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10개월 되었다. 힘들었다. 많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오리발 끼지 않고 50분 동안 1,500미터를 해도 쌩쌩했다. 수영을 할 때나 하고 나서 활력이 더 생겼다. 수영을 내가 자유자재로 다루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목줄에 묶여 팔려가는 개처럼 수영에 질질 끌려 다녔다. 오래 동안 수영을 하지 않아 현재 체력을 제로로 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 수록 체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다시는 예전 체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숨쉬기도 힘들고, 체력도 항상 바닥났다. 남들 세 바퀴 돌 때 한 바퀴는 쉬었다. 무리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쉬엄쉬엄 따라가다 보니 체력이 늘지 않았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계까지 다달아야 체력이 향상된다. 죽을 각오를 하고 한계까지 가야하나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러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기도 했다. 그냥 나이와 체력을 생각해서 할머니 수영하듯 내 페이스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계절이 3번 바뀔 동안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살랑살랑 무리하지 않고 현상태를 유지하는 정도, 그냥 이렇게 수영하고, 이렇게 운동하면서 남은 생을 살아야 싶었다. 예전 체력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뭘 아무리 열심히 잘해봐야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된 시지푸스의 운명 같았다. 그래서 재미도 예전같지 않았고 답답했다.
몸은 신비하다. 우리는 몸에 대해서 모른다. 몸이 우리 삶을 어떻게 펼쳐낼지 모른다. 저번주부터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오리발 끼지 않고 1400, 1500, 1600을 해도 할 만하다. 갑자기 체력이 두 세 계단 뛰었다. 수영은 이제 에너지를 쓰는 시간이 아니다.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 되었다. 절대로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데, 예전 체력을 거의 회복한 것 같다. 근육이 그렇듯 이론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르고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을 견뎌야 체력이 회복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 방법 아니더라도 꾸준한 루틴만으로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극적이라 느끼는 것은 무딘 감각 혹은 평소의 무관심함 때문이다. 몸은 신비하다. 그 전의 삶과 지난 10개월 동안의 삶이 달라진 것은 두 가지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 하기 싫어도 수영을 하는 것. 이 두 가지 만으로 몸은 충분히 변하고 삶도 충분히 변할 것 같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빠른 변화에 대한 갈망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마음이 조급해질때나 지칠 때는 오직 지금 하는 일에만 전념하면 도움된다. 수영이 좋은 점은 수영할때는 오직 수영만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분명히 변하고 있지만 알아차리기 힘든 것. 그런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투자 같다. 좋은 투자는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원인으로 작용해야 한다. 피드백 루프처럼. 산다는 건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