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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Jan 09. 2019

에스프레소,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



두근거리다


우리의 삶에서 두근거리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두근거림은 설렘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불안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설렘으로 시작되는 두근거림은 인생의 첫 번째에 해당되는 사건이나 인물이 동반한다. 첫 만남, 첫 출근, 첫사랑, 첫눈. 또는, 출발, 시작과 관련된 일들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한편으로는 불안함으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상황도 있다. 어려운 도전을 앞둔 상황, 시험 볼 때, 면접장 앞에서, 또는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높은 곳에 올라갈 때. 사실 이런 상황들은 불안함보다 긴장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두근거림이다.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아니다. 바로 커피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페인이다. 이것은 설렘이나 불안함 때문에 생기는 두근거림이 아니다. 그저 카페인으로 인한 신체 반응이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뛴다.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둥둥둥' 하고 들릴 정도다. 그리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보통, 머리가 아프면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과는 달리, 커피를 마시면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는 이내 속이 쓰려오기 시작한다. 그날 밤에 잠은 다 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정해 놓은 '커피 마시는 날'이 있다. 다음날 휴일이 있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날은 커피를 마시고, 밤에 침대에 누워 잠들 수 있도록 애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커피의 나라 이탈리아에 와서 커피를 마실 수 없다니! 왠지 모르게 너무나 억울했다. 마치 눈 앞에 치킨을 두고도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를 더욱 속상하게 한 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이탈리아 문화의 큰 부분을 툭하고 떼어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불편하더라도 커피를 마셔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두근거리는 신체 반응으로 인해 매일 설렌다고 착각할지도 모르니까!





어떻게 하면 커피를 잘 배울 수 있을까?


베네치아에서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 바로, 이 문화에 퐁당 빠지는 것! 짧은 기간 안에 이탈리아 문화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험하는 것 그 이상으로 흠뻑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 접하는 음식은 먼저 향을 맡고 첫 입은 첨가물 없이 나온 그대로 먹는 것이 내가 정한 원칙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당연히 따뜻한 커피다. 한 여름에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카페에는 아침 일찍부터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리스타는 인사를 건네고 주문을 받는다. 아침 메뉴는 간단하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크루아상을 먹는다. 아침에는 카푸치노를 마시기도 한다. 크루아상은 과일잼, 커스터드 크림, 초콜릿 잼을 넣은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커피(에스프레소)와 함께 주문한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리지



    나는 이탈리아에 와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인으로 인한 불편함보다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했다. "커피 한 잔 주세요." 점심시간에 들린 카페에서 혼자 연습했던 이탈리아어를 한 껏 사용해본다. 내가 정한 원칙대로, 에스프레소를 받아 향을 맡은 뒤 한 모금 마신다. "어, 설탕 넣어서 마셔야 되는데!" R이 내게 설탕 한 봉지를 건넸다. "나도 알아. 그런데, 첫 번째 한 모금은 있는 그대로 먹어보는 게 내 원칙이야." "좋은 자세네." "윽, 쓰다." "거봐." 서로를 보며 킥킥댔다. 향을 맡으면 좋은 원두인지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잘 모르는 내가 알리가 있나. 설탕은 라면에 들어 있는 방부제같이 생겼다. 설탕을 열어 절반만 넣었다. "그거 다 넣어야 돼. 이 한 봉지가 에스프레소 한 잔에 딱 맞는 양이야." 나는 일단 이렇게 먹어보겠다며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내려놓고는 말했다. "네 말이 맞네. 다 넣어야겠다." 큭큭. 커피랑 설탕이 뭐라고 이렇게 재밌을까. 설탕을 다 넣은 커피를 홀짝 마셨다. "음, 맛있네. 이런 맛이구나. 설탕 하나를 다 넣어야 되는구나." R은 이내 커피잔을 비우고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카페는 보통 잠시 들리는 곳이야. 한 잔 홀짝 마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남은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마지막 모금에 극도로 단 맛이 느껴졌다. 설탕을 넣은 후에는 잘 저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숟가락으로 커피잔의 바닥에 남아 있는 것들을 긁어 입에 넣었다.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다. 물론, 카페인 때문이겠지만! 한국에서 아메리카노도 못 마셨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되다니! 문화의 힘은 참 신기하다. 나는 이렇게 커피를 배웠다.


연달아 두 잔이나 마신 카푸치노 ⓒ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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