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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Nov 17. 2019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젤라또를 찾아서


덥다 더워. 회사 맨 꼭대기 층에서는 아침마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창문 두 개, 고장 난 것에 가까운 에어컨 두 대, 선풍기 세 대, 그리고 사람은 여덟 명. "우리 어떻게 할래? 창문 열고 선풍기 틀래, 아니면 창문 닫고 이 에어컨으로 어떻게 해볼래?" 3월 중순을 넘어가니 기온은 점점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층에는 벽면에 라디에이터만한 작은 붙박이 에어컨 두 대가 달려있는데, 찬 바람이 멀리 퍼지지 않고 에어컨 위를 맴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인턴과 트레이니들은 번갈아가며 선풍기를 쐬었으며 잠시 쉴 때면 에어컨 위에 앉아있곤 했다.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지내기 위해 전등도 안 켜고 모니터 불빛으로 일을 했다. 오래전에 지어진 베네치아의 집에는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통하게 하거나 선풍기를 사용한다. 창문을 열면 제법 시원해지기도 하는데, 한 층에 사람이 여덟 명이나 있으니 창문으로 통하는 바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안 되겠다. 젤라또 먹으러 갈 사람?"

"나!"


우리는 점심을 먹자마자 시원한 젤라또를 먹으러 사무소 밖으로 나왔다. "우리 여기 가볼래?  어제 퇴근하고 나오면서 사무소장이  가게에서 젤라또 들고 나오는  봤어. 현지인이 가는 데니까 맛집이지 않을까?" 동료 F 가리킨 곳은 사무로 바로 옆에 허름한 젤라테리아였다. 가게가 위치한 건물은 공사 중이어서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가게로 들어가 점원과 인사를 하고 초콜릿과 캐러멜  가지 맛을 골랐다. 젤라또를   베어  순간 ", 맛있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다른 맛을 고른 동료들도 다들 만족스러운 눈치다. "여기 진짜 맛집이네. 역시 현지인이 먹는 데는 다르네. 오늘 젤라또 성공!"  후로 우린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생활비를 아껴 하루 걸러 하루 젤라또를 먹었다.    



#현지인 맛집 #현지인 추천

우리는 낯선 여행지를 여행할 때 현지인들이 다닌다는 맛집을 찾아다닌다. 이유는 간단하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집이라고 부를 때에는 여러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보통은 좋은 재료를 써서 음식이 맛이 있는 데다가 양도 푸짐해서 가성비가 좋은 집을 맛집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현지인 맛집이라고 하면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니까 이 모든 것이 검증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믿고 갈 수 있는 장소다.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가. 현지의 음식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도 덤이다.  


우리 역시 현지인의 선택을 믿고 따라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현지인들은 이 집이 맛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냥 무작정 시도 끝에 우연히 얻어걸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만의 '정통'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과 비교하는 것일까? 이 사소한 호기심을 시작으로 젤라테리아와 다른 젤라테리아를 비교하여 나만의 기준을 정해 보기로 했다. 결국,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젤라또는 내가 먹었을 때 제일 맛있는 젤라또일 테니까. 아래의 내용은 비교 관찰을 통해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젤라또의 정통도 절대적인 기준도 아님을 밝혀둔다.



#초코는 어느 집이나 맛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는 음식은 초콜릿이라는 것을.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낯선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초콜릿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만 보고도 이것이 내가 입맛에 맞는 초콜릿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마트에 가면 가끔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초콜릿에 도전해보는데 성공률은 99퍼센트에 가깝다. 젤라또도 마찬가지다. 어느 집에 가더라도 초콜릿 맛은 다 맛있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낮다. 초코칩이 들어간 것, 초콜릿 쿠키, 비스킷이 들어간 것 등등도 그렇다. 초콜릿을 섞은 것은 평균 이상이다. 이미 관광지에서 멀리 왔고, 다시 돌아가기는 귀찮고, 집에 가다가 너무 더울 때는 초코맛을 먹는다.



#레몬은 원래 하얗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은 종종 함께 찾아오는 법이다. 초콜릿 맛 젤라또를 먹어보면 꼭 목이 마르다. 너무 더워서 젤라또를 먹었는데 어째 더 덥고 더 목이 마르다. 집에 가면 물이 있으니 물을 사 먹기도 아깝고. 이럴 때는 처음에 두 가지 맛을 고를 때 과일맛 젤라또를 함께 고른다. "하나는 레몬맛으로 주세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맛은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레몬맛이다. "레몬맛 젤라또가 하얀색이네요?""그럼요, 레몬 안쪽은 하얀색이죠." 젤라또를 담아 주는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머리가 띵 해졌다. 예전에 바나나 우유는 원래 하얀색이라던 광고가 생각났다. 그래, 레몬 속은 하얀색이지. 그 뒤로 레몬맛 젤라또가 노란빛인 젤라테리아를 보면 그 가게에서는 젤라또를 사 먹지 않는다. 물론, 맛도 있겠지만, 뭐랄까, 하얀색 레몬맛 젤라또를 파는 집은 왠지 더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젤라또를 만들 것 같다고나 할까?



#빨간 맛이 궁금하다

젤라또만큼은 본인이 미식가라고 하는 주변 사람들은 젤라또를 먹을 때 과일맛만 먹는다. 초콜릿을 아무리 좋아해도 젤라또만큼은 과일맛이 최고라나 뭐라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베리류가 들어간 젤라또의 색깔을 보고 젤라또 맛집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베리류가 들어간 젤라또가 색소를 넣은 듯한 쨍한 붉은빛을 띤다면 그 집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베리류의 젤라또 빛깔이 진하면 진할수록 과일을 많이 사용하는 가게라는 것이다. 색깔을 보면 '이 집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만드는구나.'라고 어느 정도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와 그들이 내린 결론은 각종 베리들(fruti di bosco)이 들어간 뚜또보스코(tutto bosco) 맛의 색깔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가 녹차 아이스크림을 보고 녹차가 많이 들어있는지 색소가 많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뚜또보스코 젤라또를 보고 젤라또 맛집을 찾아내곤 했다. 나는 이 방법으로 몇몇 젤라테리아에 도전했는데 거의 다 성공했다.



이탈리아를 여행으로 온다면 1일 1젤라또를 한다고 하더라. 사실 아이스크림은 다 맛있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뿐이다. 맛집을 가려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겠다며 수없이 맛본 젤라또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만의 젤라또 맛집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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