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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Mar 30. 2024

전세계약서

변수가 생겼다.


달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인기척이 집안으로 퍼지자 후다다다닥닥닥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야생 동물이 분명했다. 그 생명체를 처음 본 건 지난 겨울이었다.


그 뒤로 달집 현관문을 열때마다 똑같은 일이 종종 벌어졌다. 괴생명체는 길냥이었다. 문닫힌 빈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사라진 동선을 추적해보았다. 뒷골목쪽 화장실 방충방이 삭아 구멍이 나 있었다. 2미터 넘는 벽을 타고 들어온 것 같았다. 한 겨울에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었나 보다.


그 녀석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두어달 지나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도 길냥이는 쇼파에 누워 “어.. 왔냐?”는 표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찢어진 방충망은 리모델링 마지막 단계에 고쳐야겠다 마음 먹었다.


며칠전부터 달집에서 아기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탐정처럼 소리를 정체를 찾아보니, 길냥이가 머물던 공간 싱크대 서랍이 삐져 나온 안쪽 공간이다.

볼 수는 없었지만, 새끼 고양이가 분명했다.

달집에서 쉬다 가던 그 길냥이 녀석이 여기다 새끼를 낳은 것이다.


아기 고양이들이 놀라지 않게, 어미가 스트레스 받지 않게 조심조심 리모델링을 해야겠다.

고양이 가족이 자리잡은 공간의 리모델링은 일단 보류다. 어미는 서랍장 안에서 꼼짝않고 새끼를 돌보는 것 같다. 물과 사료를 갖다 주니 나와서 먹는다. 녀석과 전세계약서를 작성한 걸로 쳤다.


새끼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빨리 바깥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나중에 자기 집이라 소유권을 내세우며 달집에서 살겠다 주장하면 어떡하지?

조그만 길냥이 출입문을 만들어 줄까?

일단,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세상에 태어났으니, 죽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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