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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Apr 07. 2024

능소화

2013년,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주황색 꽃을 보았다.

그 동안 봐 온 어떤 꽃보다 눈에 띄었다.

그 이유는 그 꽃이 특별히 화려하고 특출나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나무 잎도 고개를 숙일 것 같은 뜨거운 여름에 태양을 째려보며

당당히 꽃을 피우는 모습 때문 아니었을까?


그 꽃의 이름은 능소화라 했다.

그 뒤부터 달집 담장에도 능소화가 피면 예쁘겠다 생각했다.


곱게 자라 거친 세상에 적응 못하는 아이처럼  달집에서 뿌리를 단단히 내리지 못한

여리고 여린 덩굴식물이었던 몬타나으아리가 모두 사라진 화분에 젓가락만한 능소화 3포기를 심었다. 그때가 2018년쯤이었나 보다,


폐가가 된 빈 달집에서 능소화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세 포기 중 둘은 죽고, 하나가 살았는데 죽은 친구들의 삶까지 대신 살겠다는 강한 의지였는지, 뿌리는 커다란 플라스틱 화분 망을 뚫고, 데크도 뚫고, 밑으로 옆으로 뻗어 있었다.


물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혼자의 힘으로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에 자랑스런 일가를 이룬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달집 리모델링이라는 인간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능소화 대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온전히 살릴 수 없었던 50%의 뿌리는 따로 떼어 다른 땅에 심었고, 지름 5센티는 될 법한 능소화 줄기와 뿌리는 다른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살았으면 좋겠다.

뿌리째 뽑혀 끊기고 찢기며 존재의 일부분,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삶.

지금까지의 삶을 모조리 부정당하는 일을 어마어마한 일을 당한 삶,

인간이 저런 꼴을 당했으면 남은 생을 온전히 살기 힘들다.

대부분의 인간은 절망하지만, 어떤 인간은 업그레이드되어 새로 태어난다.

   

살았으면 좋겠다,

뜨거운 여름날 작렬하는 태양 속에서 주황색 꽃을 다시 피워주면 좋겠다.


올 여름, 혹은 내년 여름에 강제 이주 당한 능소화가 꽃을 피워낸다면,

그건 기적이다.


골목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어제 오전, 집안에서 능소화를 화분에 심기 위해 분해하고, 옮기고, 당기고,

자르고, 퍼내고, 옮기고 물을 준 나는 안다.

능소화가 만약 살아난다면 그건 기적이라는 걸 나는 안다.


살았으면 좋겠다.

능소화가 살아난다면 사람들에게 능소화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얼마나 힘든 삶을 견디고 견뎌 꽃을 피워냈는지를 말해 줄 것이다,


만약 죽는다면,

그래도 이야기해줄 것이다.

죽든 살든 달집의 능소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옛날 옛날에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집에 애기 능소화가 살고 있었어요….”


그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6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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