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봐야 한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는데 전날 일찍 못 자서 그런지 피로함이 몸을 짓눌렀다.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더 잠을 잘 수는 없어서 정말 딱 10분만 더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이렇게 일찍 움직이는 이유는 오랜만에 가는 화실 때문이었다.
지난주 컨디션이 안 좋아서 취소하게 돼서 오늘은 꼭 가야 했다. 2주 만에 가는 건데, 꼭 한 달 만에 가는 것처럼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훌훌 털고 가볍게 아침 대용으로 먹을 셰이크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기분 좋게 가기 위해 노래를 재생하는데 묘한 불편함이 나를 감쌌다. 무거운 발걸음과 흥이 안 오르는 노래,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인물을 그릴 때 기분이 좋았었는데 오늘은 그 시간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라고 내 인생에 그림이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림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했던 말들이 입안에서 모래알이 맴도는 것처럼 꺼끌 거리게 다가왔다.
이 마음이 쉽게 바뀔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던 게 아니었나? 그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어렸을 때 그림을 못 그리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화실에 도착해서는 입가에 미소를 달고 오랜만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다. 컨디션과 날씨 이야기로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 전혀 아니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림에 흠뻑 빠져있었다. 이제 기본적인 스케치가 다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정밀소묘를 들어가기 위한 표현을 시작한다고 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진행해야 하는 게 아쉬워서 시간이 모자랐으면 모자랐지 오늘의 2시간도 전혀 길지 않다고 느꼈을 정도로.
스케치만으로는 어색할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명암을 넣다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완성될 거라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가 되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몸을 가볍게 감쌌다. 거기다 선생님이 찍어준 사진들(화실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나의 모습과 그리고 있는 그림을 찍어준다)을 보면서 이번 소묘가 끝나면 색연필로 채색하는 법을 배워볼까? 라는고 다음 단계를 생각할 정도로 식지 않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왜, 가기 싫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지?
귀찮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를 생각해 봤다. 귀차니즘이 강한 성향이라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자주 따라오는 감정이었는데, 그 귀찮음에서 더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항상 귀찮은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했다. 오늘 역시 그 감정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했는데 전혀 아닌 걸 알게 되니까 그 이면에 다른 것이 숨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그림 그리는 시간이 기대가 되는 감정과 별개로 화실에 다녀오자마자 컨디션이 점점 가라앉으며 편두통이 시작됐다. 약을 먹고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나면서 지금은 괜찮아진 컨디션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그게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어제 제대로 못 잔 잠과 쌓인 피로와 굳어있던 어깨, 그리고 어깨가 굳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등의 뻐근함과 소화불량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흐름이 컨디션을 저하시키면서 몸이 불편해라는 대신에 귀찮다는 감정을 끌어온 건 아닐까?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진짜 귀찮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면만이 아닌 뒷면도 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일기일회, 오늘의 한 줄 : 귀찮음에 설득됐으면 화실 앝 갈 뻔. 오늘의 귀찮음을 잘 이겨내서 다행이지만, 잠은 일찍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