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Nov 17. 2019

식당에서 현지인처럼 저녁을 먹으려면


나랑 나이도 같고 생일도 같고 같은 동네에 살았던 나의 고등학교 동창은 나처럼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나는 일을 하고 친구는 학교를 다닌다. 같은 이탈리아에 살아도 나는 베네치아에, 친구는 로마에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그런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면 만나서 하는 일은 딱 하나다. 바로 좋은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는 일이다. 우리의 입맛은 현지인의 입맛에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귀찮을 때면 인스턴트 음식을 먹을 때도 있지만 한 번 좋은 것을 맛보고 나니 자꾸 좋은 것만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친구는 밀라노로 이사를 갔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로 향했고, 저녁 시간에 맞춰서 만났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두오모 근처 식당에 가기로 했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어도 우리 둘 다 구글맵 없이는 아직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현지인 없이 한국인 둘이서 가는 현지 식당은 어떨까? 친구는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해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하는 데 전혀 문제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현지인들이 보기에는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다. 혹시나 차별을 당하진 않을지 괜히 긴장된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맛있는 음식 먹고 기분 좋게 보내고 싶으니 말이다. 우리는 각자가 이탈리아에서 배운 식사 문화에 맞춰서 식사하려고 노력한다. 여유를 가지고 두 코스 이상 먹는 것, 그리고 직원이 내게 해주는 것들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이다.


    급하게 만난 터라 예약을 하지 못하고 식당에 갔다. 우리는 예약 시간 전까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것으로 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은 이탈리아어랑 영어 둘 중에 어떤 걸로 드릴까요?" 친구가 이탈리아어를 잘하니까 뭘로 할지 물어보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서툰 이탈리아어로 대답했다. "이탈리아어 한 개랑 영어 한 개 부탁드립니다."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나의 이탈리아어에 친구와 직원은 동시에 웃었다. 직원은 우리를 자리로 안내해줬다. 그 직원이 우리를 담당할 직원이다. 우리는 차분하게 메뉴를 골랐다. "그래도 두 코스는 시키는 게 좋겠어.""응, 그래야지. 우리 식전 음식은 하나 해서 나눠 먹고 메인 음식은 각자 하나씩 할까?""좋아. 다 먹어보고 봐서 디저트도 먹든지 하자." 둘이서 스타터를 나눠 먹고 메인 요리를 먹으면 양이 딱 맞는다. 그게 가격적으로도 덜 부담이 된다. 직원이 오자 친구는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주문했다. 직원은 나에게 어떤 메뉴를 할지 물어봤다. "이탈리아어로 한 번 해봐요. 연습해요 연습." 후후, 나는 짧게 숨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저는 밀라노 스페셜 어쩌고 이거 주세요. 그리고 사이드 메뉴는 채소로 해주세요. 물은 탄산수 아닌 걸로 주세요.""브라바(brava)! 굿잡(good job)!" 짧은 문장에 폭풍 칭찬을 해주는 직원 덕분에 우리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일곱 살이 된 기분으로 쑥스럽게 감사 인사를 했다.


스타터로 주문한 치즈 플레이트가 나왔다. "너 입맛은 이탈리아 사람 다 됐네. 식전 음식으로 치즈라니.""이탈리아어도 못하는데 입맛만 현지화되었지 뭐." 식전 음식을 다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 요리가 나왔다. 천천히 먹으려고 했지만 배가 고팠던 탓에 금방 접시를 비웠다. 예약 시간 전에 나와야 해서 디저트는 먹지 않기로 했다. 계산을 다 마치고 가게를 나가면서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직원은 잘 가라는 말과 함께 손키스를 날려준다. 이 날의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베네치아 근교로 여행을 가서 식사를 할 때면 조금 더 긴장한다. 그럴 때면 식당에 들어갈 때 이탈리아어로 인사하고, 영어로 설명해달라고 덧붙인다. 그렇게 식당에 들어가서 앉는 것 까지는 잘하겠는데 주문을 하려는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 그럴 때면 바디랭귀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주문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메뉴판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어 내 테이블을 담당하는 직원과 눈을 맞추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식당 규모가 꽤 커서 직원을 찾을 수 없거나 직원이 너무 바쁠 때면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바로 메뉴판에서 손을 떼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멍- 하게 있는 것이다. 무례하지 않게 나 메뉴판 다 보고 주문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표현한다. 


    혼자 식당에 가더라고 두 코스를 주문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일부러 점심을 적게 먹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점심을 먹지 않을 때가 많다. 보통 성당이나 미술관 같은 곳은 여섯 시면 닫으니까 그전에 한 곳이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이 불러오는 결과다. 그러다 보면 저녁식사로 혼자 두 코스는 거뜬하게 먹는다. 예산이 여유가 있다면 고기나 생선 요리를, 예산이 빠듯하다면 파스타를 먹는다. 그러나 음식 양이 많을 때면 다 못 먹고 남길 때도 있다. 한 번은 직원이 추천해준 피자를 남기는 게 미안한 마음에 포장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직접 종이 박스를 접어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다.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어도 맛있다고 하길래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포장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망설였지만 음식을 남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포장해달라고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서툰 이탈리아어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는 모습이 직원들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잘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도 한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주문하고 서툰 한국말로 김치를 더 줄 수 있냐는 외국인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직원에게 나를 위해 신경 써주는 것들에 감사하다고 몇 번 인사를 하다 보면 나를 더욱더 살뜰하게 챙겨준다. 한 번은 메인 요리로 주문한 파스타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긴 일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도저히 들어갈 공간이 없어 포크를 다섯 시 방향으로 내려놓았다.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파스타가 맛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파스타는 맛있는데 정말 배가 부르다고 했다. 직원은 표정을 풀더니 오케이라는 말과 함께 테이블을 정리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셰프가 주방 밖으로 나온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셰프의 어깨는 축 쳐져있었다. 한 손에 내가 남긴 파스타 접시를 들고는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파스타 맛있었어요! 그런데 나 배불러요." 영어로 맛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셰프는 여전히 울상이었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못하니까 바디랭귀지를 동원했다. 엄지를 들어 올렸고 이내 두 손으로 배를 두 번 두드리고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그제야 셰프의 표정은 누그러졌다. 뒤늦게 내 테이블을 담당하는 직원이 와서 셰프에게 무어라고 이탈리아어로 설명하자 셰프는 오히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주방으로 사라졌다. 


    디저트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특별한 것을 준다고 했다. 바로 식후에 마시는 소화를 돕는 술, 디제스티보다. "우리 가게에 직접 담근 리몬첼로 있는데 가져다줄게요. 정말 맛있어요.""그럼 정말 조금만 줄 수 있나요?""오케이. 정말 조금." 직원은 바(bar)로 가서 술병을 꺼내 리몬첼로를 따른다. 그런데 조금만 준다더니 훅! 하고 한 잔 가득 술을 따른 것이다. 직원과 나는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입을 벌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상태로 3초쯤 지났을까? 직원은 멋쩍은 걸음으로 걸어와 내게 리몬첼로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이게 조금이에요.""하하,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직원과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이탈리아에서 느긋한 저녁식사를 해보고 싶다면 식당에는 따뜻한 보살핌과 맛있는 음식이 언제든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매일매일 좋은 식당에 갈 수는 없겠지만 특별한 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해보면 좋겠다.




이전 07화 빈자리가 있는데 저녁을 먹을 수 없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