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Nov 08. 2024

수영 상급자가 되면 생기는 일

'수린이가 시골 수영장에 가면 생기는 일' 그 이후 이야기

회원님은 오늘부터 상급자 코스에서 강습받으시기 바랍니다.

2024년 11월 4일(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중급자 레일에서 수영 강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는 상급자 코스로 가라는 말을 하였다. 


"저.. 저요? 네 무슨 말씀인지?"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이라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네 회원님 맞습니다. 오늘부터 옆 레일에서 강습받으면 됩니다."

강사는 내가 맞다고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강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큰 소리로 대답한 후 옆 레일의 상급자 코스로 옮겼다. 



그렇다. 

2022년 5월에 수영 초급반을 등록한 후 장장 2년 6개월 만에 상급자가 된 것이다. 너무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찼다. 나는 초급반에서 강습을 배우던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노란색 킥판을 들고 음파 음파를 배우던 시절, 물에 떠 있기도 힘들었던 시절, 어푸어푸하면서 발차기를 배우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시절 나는 젤 끝 라인의 상급 코스에서 돌고래처럼 멋지게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내 비록 지금은 노란색 킥판을 들고 수영하는 수린이지만 나도 저들처럼 버터블라이 수영, 접영을 멋지게 하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라고.



하지만 운동 신경이 없는 나는 수영 실력이 늘지 않았다. 초급반에서 함께 시작한 동기들은 1년 만에 중급자가 되고 1년 반 만에 상급자가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초급반 또는 중급반에서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수영 관련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보고 강사가 알려준 비법을 수없이 머릿속에 새겨도 말 그대로 '마음 따로 몸 따로'였다. 


그랬던 내가 드디어 수린이들이 동경하는 상급자가 것이다. 


수영장에 다니면서 내 생활패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많이 건강해졌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수영은 전신 운동이므로 건강에 매우 좋다. 하지만 내가 건강해졌다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저녁 술 모임이 줄었다. 수영 강습받는 날은 술 약속을 하지 않는다. 만나더라도 수영장 가지 않는 날로 정하고 술도 가급적 많이 마시지 않는다. 다음날 수영하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덕분에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이, 아빠가 주중에 일찍 집에 오니 함께 저녁을 먹을 있고 대화도 많아졌다. 


그리고 소위 옷태가 좋아졌다. 좋아진 것 같다. 

자유형, 배형, 평형, 접형을 하다 보니 어깨가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직장룩으로 와이셔츠를 입는 나에게는 좋은 변화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상급자가 되면서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건 바로 수영복 때문이다. 중급자까지만 해도 5부 남자 수영복을 입었는데 상급자는 짧은 삼각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지 우리 수영장은 모두 남자들이 삼각 수영복을 입는다. 


출처 : ELLE 홈페이지


남자인 내가 봐도 너무 민망한데 상급 남자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입고 수영을 한다. 

집에 가서 나의 이런 고민을 아내에게 말했다. 

"그런 규정이 어딨어? 아무 수영복이나 편하게 입으면 되지!"

아내는 생각만 해도 민망하고 남사스럽다고 하면서 짧은 삼각 수영복 입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 


아직 초중급 같은 상급자이기 때문에 민망할 뿐이지 나도 저들처럼 삼각 수영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고수가 되면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오늘도 나는 아내 몰래 daum에서 남자 삼각 수영복을 쳐다보고 있다.  

수영 고수가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이글은 '수린이가 시골 수영장에 가면 생기는 일' 2탄입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6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