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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May 26. 2024

우드슬랩

나무를 좋아한다. 씨앗에서 발아해 크게 자라는 나무에 빗대어 삶을 이해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나무 같은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무의 죽음은 목재다. 나무라고 하면 살아서 잎을 펼치며 광합성을 하는 나무와 죽어서 목재로 쓰이는 나무 두 가지를 말한다.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산 나무도 좋아하고 죽은 나무도 좋아한다. 나무는 살아서도 가치있고 죽어서도 가치있다. 그래서 나무같은 삶을 살고 싶다.


2012년 달집을 처음 리모델링할 때 인테리어의 컨셉은 ‘화이트와 우드’였다. 지금의 리모델링도 여전히 그렇다. 흰색은 한민족의 색깔이고 여전히 나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흰색 바탕에서 태어난 한 그루 나무다. 땔깜 불쏘시개로 쓰일지 궁궐의 대들보로 쓰일지 알 수 없다. 자라고 자랄뿐이다. 때가 되면 죽어서 나름의 용도로 쓰이면 된다. 살아 있는 동안 쓰임새가 있으면 더 좋다.


당근마켓에서 거대한 나무가 3만원에 나왔다. 덥썩 사버렸다. 지름이 70센티가 넘으니 엄청 큰 나무다. 차를 몰고 나무로 만든 테이블을 사러 갔을 때 두 번 놀랐다. 생각보다 엄청 컸고,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 당황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무게였다. 물건을 파는 분과 마주들고 겨우 차에 실었다. 내릴 때는 무게 중심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정말 겨우겨우 대문 안으로 들여 놓았다.


다리는 떼어 버리고 상판에 긴 다리를 붙여 공용공간의 우드슬랩 테이블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크고 엄청난 무게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드슬랩 두께가 12센티가 넘었다. 속에 쇠가 들었는지, 느낌에 100킬로는 넘는 듯 했다. 그렇게 3만원 짜리 우드슬랩은 한 달 넘게 대문 옆에 방치되었다.


그 동안 스트레스가 하나 있었다. 허리가 아파 모션 데스크를 샀는데, 예상보다 부실했고, 무엇보다 32인치, 24인치 모니터가 붙은 모니터암을 견디지 못해 타이핑을 할때마다 책상이 흔들리고 모니터가 춤을 추었다. 서서 일하는 것은 좋은데, 모니터화면에서는 지진과 여진이 계속되어 자꾸만 대피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어찌해야 할 지 모를 3만원 짜리 우드슬랩과 흔들거리는 모니터. 이 두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육중한 우드슬랩 입식 책상을 만들어 거기에 모니터를 다는 것이다. 책상의 높이를 낮췄다 줄였다하는 모션데스크 기능은 포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았다. 일할때는 서 있고, 잠시 쉴 때만 앉으면 될 일이었다. 인터넷 철물점에 다리 2개를 주문했다. 기성 사이즈는 2만원대이지만, 주문제작이라 거의 2배 가까운 돈을 들였다. 개당 4만원.


그 다리가 어제 도착했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온 것이다. 참을 수 없었다. 빨리 우드슬랩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큰 난관은 무게였다. 일단 동네 건업상에서 해머를 빌려서 다리를 해체했다. 오래오래 사포질을 해서 내가 원하는 무늬와 색감을 만들었다. 무게중심과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우드슬랩을 옮겼다. 철제 다리를 붙였다. 완성이었다. 그런데 이 놈이 너무 무거워 세울 수가 없었다. 씨름끝에 결국 똑바로 세웠다. 지렛대의 원리 발견은 불의 발견에 버금간다는 인류의 축복이다.


그냥 나무가 좋아서 쓸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행동의 결과들이 나비효과처럼 많은 걸 바꾸고 있다. 필요없는 모션 데스크는 어떡할까 생각하다. 책상을 방마다 놔두어 달집을 아예 스터디카페와 작업실, 워크샵 장소와 접목된 아직까지 본적 없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만들까를 고민한다. 출판사, 기업, 서점, 공유 작업실, 공부방, 강의실 등의 색깔을 잘 섞으면 뭔가 나올 것 같다. 3만원짜리 당근이 많은 변화를 몰아온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막연하고 관념적인 큰 이상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뭔가다. 변화는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 앞에 있는 뭔가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나무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생겼고, 앞으로 많은 일들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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