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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18. 2024

그 가을 덕수궁 돌담길에서 우리는

그토록 더웠던 여름이 하루아침에 가을로 변했다.

문득 이 가을도 자고 일어나면 차가운 겨울로 변할 것만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예고 없이 "우리 단풍 구경하러 춘천 가자"라고 말했다.

"싫어. 차가 많이 막힐 것 같아. 기차로 가면 모를까." 아내는 작년 이 맘 때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자동차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기차표는 없을 텐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 후 표를 검색했다. 당연히 열차표는 매진이었다.

"그럼 우리 어디 갈까?"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이 가버릴 것 같아 아내를 재촉했다.

"우리 정동전망대가자"라고 아내가 말했다.

"강릉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 텐데..."라고 말했더니, "자기는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도 정동전망대를 강릉에 있는 정동진으로 착각하네. 하하하"라고 아내는 바닷가 촌놈인 나를 보고 웃는다.

그렇다. 서울살이 10년이 넘었는데도 이곳 서울이 낯설다. 내게 있어 서울은 내 도시가 아니라 타인의 도시 같다. 

강릉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가을맞이 외출을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했다.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과 서울시청은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볼 수 있는 멋진 장소였다.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우린 젊은 커플처럼 자연스럽게 서로 팔짱을 꼈다.

낙엽 흐트러지게 떨어지는 덕수궁 길은 결혼 26주년이 되는 중년의 부부를 20대 신혼으로 안내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아내의 손은 따스했다.

가을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 부부가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자식 키우느라 잊고 있었던 그 시절 서로에게 느꼈던 설렘의 감정을 소환했다.


낙엽 지는 길을 걷다 밖이 환히 보이는 '정동커피'에 들어갔다.

작은 테이블이 일곱 개뿐인 아주 작은 카페였다.

카페인 과민 반응이 있어 커피를 마시지 않는 아내와 난, 자연스레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이 가을의 끝자락은 이렇게 아내와 나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를 주었다.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비와 바람이 세차게 부니 은행나무의 나뭇잎이 겨울 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마치 노란 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것 같았다.

"자기야 요즘 글 안 써. 왜 밖에서 사진 안 찍어" 넋을 잃고 밖을 쳐다보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나는 "응 찍어야지"라고 말하며 핸드폰에 가을을 담았다.

아쉽게도 소리는 담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환호 소리, 노란 단풍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2024년 가을이 지는 소리...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앞으로 매년 11월 셋째 주 토요일에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정동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자"

아내는 말했다.

"응"


11월 셋째 주 토요일 덕수궁에 오시면 50대 중년 부부의 수줍은 첫사랑을 볼 수 있다.


아내가 롱다리로 찍어준 사진(좌), 눈처럼 내리는 단풍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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