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오케이> 시즌1 외 11편
나는 드라마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년에 본 드라마가 3편을 안 넘어갔다. 그러나 넷플릭스, 그중에서도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나의 숨겨져 있던 정주행 본능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넷플릭스, 왓챠플레이를 왔다 갔다 하며 시리즈 하나를 다 보면 또 다른 시리즈를 찾아보는 식으로 영상물을 정주행 한 것도 벌써 6개월. 시간 수로 따지면 영화보다 시리즈를 더 많이 봤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처음 써보는 시리즈 리뷰 겸 상반기 정산. 2개의 글에 각각 12편씩 나누어 정리해본다.
<아임 낫 오케이> 시즌1 (2020)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꾸역꾸역 매일을 살아가던 시드니에게 엄청난 슈퍼파워가 생기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닝타임도 짧고, 전체 회차도 일곱 편으로 길지 않아서 좋았다. 스토리도 복잡하게 이곳저곳 문어발처럼 확장하지 않아서 보기 편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고, 세상이 나에게 못되게 구는 것만 같은 시드니에게 생긴 혼란. 그것이 내적 혼란과(심경, 고민 등)과 외적 혼란(슈퍼파워)으로 적절히 함께 표현된다. 그간 성장과 슈퍼파워를 함께 담아내는 서사는 정말 많았지만, <아임 낫 오케이>는 그것을 일상적・보편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콘텐츠 중 하나가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인데, <아임 낫 오케이>가 좀 더 사소하다. 거대한 대의를 담고 있지 않기에 되려 현실적이랄까. 동일한 제작진이 만든 <빌어먹을 세상 따위>를 보고 싶어 졌다!
"이제 난 선택을 해야겠지. 세상과 멀어져 날 가두고 사라진 채 이게 나 역시 파괴하게 두거나, 아니면.. 팬케이크를 만들 거나!" - <아임 낫 오케이> 시즌1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킹덤> 시즌1~2 (2019~2020)
그저 그런 좀비물일 줄 알았는데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 <킹덤>이 웰메이드 콘텐츠라는 호평을 이곳저곳에서 받게 된 이유는 좀비라는 설정을 단순 오락용 볼거리로 사용하지 않고, 그 안에 심오한 메시지를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킹덤>은 실체와 신념 사이 경중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해 벌어지는 참극에 대한 이야기다. 양반들이 추상적 가치(유교사상, 종묘사직, 양반의 위엄, 고결성, 수도 한양이 지니는 상징성 등)를 맹목적 믿음 하에 지켜내려 할수록, 실체적 가치(백성들의 목숨)이 희생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좀비가 되고 나면 누가 양반이고 천민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다. 시즌1이 양반과 일반 백성, 그 '신분'에 집중했다면, 시즌2는 왕가를 잇는 '혈통'에 집중한다. 이때도 시즌1과 마찬가지로 좀비가 되는 순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 생각했던 혈통의 구분도 불가능해진다. 좀비 떼에 그저 일부로 섞여 피투성이에 너덜너덜해진 의복을 입고 공격성을 발휘하는 양반과 왕족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가치가 영원불변의 것인지, 애당초 그런 가치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는지 되묻게 된다.
복선 회수가 빠르다는 점 역시 이 시리즈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지점은 복선 각각에도 의미 부여가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복선이 그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 자체로도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에 쉴 틈이 없고, 진행이 빠르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시즌3가 더 기대된다.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말과,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대체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더 전할 수 있는 걸까?
*제 평가는요: 추천
<이어즈 앤 이어즈> (2019)
왓챠플레이가 국내 독점 공급한 BBC・HBO 공동 제작 드라마. 2019년부터 2034년에 이르기 까지, 진보한 과학 기술로 인해 벌어지는 새로운 현상들을 한 가족의 이야기 안에 엮었다.
넷플릭스에서 <블랙 미러> 시리즈가 꾸준히 인기 몰이를 하자, 국내 OTT 서비스인 왓챠플레이에서도 웰메이드 SF 콘텐츠를 수급하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둔 듯하다. 처음에는 <블랙 미러>와 굉장히 비슷한 작품인 줄 알고 봤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컨대 <블랙 미러>는 기술 발달로 인해 발생하는 비윤리성/비인간성을 통해 메시지를 제시하고, 여운을 주며 한 회차가 끝나는 느낌이다. 반면 <이어즈 앤 이어즈>는 이야기를 가능한 지점까지, 한 없이 진전시킨다. 여러 회차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블랙 미러>와 달리 <이어즈 앤 이어즈>가 장편 서사라는 점 역시 이에 한몫했을 테다. 여기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장점이라 한다면, 기존 강자인 <블랙 미러>와는 다른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는 것이다. 좀 더 사건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구 될 법하다. 단점은 억지로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는 극 중 인물 하나를 위험으로부터 구조하는 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런데 그 서사가 갑자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마냥 이 시대의 모든 고난과 시련을 헤쳐나가는 영웅 서사의 면모를 띠어 살짝 당황스러웠다.
미래의 변화된 사회상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방식이, 때로 인물들의 입을 빌린 '설명'일 때가 많아서 조금 아쉬웠다. <블랙 미러>를 통해 그런 설명 없이도 메시지를 확인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그럼에도 대사들 자체가 담고 있는 내용은 의미심장한 것들이 많아 쉴 새 없이 메모했다.
프로타고니스트도 여자, 안타고니스트도 여자, 그 외에 서포팅을 하는 인물들도 모두 여자 혹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야 문득 깨달았다! 이런 이야기가 좀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우리는 여성주의 서사야'라고 출발하는 이야기들도 물론 좋고, 앞으로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서사는, 여성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되는, 그런 서사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연출이 물 흐르듯 흘러가야 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해야 한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그런 점에서는 백 점짜리 작품이었다.
"또 나타날 거다. 괴물 하나를 없앴다는 건 또 다른 괴물이 깨어나는 걸 의미하지." - <이어즈 앤 이어즈>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시즌4 (2020)
탈덕 선언 직전까지 가게 만든 시즌4. 내가 시즌 1~2(넓게 봐준다면 3까지)에 열광했던 이유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가 여타 소년물과는 조금 다른 메시지, 다른 비주얼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초능력을 가진 '개성 사회'에서 오로지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만이 아무런 능력 없이 태어난다. 그러던 중 일생의 우상 올마이트를 만나 그의 개성을 이어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주된 서사다. 그 누구보다 강한 염원과 열정, 그리고 노력을 재능보다 '먼저' 갖추게 된 캐릭터가 후천적 재능까지 갖게 되었을 때 발산하는 에너지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히어로물에서 재능과 비슷한 수준으로 '노력'이 다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너드에 가까운 히어로가 주인공이라니!
그러나 그런 신선함이 무색할 만큼, 시즌4는 클리셰 투성이었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역시, 어느 만화에나 끼워 맞출 수 있는 시놉시스의 법칙을 피해가진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적과의 싸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성실한 이의 희생, 눈물을 훔치며 '더 강해져야겠다' 다짐하는 주인공... 소년 만화의 한계는 극복될 수 없는가? 게다가 어설프게 느낌을 내려했던 학원물 에피소드는 할 말을 잃게 했다.
좋은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게 마지막 화였어서 문제일 뿐 (...) 시즌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격투신을 고퀄리티로 뽑아내는 데에는 현시점에서 이 시리즈를 따라갈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이 궁금해지는 마지막 화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시즌4를 완주한 직후, 원작 만화책에서 생체실험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를 띠는 신규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마 이 시리즈를 이 이상 소비하기란 힘들지 않을까. 길티 플레저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제 평가는요: 비추천
<하이큐> 시즌4 1쿨 (2020)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실제로 인물들이 치른 경기는 고작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 전개 속도 실화인가요? 그래도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던 시즌3은 재미있게 봤었다. 한 게임을 여러 회차로 길게 풀어놨지만, 그만큼 액션은 생동감 넘치고, 인물들의 독백과 상념이 세밀히 묘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즌4는 그때 그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히나타의 성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매니저 키요코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던 내레이션 등등은 볼 만했다. 하지만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팟 하고 탕 하는 예전의 그 느낌이 그립다.
"이 곳이 나의, 최전선!" - <하이큐> 시즌4 1쿨 중에서
*제 평가는요: 비추천
<투 핫> (2020)
각지에서 모인 섹시한 남녀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지령이 떨어진다. 상금 10만 달러를 획득하고 싶거든 섹스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 섹슈얼한 상황 속, 섹슈얼한 행동을 참아내고,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설정 자체는 참신했다. 여름 휴양지 로케이션이 주는 들뜬 분위기와 인물들의 내적 성장을 이끌어냈던 몇몇 워크숍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짜 맞춘 듯이 헤어지거나 만나는 출연자들의 행동은 소름 끼칠 만큼 어색했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들은 '멍청하다'는 구식 스테레오 타입으로 꾸준히 그려내고 어필하는 제작진의 멍청함에 기함을 토했다. 설정은 새롭지만, 이야기는 낡았다.
*제 평가는요: 비추천
<비스타즈> 시즌1 (2019)
동물의 특성을 극대화해, 차별/스테레오 타입/콤플렉스에 대한 이슈를 던지려고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레고시는 육식동물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하는 '늑대'지만, 자신의 야만적 본성을 부끄러워하며, 고결의 극치에 선 듯한 '사슴' 루이를 동경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제력을 유지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달리 루이는 그런 레고시의 행동을 위선이라 생각하며 자신이 나약한 초식동물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뭐든 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종의 각 특성은 <비스타즈> 안에서 그들의 서사를 구축하는 배경으로 활용된다.
레고시는 초식동물 중에서도 최약체에 속하는 '드워프 토끼' 하루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식욕'을 착각한 것일지 모른다는 혹자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우화적 방식을 사용해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려 한 작자의 의도를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나 유해한 비약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빨을 드러내고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야만성을 이해해줘야 하는 건가? 그럼 일방적으로,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는 자의 입장은?
뿐만 아니라 이 동물학교에는 가스 라이팅이 난무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남학생들과 관계를 갖는 '드워프 토끼' 하루, '이건 오로지 자신의 자부심을 위한 일'이라 믿으며 알을 낳아 육식 동물의 먹이로 제공하는 '닭' 레곰이 그 사례다. '이것은 나쁘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쁜 것'을 전시하는 콘텐츠는 과연 도의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요즘 콘텐츠를 접하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다.
"무해한 존재라... 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해, 레고시. 이 세상에 본능이 존재하는 한 누구든 자신이나 남에게 고통을 줄 테니까." - <비스타즈> 시즌1 중에서
*제 평가는요: 비추천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초반부에서 의사들의 리얼한 하루, 남녀 사이의 찐 우정 등을 보여주려 한 점이 흥미로워 매주 챙겨봤던 드라마.
'99즈'의 케미는 정말 귀여웠고, 관련해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서 두 번씩 돌려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중반부를 지나자 드라마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참 많았는데, 결국 사랑 이야기의 부속처럼 쓰여 그 매력이 빛을 잃었다. (ex, 장겨울, 추민하, 채송화, 양석형, 이익순!!!!!!!!) 연애 서사 없이 사랑스러운 한국 드라마는 정녕 불가능한 건가요?
결국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남은 것은 하나였다. 환자가 쉼 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병원'이라는 배경의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조연 배우들을 기용했다는 점이다.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이 환자 혹은 그 가족, 또는 병원 직원으로 분해 절절한 연기를 선보일 때마다 눈물을 쏟곤 했다.
"내가 해결해 줄게." -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에서
*제 평가는요: 그럭저럭
<와이 우먼 킬> (2019)
하나의 집을 거쳐 간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와이 우먼 킬>. 1964년 베스 앤, 1984년 시몬, 2019년 테일러의 이야기가 번갈아 제시된다. 세 여자는 같은 집에 살았다는 것 말고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남편으로 인해 고통받았다는 것.
<결혼 이야기>, <부부의 세계> 등 부부를 다룬 서사를 볼 때 느꼈던 의아함은, 1984년 시몬의 이야기를 볼 때도 그대로 적용됐다. 남편 칼은 무려 15년 동안 시몬을 속였다. 처음엔 칼을 증오하던 시몬이지만, 점차 애틋한 감정을 갖고 그의 곁을 지킨다. 어떻게 남편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었을까? 겪어보지 못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부 사이의 '애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실제로 극이 진행됨에 따라 시몬과 칼 사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법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래도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인데'라는 명분을 입혀, 그 사람의 부정한 행동을 용서하고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 '어른들의 사랑'이라 세뇌하는 듯해 불편했다.
1984년의 이야기는 다소 불편했고, 2019년의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았지만 1964년 베스 앤의 이야기만으로도 이 시리즈에 빠질 이유는 충분했다. 가장 자극적이지만 그만큼 통쾌했다. 폭력적인 가스 라이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며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준 콘텐츠가 최근 있었던가? 그 폭력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대신, 보란 듯이 한 방을 날리는 주인공도 매력적이었다. 사실상 베스 앤의 이야기로만 드라마를 꾸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느님은 이해 못 하실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하느님 부인은 분명 이해할걸요." - <와이 우먼 킬>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굿 플레이스> 시즌4 (2019)
'인간은 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위에, 굿 플레이스에 '잘못' 도착한 인물들이 굿 플레이스에 걸맞은 인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오락적 이야깃거리를 쌓아 올렸다. 그 바탕에 깊이가 있기 때문에, 코믹하고 허구적인 이야기가 가득할지언정 주인공들의 고민을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갖다두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가득해도, 질문들 그 자체는 가치를 곡해당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굉장한 상상력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잘 만든 SF란 <굿 플레이스> 같은 작품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우리 몇 달을 논쟁해 왔잖아. 인간이 착한가, 나쁜가? 근데 그렇게 셋이 모여 다시 일어서고 털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어. 정말 중요한 건 인간이 '착한지 나쁜지'가 아니야. 인간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고 하는가'지. 내 희망이 어디서 생기는지 물었지? 그게 내 대답이야." - <굿 플레이스> 시즌4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뜻하지 않은 계기로 시리즈를 많이 접한 상반기였다. 보다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근육이 생긴 것 같아서 좋다. 다만 영화에 비해 호흡이 길다 보니, 전체가 아닌 일부가 가치관에 반할 때 그 시리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보기를 멈춘 시리즈도 몇 개 있지만, 100% 온전히 무언가와 맞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듯, 시리즈도 자주 접하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