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서울을 떠나 시골에 있는 나는 수영 실력이 초급 같은 중급자이다. 그러다 보니 6주간의 공백기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이 군대에 가는 것처럼 치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강습을 6주간 홀드해 놨지만 한 달 넘게 수영을 못 한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공백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수원 근처 실내 수영장을 검색했다. 다행히 인근 6km 근방에 체육센터가 있었다. 가격도 3천5백 원으로 저렴했다. 이곳은 자유수영을 아침 6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지난 주말에 미리 준비한 수영모와 바지, 수경을 챙겨 5시 30분에 차를 타고 수영장으로 출발했다. 서울에서 6km 거리이면 30분 이상 걸리는데 이곳 시골은 15분이면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처음 가는 수영장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다닌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이방인에 대한 낯선 시선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천5백 원을 결재하고 왼쪽 문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직원 한 분이 "회원님 그쪽은 여성 탈의실입니다."라고 말해 나의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영장 안에는 안전요원을 제외하고 모두 나이 드신 어른들만 보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도시(?) 수영장에서는 누가 새로 오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이곳은 낯선 사람이 수영장에 들어오니 모든 시선에 내게 쏠렸다. 옷을 다 입고 있어도 시선에 집중되면 창피해하는 데, 짧은 수영복만 입고 있는 내게 보내는 수십 개의 눈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준비운동도 하지 않은 채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갔다. 물속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물안경을 고쳐 쓰고 자유형을 시작했다. 그런데 음파 음파 숨을 쉴 때마다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수영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들어가 숨이 차기 시작했다. 멋지게 오래 하고 싶었지만 25m 세 바퀴를 돌고 수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경을 벗고 머리를 드니 지금까지 물속에서 나 혼자만 수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개폼 잡고 자유형 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면서 누군가의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 온 사람 티를 내지 않으려는 나의 계획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는 초급 다음 레일인 중급자 코스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 앞사람과 부딪혀 다음 레일로 넘어갔고 급기야는 상급자 코스에서 수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만 계셔서 그런지 상급자 코스임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동네 수영장에서 잘 되지 않던 접영도 이곳에서는 부드럽게 잘 됐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인데 수영을 잘하시네"
어르신들이 내 주변에 모여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네. 이 근처에 출장 올 일이 있어 오게 됐습니다."
"수영을 잘하시네요? 앞으로도 쭉 나오실까?"
계속 나올 거냐고 내게 물었다. 표정을 보니 계속 나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네~ 한 달간 출장이라 계속 나올 예정입니다."
"어허 그것 참 잘 됐구먼. 그럼 그동안 우리에게 수영 좀 가르쳐줄 수 있겠어, 허허허"
하루아침에 나는 수영강사가 돼 버렸다. 어르신들의 눈망울을 보니 이제 갓 초급을 벗어난 수린이(수영 어린이)란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