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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Oct 02. 2024

바람 부는 새벽

비 소리인 줄 알고 깼는데, 깨어보니 바람소리였다.

숲에 큰 바람이 부니 비 오는 소리가 났다.


기당미술관 변시지 화백의 작품 앞에 섰을 때


제주를 찾는 이유가 어쩌면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파도 앞에 멈추는 것도

금문교에서 한쪽으로 누워버린 나무에 걸음이 한참 멈췄던 것도

바람의 흔적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흔적을 쫓는 것인지, 보이지 않지만 긴 시간 바람을 피하지 않고 맞아온_끝내 살아남은 것들의 생명력을 보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보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결국은 그 존재감을 맹렬히 보이고 마는 바람의 한 없는 기다림의 恨을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 흐르는 양기와 이 땅을 뒤덮는 바람과 이 땅을 둘러싼 물 그 가운데 무엇을 씻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변시지 선생의 작품 앞에서 그가 경험한 실제의 풍파와 내가 경험한, 하고 있는 가상의 풍파를 나란히 놓아본다. 그에게는 실체였지만 나에게는 허상이다. 보이지 않아 크게 뒤덮는 공포.


바람이 매우 부는 기당의 전시실 한가운데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나 전시실을 휘감는 제주의 바람 가운데서도 끝끝내 뿌리를 놓지 않는 소나무를 보았다.


집 뒷산은 꽤 울창한 숲이다. 바람이 매우 불다 잦아들고 또다시 맹렬한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숲이 너울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무들의 긴장이 느껴진다. 바다, 바다의 파도처럼 숲의 너울짐도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언젠가 내가 사라진다면 바람이 매우 부는 날일 것이다. 큰 바람이 부는 숲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숲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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