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한 달 전 교육청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9월에 한중일 학자들이 모여 인성교육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제게 기조연설을 해달라는 부탁의 전화였습니다. 강연을 한지 5년이 넘어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잘 아는 후배의 부탁이라 단칼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정해진 주제로 원고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고심 끝에 1년 동안 교장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이상하게 술술 글이 써졌습니다.
실제 경험한 바를 쓰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알았습니다.
드디어 기조연설을 끝냈습니다. 지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마트 4천9백원 짜리 화이트와인을 편하게 마시고 있습니다.
주제 :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00 인성교육의 방향
1. 학생의 삶과 직결되는 미래사회의 모습
우리 아이들의 삶과 직결되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디지털 소통의 증가와 관계의 복잡성’,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윤리적 갈등’, ‘기후변화가 가져올 생태계 위기’로 나타날 것입니다. 미래사회는 얼굴을 마주 보며 이루어지는 소통이 아니라 첨단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방식의 소통이 지금보다 더 확대될 것입니다. 이런 소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것이고 다문화·다인종의 특정(또는 불특정) 다수와 연결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학생 개인의 소통은 가정과 학교를 넘어 전 세계와 연결되어 복잡한 관계맺음의 양상을 띠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은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선택과 행동이 나와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2. 미래사회 인성교육의 중요성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학교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학교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미래를 대비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학교는 학생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오게 될 많은 문제에 합리적이고 윤리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중심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와 인종,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포용과 협력 교육이 필수적인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유발 하라리, 2015).
따라서 00 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미래사회 변화에 잘 대응하고, 책임감을 갖고 나와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교육, 즉 인성교육을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000교육청, 2024).
3. 00 인성교육의 방향
마르틴 부버의 ‘인간은 나와 너와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자아와 나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는 주장은(마르틴 부버, 2020) 학교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학교의 아이들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주변의 친구에게서 찾습니다. 이는 모든 교육의 출발점은 ‘관계’에서 시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관계맺음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외면하는 순간 학교 교육은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다움은 관계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방안에 혼자 있거나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은 인간다움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그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은 학생의 관계맺음, 즉 나와 너와의 관계, 나와 선생님과의 관계, 나와 공동체와의 관계, 나와 생태계와의 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학교는 학생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00 인성교육의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합니다.
첫째, 인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학생 개인’입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인격체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임을 자각시키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인성 프로그램을 실시하더라도 학생이 존중받지 않고 스스로도 귀한 존재임을 모른다면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없습니다. 학생 모두가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둘째, 인성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인성은 우리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언제부턴가 서점에는 ‘인성이 경쟁력이다’, ‘인성이 좋아야 출세할 수 있다’ 등의 책들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책의 내용은 결국 인성이 좋은 사람이 인정과 지지를 받아 진정한 리더로서 대우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써 인성을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 강조했듯이 인성은 나와 함께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고의 방법입니다.
셋째, 인성교육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학교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고 선생님은 수업하고 행정업무 처리하기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교가 인성교육을 일회성 행사 위주, 담임교사의 조종례 시간에 잠깐, 피드백이 없는 동영상 시청 등 효과가 미미한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런 교육으로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인성을 함양시킬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본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라고 하였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 2022).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습관화해야 비로소 인성이 함양됩니다. 00도가 추진하고 있는 유·초·중·고 학생의 성장 단계별 인성교육처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넷째, 인성교육은 특정 교과교사가 아닌 모든 교과교사가 함께 해야 합니다. 교과교사가 있는 중등학교에 해당될 것입니다. 2014년 12월에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인데 어떻게 인성(도덕)을 법으로 제정하여 강조할 수 있느냐?’, ‘인성교육은 도덕과에서 해야지 어떻게 전교과에서 담당할 수 있느냐?’ 등. 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논란은 상당 부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은 법으로 강제할 만큼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필자는 전 교과교사가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인성에 대한 이론적 기반(철학적, 교육학적)은 해당 교과에서 제시하고, 인성교육의 방법론은 교과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면 됩니다. 얼마 전에 본교 수학 선생님의 수업공개를 참관했습니다. 윤리교육을 전공했던 필자는 어떻게 수학 시간에 인성교육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선생님은 수학만 가르쳤고 인성교육은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신기하게도 학생들은 배려와 협력의 가치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모둠 수업을 하는데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못 하는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주고 있는 모습 그리고 함께 어려운 문제를 협력해서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저절로 인성이 함양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과 특성에 맞게 인성교육을 하면 됩니다.
다섯째, 인성교육의 성패는 리더의 태도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에서의 리더는 학교장만이 아닙니다. 담임교사와 교과교사, 심지어 행정실 직원까지 모두 리더입니다. 학생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어른이라면 모두 리더입니다. ‘리더란 니(리)가 더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리더에 위치에 있는 사람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특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솔선수범을 넘어 교행일치(敎行一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교사도 직장인일 뿐인데 너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 거 아니냐!’라고 볼멘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나라는 교사에게 이런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인성교육은 가정과 연계해야 합니다. 가정은 인성교육을 하는 최초의 학교입니다. 인성은 학교의 지속적인 교육 즉 습관을 통해 성장합니다. 하지만 최초의 학교인 가정과 함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아무리 무단횡단하지 말라고 가르쳐도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하면 학교 교육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서 가정과 연계하는 인성교육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교육도 함께 해야 합니다.
4. 마무리
대부분 학생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돕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인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하철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내 앞에 섰을 때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을 했을 때라야 비로소 한 사람의 인성은 완성된 것입니다. 로버트 캐슬런(Robert L. Caslen, JR)은 인성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인성은 행동을 동반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이 행동은 세계에 유익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계에 유익한 행동은 결국 그 이익을 제공한 사람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입니다(로버트 캐슬런, 2021). 우리는 흔히 남을 돕는 행위를 대가 없는 희생이라고 하지만 이런 실천은 결국 세계와 나 자신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축구와 야구를 좋아합니다.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 관람하는 일명 직관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메이저리그에는 특별한 상이 있습니다. ‘르베르토 클레멘테 상(Roberto Clemente Award)’입니다. 이 상은 1년에 한 번 야구선수의 성적이나 기록이 아닌 사회 기여와 봉사 등의 인성을 기준으로 선정합니다(https://www.mlb.com). 수상한 선수 본인은 물론 구단도 매우 영광으로 여깁니다. 또한 후보로 선정됐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추신수 선수도 2020년에 이 상의 후보로 추대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올 미래사회의 진정한 리더는 이처럼 인성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인성을 갖춘 리더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 더 나아가 생태와의 공존을 위해 자기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00도의 모든 학생이 ‘르베르토 클레멘터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00 인성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학교급이 다른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인성교육 사례 발표가 있습니다. 학생의 성장단계, 학교급별로 실시한 교육활동에 대한 사례 발표는 00 인성교육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매우 뜻깊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례 발표를 보시고 우리 학생의 인성 함양을 위한 소중한 깨달음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5. 참 고 문 헌
로버트 캐슬런 외, 오수원 옮김(2021),『인성의 힘』, 서울: 리더스북
마르틴 부버, 김천배 옮김(2020),『나와 너』,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유발 하라리, 전병근 옮김(2015),『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서울: 김영사
아리스토텔레스, 박문재 옮김(2022),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울: 현대지성
https://www.mlb.com/awards/roberto-clemente (검색일: 202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