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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Oct 19. 2023

쓸데없는 권위의식은 '개나 줘버리고'

교장의 솔선수범

얼마 전에 지역 중학교 학부모 대상 고등학교 입학설명회가 있었습니다.

대학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고등학교도 성실하고 착한 학생을 우리 학교로 보내달라고 홍보하는 자리여서 준비를 많이 합니다. 대부분 이런 자리에는 교무부장이나 교육과정 부장이 앞에 나가 학부모에게 학교를 홍보합니다. 어떤 학교는 서울대에 재학 중인 졸업생을 불러 학교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중학교 학부모에게는 내 아이도 저 학생처럼 서울대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데는 이만한 홍보 전략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학부모의 마음을 얻기 위해 파격적으로(?) 교장인 제가 직접 설명회 자리에 나갔습니다.



"안녕하세요. 000 고등학교 교장 송중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행사 관계자에게 교장이 참석한다고 미리 말하지 않고 학부모 앞에 서서 인사를 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많이 놀란 눈치였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뜨기도 했습니다.  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학부모가 놀란 이유는,

교장이 직접 이런 자리에 나와 학교 홍보를 한 것과

당연히 교무부장교사인 줄 알았는데 너무 젊은 교장이어서 깜짝 놀란 것 같았습니다(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귀한 자녀, 본교에 보내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3년 동안 예쁘고 건강하게 성장시키겠습니다."

공모교장인 저는 임기가 4년입니다. 그래서 학생들 곁에서 3년 동안 성장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깜짝쇼(?)가 학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앞에 나가 마이크를 들고 약속한 말들은 진심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이건 반칙이죠. 교장선생님이 직접 나오시면 우리 학교는 어떻게 해요?"

설명회를 끝내고 강당을 빠져나가는데 다른 학교 부장교사가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물론 면이 있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못 들은 척하고 밖을 나갔습니다.


앞모습은 많이 놀란 표정이었답니다. ^^






이른 나이에 학교의 장(長)이 된 저는 교장실에 앉아 있으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지금의 학교 모습이 과연 괜찮은가?

선생님을 어떻게 도우면 행복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게 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바람직한 리더의 상(像)에 대해 고민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372


아직 교장직을 수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답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권위의식은 '개나 줘버리고'

책상 앞에 앉아 말만 하지 말고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교장이 되자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이것을 운영하는 사람은 선생님입니다. 이분들의 자발성 없이는 교육과정 운영을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좋은 리더십이 있겠지만, 저는 우선 교장이 먼저 행동하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을 택했습니다. 그럼 선생님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일 거라 확신을 갖고요.




얼마 전까지 코로나로 학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수업은 대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코로나에 걸리면 선생님들은 착한 성품으로 죄송하다는 말고 함께 교장에게 전화를 합니다.


"교장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것이 선생님 잘못이 절대 아닐진대 대부분 선생님들은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전화를 받는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걱정 마시고 선생님 건강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선생님 없으면 학교 업무가 마비된다는 착각은 마시고요. ^^"

이렇게 저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교장(교감)이 먼저 걱정 말라고 하고 장난스러운 말로 대답을 해주면 선생님은 한결 마음 편히 자기 몸을 잘 살핍니다.


이것이 바로 관리자라고 하는 교장(교감)이 선생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이해해야 할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교장선생님, 어제 학부모 앞에서 직접 학교 홍보를 하셨잖아요? 끝나고 학부모들이 '저 교장선생님이 너무 댄디하고 멋지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선생님 한 분이 교장실에 들어와 제게 한 말입니다. 이분은 저에게 절대로 없는 말을 지어내어 아부성 발언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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