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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Dec 13. 2023

성격에 맞는 리더십

리더십은 가변적이다. 자기 성격대로 리더십을 발휘하면 된다.

지난달 교육청에서 '학교장의 미래교육 역량 강화' 연수를 받았습니다. '리더자의 갈등관리 유형 진단'을 관심 있게 들었는데, 저의 갈등관리 유형을 체크리스트로 알아봤더니 '수용'과 '타협'은 높은 수준, '협력'과 '회피'는 중간 수준, '경쟁'은 낮은 수준으로 진단되었습니다.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하면 저는 ISFJ라고 나옵니다. 일명 '수호자'라고 하더군요.  ISFJ의 특징으로(출처 : https://www.16personalities.com/ko),

첫째, 진정한 이타주의자로 다른 사람의 친절에 더 큰 친절로 보답하며 열정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업무와 사람을 대한다.

둘째,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울 때 에너지를 얻고 보람을 느낀다.

셋째, 겸손하고 자만하지 않는 성격으로 다른 사람의 인정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금 과도하긴 하지만 용한 점쟁이처럼 어쩜 제가 갖고 있는 성향(성격)을 이리도 잘 맞출까? MBTI를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이런 성격유형이 좋은 점도 있지만 학교의 교육과 행정을 책임지는 교장으로서는 단점도 많이 존재합니다.


저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말 또는 어떤 상황의 분위기를 깨는 말을 잘 못합니다. 이런 성향은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고 헤아리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좋은 점은 독특한 성향을 지는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잘 지내는 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했던 직장 상사는 저를 매우 좋아합니다. 웬만하면 사람과의 관계를 어긋나지 않게 하는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부서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사자인 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것입니다. 교육청이나 학교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뻗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모든 감정을 거기에 다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장으로서는 오히려 조직 발전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생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하는 길이라면 교장은 교직원에게 쓴소리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힘든 교육정책을 운영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무 상 반드시 해야 할 말이나 행동은 합니다. 직설적이거나 구성원의 동의나 공유의 과정 없이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꽤 오래 걸리고 저 또한 많이 힘이 듭니다.


다음은 저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말수가 적습니다. 아마도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집중하고 상대에게 관심을 갖기 때문일 것입니다. 협의나 회의를 주도하지 않고 듣고 있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제 입장을 말하는 편입니다.

학교장이 되니 이런 나의 성격이 매우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공적인 업무 이외의 자리에서 학교장은 분위기를 다운시키지 않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야 합니다. 제가 봐왔던 많은 교장들은 그랬습니다. 학부모와의 만남에서도 대화를 리드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 저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피나는 노력으로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모임도 업무 연장 선상이어서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주로 듣고 가급적 적게 합니다. 집에서도 별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절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남자라고 한탄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 이기려고 겨루는 경쟁은 승자와 패자가 생깁니다. 저는 승자의 기쁨보다 상대방이 패했을 때 느끼는 고통, 즉 패자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성향은 운동 경기를 할 때도 나타납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당구나 배드민턴, 고스톱을 칠 때 처음에는 최선을 다하다가도 결국 대충대충 경기에 임하여 동점을 만들거나 일부러 질 때도 있습니다. 상대가 아파하는 모습을 못 견디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때는 축구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물론 축구도 지고 이기는 게임이라 힘들지만 일대일 경기가 아닌 다수와 함께 하는 운동이어서 그 패자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어 괜찮습니다. 지금은 수영, 사이클과 같이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교육청에서 장학사를, 교감을 그리고  지금의 교장을 하고 있을까요? 


앞에서 밝혔듯이 부단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으로서 해야 할 말과 행동은 결국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입니다. 해야 할 일은 교장 혼자 독단적으로 시행(전달)하지 않습니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제 생각을 공유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오기 전부터 교복자율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2학기 내내 교복자율화가 학생 태도와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혼자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 교복을 제대로 입기로 했습니다. 교장인 제가 이런 공표를 하기 전에 이미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과 여러 번 대화하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지금 발표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크지 않습니다. 교복자율화 폐지를 반대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언제든 교장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교육청 장학사 할 때도 그랬습니다. 어떤 정책을 조율할 때 협상 테이블에 바로 앉아 협의하면 서로 자기주장만 하고 결렬될 때가 많습니다. 정책 추진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만나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후 최종 협의 테이블에 앉아 조율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저 또한 힘이 듭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478


회의를 할 때도 교장인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업에 교장이 먼저 말을 하면 직원들은 입을 닫아 버립니다. 교장이 이미 저렇게 하겠다고 결정한 사안에 대해 굳이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대한 의견을 듣고 바람직한 제안이면 가급적 수용합니다. 그래야만 책임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일을 추진하더라도 모든 책임은 학교장에게 있다고 안심시켜야 합니다. 또한 모든 일은 추진 과정에서 계획대로 안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교장이 잘잘못을 따지고 추궁하면 안 됩니다. 어떤 조직이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함께 지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리더가 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처리는 사람에 따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리더의 권위입니다.

구성원 한 분 한 분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권한을 분산하면 자칫 교장의 권위는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권위'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권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구성원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건 권위가 아니라 '고집', '아집', '위선', '독선'입니다.

물론 리더가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민주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아주 가끔은 리더를 무시하거나 패싱(?)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냥 웃고 넘어가든지 아니면 기회를 봐서 알아듣게 말해주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49세에 학교장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장의 역할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언을 해주는 선배 교장들은 나와 성격이 다릅니다. ISFJ의 성격을 지는 나라는 사람만의 리더십을 발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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