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Dec 28. 2023
1.
겨울밤
철제 셔터에 기대어 그를 기다렸다
누구여야 한다면
그리 가깝지는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그리 마음 아플 일이 없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보닛을 열고 여자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그 속을 쓸어줄 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수석에는 누가 탈 일이 없는지
구두와 비즈로 덮인 슬리퍼가 있었다
여자는 니트 투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작업장으로 흐르는 클래식이 좋았다
양쪽 도어포켓에는 무라카미하루키의 책이 꽂혀있었다
3.
연식이 10년 되어가는 차이다 복직을 앞두고 차를 샀다가 둘째가 생겨 2년 정도 쓰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도 편도 10분 내외로 짧은 거리라 주행거리가 많지 않다
보닛을 열었을 때 돌보지 않은 내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듯한 민망함이 있었다 먼지는 물론 가장자리 묵은 낙엽들까지 내버려 둔 내 생을 들켜버린 듯했다
4.
기계를 대하듯 다루어주기를 바랐다
5.
경기가 나빠지고부터는 예전에 비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성탄절 연휴가 큰 일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육교아래 네거리에 있는 서비스센터 앞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에 당연히 남자일 거라 생각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취객인 줄 알았다 가까이 다 다가서 보았을 때 울먹이며 추위에 떨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술냄새는 나지 않았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고 기물파손이나 별다른 이상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철수했다
6.
몸놀림이 가볍지 않았고 적당히 그을린 피부에 들뜨지 않는 낮은 음성이었다 다소 피곤한 듯 생기는 없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점이 안심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에너지의 불균형에서 오는 부조화에 대한 부담이 적었달까 흐름이나 결이 비슷할 것으로 무의식이 판단한 듯하다 엔진오일과 브레이크 패드, 브레이크 오일을 교체했다 나도 돌보지 않은 나를 구석구석 살펴 관리해 준 듯한 착각에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버렸다
7.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소설을 준비 중인데 주인공이 자동차 정비사라며 알고 지내는 정비사가 없다며 정비사가 된 과정과 일할 때의 어려움, 하루 일과 등이 대해서 알려주기를 바란단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사례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동차 정비에 관한 책을 읽었는지 기본적인 내용들은 알고 있었다 자동차 부분 부분의 명칭이나 엔진의 작동원리, 내부 구조, 정비의 기초를 알고 꽤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왔기에 여자의 부탁이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