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그 무엇도 예상하지 못할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본 적이 있나요
다시는 빛이 들 것 같지 않은 밤바다였습니다
물러날 곳 없는 어둠이 등 뒤에 있었습니다
언제고 저 깊이에로 침수하여도 이상할 것없는
바로 그 밤바다에 선 것 같았습니다.
진의장, 깊고 푸른 밤
당신이 끌어준 이곳,
밤거리-
여전히 깊은 어둠 속이지만
어슴푸레한 불빛 속 길이 보이는 거리 위에 선 듯합니다
단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다를 곳이 어디쯤인지 알지 못해도
딛을 길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추위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만한 불빛 속 발을 내딛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한의 어둠으로부터 밤거리로 나오기까지
빛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진의장, 꽃아~~~~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무사하게 보낸 오늘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기회를 주어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티끌을 꽃씨라 여겨주시어 결국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어둠과 두려움과 겁에 질린 공포와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로부터
땅 위에 두발 딛게 해 주시고
끝내는 꽃피워낼 수 있게 끌어주어서 감사합니다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은 아니지만
어느 산길 걸음 멈추신 곳에서
소박하게 팡- 꽃망울 터트릴 수 있음이
모두 덕분입니다
克己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래 맺혀있던 망울을 터트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밭의 독백
-사소단장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