)가 있습니다. 춤과 노래를 마음껏 뽐낼 수 있고, 손흥민처럼 드리블 실력도 친구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결을 가진 학생들을 품어 줄 수 있도록 조화로운 학교경영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학교폭력을 없앨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너 왜 울고 있니?”


“시험을 망쳤어요. 2개나 틀려서 93점밖에 못 받았어요.”


“어. . . 다음에 더 잘 보면 되지. . .”


그 옆에 학생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아 너는 시험 잘 봤나 보구나?”


“아 저요? 네 저 잘 봤어요. 무려 65점이나 받았어요.”


복도에서 만난 두 학생과의 대화입니다.

오늘은 공부 잘 하는 학생만 기 펴는 날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봅니다. 공부를 잘 못 해도 기를 펴고 충분히 행복한 날입니다.

훗날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누가 더 행복한 아이일까요?


이 녀석들이 제 삶의 스승입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어떤 학생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친구의 응원 메시지입니다. 스트레스 받는 시험일텐데 이런 와중에도 우정이 싹트고 있는 걸보니 시험이 이런 좋은 점도 있나봅니다.


"수학은 실력이 아닌 그 당일날의 운빨일 뿐"

"틀린 문제는 어차피 틀릴 운영이었어^^"


 





저도 시험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는 추억이 있습니다.




"재석아! 뭐 해? 학교 앞에 주막이 새로 오픈했는데 우리 막걸리 한 잔 하러 가자?"


"안돼! 내일 운전면허 필기시험 보는 날이야."


"야~ 무슨 운전면허 시험을 공부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냥 내일 아침 한 번 쭈욱 훑어보고 시험 봐도 괜찮아? 나도 그렇게 해서 무난히 합격했어. 참 호동이도, 하하도 내일 시험 보는 데 지금 막걸리 마시러 가. 그러니까 너도 와라!"


나는 대학 2학년 가을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았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공부 안 해도 상식만으로 봐도 모두 합격한다고 이미 합격한 선배와 동기들이 말했다. 그래도 내일이 시험이니 오늘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는데 함께 시험 보는 친구들 모두 막걸리를 마시러 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간 적이 없다.

나 포함 4명이 필기시험을 봤는데 나만 불합격했다. 똑같이 전날 술을 마셨는데 나만 떨어진 것이다. 불합격 소식은 봄바람에 꽃가루 날리 듯 순식간에 우리 과에 퍼졌다. 너무 부끄러워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한 달 후에 필기시험을 다시 봤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학교를 못 다닐 것 같아 2주 전부터 당시 유명한 크라운 출판사의 운전면허필기 시험문제 책을 샀다. 이것만으로도 불안하여 지금은 사라진 동양출판사의 필기시험문제 책도 샀다. 그러니까 운전면호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책 2권을 사서 공부를 한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그것도 한 문제만 틀렸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모두 술을 마셨는데 나만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떨어진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졸업할 때까지 따라다녔다.




나는 92학번 학력고사 세대이다.

아마 우리가 대입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고 이듬해 93년부터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학을 갔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전기 대학모집과 후기 대학모집이 있었다. 나는 예상과는 달리 전기 대학 입시에 보기 좋게 떨어졌다. 바닷가에서 파도와 싸우며 학비를 보내는 부모님을 더 이상 고생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재수를 하지 않고 바로 후기 대학 사범대에 지원하였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을 보지만 당시에는 지원하는 대학교에 직접 가서 시험을 봤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시험 일주일 전부터 대학교 근처 하숙집을 구해 준비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험 전날인 1992년 1월 20일에 시험지가 도난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전기 대학에 떨어진 것도 모잘라 후기 대학 시험 전 날에 시험지가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험은 2월 10일로 미뤄졌고 나는 학교 앞 하숙집에 양해를 구해 시험치르는 날까지 계속 머물기로 했다. 이 사건으로 설날에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이후 나는 임용고시와 박사 과정 시험 그리고 장학사 시험까지 치렀는데 다행히도 운전면허 필기시험 불합격만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운전면허시험 불합격자라는 오명은 지금까지도 가끔 있는 술자리에서 가장 맛있는 안줏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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