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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22. 2023

저를 소개합니다.

고등학교의 11월은 매우 바쁩니다. 수능 이후에 학생들 진학지도도 해야 하고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기말고사 등등등. 교장도 덩달아 바쁩니다. 그래서 요즘 이곳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교직원 연수가 있습니다. 주제는 '교장의 2024학년도 학교경영의 방향'입니다.

연수를 준비를 하면서 제가 이 학교 공모교장으로 지원했을 당시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었습니다. 혹시나 초심을 잃고 나태해지지 않았나 반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 이 글을 쓸 때보다 열정이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성실함을, 선생님으로부터 사람다움을 배웠습니다


부모님은 바닷가에서 거센 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평생을 사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이런 성실함과 우직함을 보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당신처럼 바다에서 힘든 일을 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중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00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 학교 다니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향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 눈 팔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성적으로 00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고등학교는 00고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비평준화여서 중학교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를 지원하여 갔습니다. 그때 고등학교는 거의 모든 학교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였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매일 야자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야간 자율학습을 꾸준히 한 덕분에 내신성적이 우수하였습니다.      

대학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영향을 크게 받아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를 지원하였습니다. 고1 담임선생님은 부모님과 떨어져 힘들어할 때 제게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같은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면 집에 가는 길에 근처 치킨집에 들러 맛있는 통닭을 사주셨습니다. 학교에서는 무서운 선생님이셨지만 함께 치킨을 먹을 때는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고 제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교사가 되어 지금 담임선생님처럼 학생들이 힘들어할 때 따뜻한 위로를 해주고 인생 선배로서 좋은 가르침을 주고 싶었습니다.      

사범대학교에 진학한 저는 기대와 달리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힘들어할 때마다 담임선생님의 격려와 지지가 있었던 것처럼, 대학에서도 전공 교수님의 믿음과 응원 덕분에 지금의 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학과 수업을 자주 빠지는 날이면 교수님은 저를 연구실로 불러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때론 막걸리에 파전을 사주면서 방황하던 20대의 청춘을 붙잡아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학생으로부터 존경을, 동료교사로부터 존중을 받는 교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방황하는 말과 행동을 귀담아듣고 지켜보는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기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너희들은 선생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저는 교실에서 3월 첫 수업을 할 때마다 칠판에 <청출어람(靑出於藍)> 한자를 쓰고,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순자의 ‘권한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단다.”                    

푸른색은 쪽이란 풀에서 나온 것이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 而靑於藍),
얼음이 물이 변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氷水爲之 而寒於水)

“선생님은 쪽풀이고 물이지만, 너희들은 장차 커서 쪽풀보다 더 푸르른 사람, 물보다 더 차가운 사람, 즉 너희들은 선생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저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칠판에 판서를 정신없이 하면서도 항상 뒤처지는 학생이 없나 뒤를 자주 돌아봤습니다. 교실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는 학생이 발견되면 잠깐 분필을 놓고 제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어른이 되는 것도 좋고 너희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되어도 좋단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권 대학에 가면 금상첨화지만 꼭 좋은 대학에 못 가더라도 사회에 필요한 사람 또는 너희들 각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단다. 그러니 조금만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지지와 응원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교사인 제 마음 한구석에는 ‘청출어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면서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너희들이 힘들 때면 언제든 찾아 오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게


"선생님 어떡해요? 우리 아이가 경찰서로 끌려갔어요 “

"네? 왜 경찰서에 갔는데요?"

"어떤 여자를 성추행했다고 잡아갔는데,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적 없데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늦은 밤에 학생 어머니로부터 급하게 저를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경찰이 집에 찾아와 자녀가 성추행을 했다고 하면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너무나 당황하여 제일 먼저 담임인 저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 반 용수(가명)는 몸무게 120kg 넘는 아이였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맞는 의자가 없었고 책상도 한쪽 다리만 들어가고 나머지 한쪽 다리는 어쩔 수 없이 책상 밖에 내놓아야 했습니다. 우리 반 교실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 선생님은 이런 용수를 무서워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용수의 장래 희망은 유치원 선생님이었습니다. 용수와 진학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용수야? 너는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

"네 선생님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대학이라도 괜찮습니다."

"허허. 네 외모로 유치원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이 엄청 무서워할 텐데, 동료 선생님들도 그렇고"

"하하. 그때까지 100kg 이하로 몸무게를 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유치원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좋다. 지금 성적으로는 조금 부족하니까 우리 더 열심히 해보자!“     

아이들을 좋아하는 용수는 심성이 고운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모 때문에 인근 불량배들이 용수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습니다. 성추행 혐의로 경찰서에 붙잡혀 간 것도 불량배 형들이 용수가 그랬다고 거짓 진술하는 바람에 붙잡혀 간 것이었습니다.

용수가 경찰 조사와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때, 저는 동료교사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용수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작성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저 또한 법원에 출석하여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다행히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용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용수는 고3 때 법정 싸움을 하느라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000이 된 첫해에 어떤 사람이 제자라고 하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보자마자 우리 반 학생 용수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살이 빠진 용수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용수는 저를 한참 찾았다고 합니다. 교육청의 스승 찾기에도 문의해 보고 모교에도 알아봤는데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제가 000에 근무한다는 걸 알고 한걸음에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 둘을 키우며 작은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면서, 고3 시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만 내리사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충분히 내리사랑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방황했을 때 저를 사랑으로 대해주셨던 선생님들의 사랑을, 저는 교사가 되어 다시 우리 학생들에게 베풀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작은 말과 몸짓은 어떤 학생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나침판이 되어 한 학생의 인생을 바꾸는 힘을 발휘합니다. 

학교장이 되어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학생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겨 아이의 삶을 바꾸는 학교경영을 펼치겠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장학사가 되었습니다


00고, 000고, 00고, 00고에서의 교사를 마치고 장학사가 되었습니다. 학생을 사랑하고 동료교사와 협력하는 제 경험과 교사 시절 쌓아온 전문성을 교육행정가가 되어 학생과 교사의 성장을 돕고 싶었습니다.

처음 맡은 업무는 학생들의 심리정서를 돕는 Wee센터와 학교폭력 담당이었습니다. 장학사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은 꺼리는 업무입니다. 당시 선임 장학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맡은 지 6개월밖에 안 되어 저는 이 업무를 맡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에서 학생부장교사를 많이 한 현장 경험을 살려 실질적인 학교지원을 하고 싶어 자진해서 이 업무를 맡겠다고 하였습니다.

학교폭력 업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단순히 법과 규정만 전달하는 장학사는 되지 말자’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관내 학교에서 학생 한 명을 대상으로 집단따돌림을 한 학교폭력이 발생했습니다. 학교폭력 처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령에 따른 처분만 강조하여 피해학생이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도 가해학생들이 진심 어린 사과는 하지 않은 채 법령에 명시된 처분만 받게 되었고, 피해학생은 상처가 아물어지지 않고 학교를 그만둘 수 있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법적 절차는 다 끝났지만 가해학생과 부모, 피해학생과 부모를 계속해서 만났습니다. 혼자 힘으로 부족할 때는 지역사회 청소년단체와 함께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와 피해학생의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사안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가해학생 어머니의 하소연도 귀담아 들어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가 나쁜 짓을 한 건 알겠습니다. 그에 대한 처벌도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우리 아이도 치료와 보호가 필요합니다. 먹고살기 바빠서 저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새끼가 이 지경이 된 줄 몰랐습니다. 제 아이가 끔찍한 말로 가해자인데, 피해자를 위한 여러 지원 방법들은 있어도 가해자를 위한 대책은 없어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저같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내겠습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대부분 피해자와 그 부모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가해학생 부모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옆 상담실로 모시고 가서 차 한 잔을 드리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알코올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이야기, 자녀와 단 둘이 남은 본인이 식당일 등의 궂은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운 이야기,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나 집에 오면서 자녀를 혼자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자녀가 또래 친구들보다 발달정도가 늦어 학교에서 각종 말썽을 일으킨 이야기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조용히 들어주기만 하였습니다.

학교폭력을 일으킨 본인 자녀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벌을 받는 것만으로 자녀가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상담치료도 받고 병원도 다니고 싶은데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울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그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장학사님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 가해자라고 손가락질만 하는데 제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줘서요. 어렵겠지만 아이가 착한 마음을 갖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부모로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저희가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도울 방법이 없지만 여기저기 알아봐서 꼭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학생과 어머니를 끝까지 돕고 싶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지역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이 학생을 위해 비용 걱정 없이 장기간 상담치료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어머니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000가 하는 일은 학부모님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심한 경우에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장학을 해야 함에도 단순한 교육행정일을 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급한 사례들처럼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교감이 되었습니다


2022년 3월 1일에 00학교 교감이 되었습니다. 교사 대부분을 00학교에서 근무한 저는 00학교 발령을 받아 내심 실망했지만 교감 직을 열심히 수행하였습니다.

교감을 학교장과 교사의 중간에 있다고 해서 중간 관리자라고도 합니다. 1년 6개월이지만 지금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교감인 저에게 학교 행정의 많은 부분을 권한 이임해 주셨습니다. 다만 최종 결정을 내릴 때 마지막으로 교장한테도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교장선생님은 당신이 경험한 사례를 들려주면서 저에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전해 주신 내용의 공통점은 모두 학생을 중심에 두고 결정한 사례들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의 모든 결정에 학생을 중심에 두어야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교사의 자발성입니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학교장도 교감도 아닌 교사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교 교육과정도 교사의 자발성이 없으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잘 살피고 헤아리는 성격을 지녔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이런 저의 장점을 살려 교사에 대한 학부모 민원을 해결한 사례도 있습니다.

"000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유인물의 정답만 알려주고 학생들에게 알아서 공부하라고 합니다. 당연히 선생님은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풀이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교사는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이유를 학생의 입장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해당 교과 선생님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수업방식의 잘못됨을 깨닫고 학생을 위해 개선하는 것이니까요. 빠른 해결책은 해당 선생님을 바로 불러 있는 사실 그대로를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점심식사 이후에 조용히 선생님을 불러 이야기하였습니다(저는 주로 좋지 않은 말은 맛있게 점심 먹고 난 이후에 합니다). '선생님의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떠신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교감에게 특별히 부탁할 것은 없는지?' 등을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잘 안 하다가 나중에는 요즘 이러저러한 일들로 많이 힘들었다고 하면서 본인이 먼저 이런 일들 때문에 수업을 소홀히 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에게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선생님 요즘 많이 힘드셨겠어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과의 만남을 통해 전문성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수업만큼은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적극 돕겠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학교 만족도 조사 서술형 문항에서 어떤 학부모님 이런 의견을 주셨습니다.      

"우리 아이가 000 선생님 수업을 엄청 좋아합니다. 너무 재미있고 알기 쉽게 수업해 주신다고 000 수업이 있는 날이면 집에서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고맙습니다."     

학교장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인 동참 없이는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없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 한 분 한 분을 귀하게 모시고 그들이 학교장의 교육철학에 동참하게 하여 우리 학생들의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학교장이 되어,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학교에 가고 싶다는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하겠습니다.  


도전을 할 때 기꺼이 저를 추천해 주신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박사 과정 지도 교수님이고 또 한 분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30대 후반에 저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수가 되고자 어느 대학의 교수 공채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불합격하였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학술모임에서 공채시험에 도전했던 대학 교수님이 제 지도교수님께서 저를 적극 추천한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교수님의 추천서를 읽고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외국과 달리 한국은 교수채용에서 추천서는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저를 위해 추천서를 써 주셨습니다. 다음은 추천서의 일부분입니다.                          

0박사는 연구와 교육활동에 무척 성실하고 열정적이라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저와는 중학교 00교과서(2007개정교육과정)를 공동집필하고 ...<중략>..., 우리나라 000 교육 발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0박사는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매우 원만하다는 점이 또 다른 장점입니다.... <중략>...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성품은 조직생활에서의 큰 미덕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한 분은 지금의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000고가 교장자격 미소지자도 지원할 수 있는 공모교장교로 선정됐다는 공문을 본 순간부터 심장이 마구 뛰고 설렜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 00에서 살았고 중·고등학교를 이곳에서 졸업했으며, 교사가 되어서는 00중과 00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사가 된 이후에는 언젠가 이 지역 학교의 교장이 되어 선생님들과 함께 ‘학생의 결을 따르는 교육’을 펼쳐보는 것이 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교장 선생님이 저를 부르신 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00 선생님 혹시 교장공모교 공문 보셨나요? 보니까 00 선생님이 가고 싶어 했던 지역에 마침 공모교장교로 지정된 학교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00 선생님이 적임자라고 생각됩니다. 도전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00 선생님이 작년에 부임하고부터 우리 학교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님으로부터 학교가 좋아졌다는 소리도 많이 들리고요. 아쉽지만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교장 선생님이 붙잡았으면 제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텐데, 직접 저를 불러서 한 번 도전해 보라고 격려해 주시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올해 저는 49세입니다. 어떤 분들은 학교장을 하기에 너무 젊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40대 훌륭한 지도자들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떤 신념으로 가르쳤냐? 동료교사를 어떤 성품으로 대우했느냐? 학부모님을 교육가족으로 여기고 성심으로 대했느냐? 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교사와 장학사 그리고 교감의 역할을 수행한 경험도 풍부합니다. 이렇듯 누구보다 교육경험이 풍부하며 젊은 학교장으로서 건강하고 행복한 000고를 만들겠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근무한 학교 학생들이 스포츠클럽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직접 참관하면서 저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상대팀에는 농구를 정말 잘하는 선수가 한 명이 있었는데도 결국 우리가 이겼습니다. 우리 팀은 특출 나게 잘하는 선수는 없었지만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쳐 조직력으로 승리를 한 것입니다.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장의 역량과 전문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학교비전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교직원 전체가 한 팀이 되어 실천해야 합니다. 저는 000고 교직원의 자발성을 이끌어 지금보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학교에 가고 싶다는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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