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8월 결산을 이제야 하다니... 9월은 회사 일이 그 양도 대단히 많고 정신적으로도 몹시 피곤한 나날들이었다. 9월에 읽은 책들은 아직 독서노트도 하나도 못 썼고, 책 자체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냥 어디 절간 같은 곳에 들어가서 산책하고 책 읽고 일찍 잠드는 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엔 내 역할이 너무 많다...
의사 출신 작가님의 단편. 직업환경의학과라는 특이한 전공을 택하신 분이다. 이 전공은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바깥 요소, 직업적인 면과 환경적인 면을 다루는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운동 시기에 고 문송면 님의 수은중독으로 인한 죽음이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발생한 많은 죽음을 놓고 투쟁한 결과로 직업병 예방을 위한 산업의학과가 설립되었다. 그 산업의학과가 직업환경의학과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에 이르렀다. 작가님 본인은 소설을 쓰는 분이니 자신의 본업을 조명받는 걸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전공보다 뭔가 사명감을 더 갖고 일하는 분들 같고, 산업재해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돈보다 사람 생명이 경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외면할 수는 없어서 잠시 들여다봤다.
책은 서사도 단락구분도 없이 그냥 자기 생각을 계속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하는 형식이라 몹시 읽기 고통스러웠다. 그래, 뭐 배경이 특이하고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는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독자에겐 고통을 좀 줘도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100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을 힘들게 읽었다.
본인의 입장은 아니고 '이런 의견이 많다'정도로 서술해 놨지만 몹시 동감하는 단락이 있어서 가져왔다.
요즘 소설은 스케일이 작다! 요즘 소설은 피씨/퀴어/페미니즘 아니면 쓰지를 못한다! 요즘 소설은 안온/다정/무해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요즘 소설'의 정의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불만들.
물론 소설도 출판사 입장에선 판매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인 독자층을 고려해서 이런 식으로 트렌드를 가져갈 수밖에 없긴 하지만, 피씨/퀴어/페미니즘/안온/다정/무해 키워드를 벗어난 소설은 신간 목록을 뒤져봐도 여간해서는 찾을 수 없다. (심지어 SF/역사/스릴러 등 장르소설에서도 저 키워드들을 빼놓지 않는다) 비슷한 주제를 변주해 놓은 소설들이 워낙 많으니 조금만 읽어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 이렇게 써놓으면 '당신이랑 조선일보랑 다를 바가 뭐야?!'라고 혼날 것 같다...
그 유명한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가 쓴 첫 소설. 그 책은 너무 유명한 데다가 제목이 가벼운 에세이 느낌이어서 손이 가지 않아 읽어보지 않은 채로 작가님의 소설을 먼저 읽게 됐다. 요즘 자주 읽는 위픽에서 나온 아주 짧은 단편이다.
고도비만인 주인공이 우울증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책을 번역한 젊고 아름다운 스페인 여성 번역가의 초대를 받아 바르셀로나에 간 내용이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의 내면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있구나... 소설 치고는 작가님 본인의 내용이 많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인터뷰를 보니 역시 그랬다.
이 와중에 나란 사람은 대체 이 작가님 얼마나 고도비만이길래 이렇게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지 (소설 내용의 1/3은 바르셀로나 여행, 1/3은 우울증, 1/3은 외모 콤플렉스로 이뤄져 있다) 구글링 해서 작가님 사진을 검색하고 있었다. 뭐야... 아리따운 처자잖아?
하도 자기 비하가 넘쳐나서 읽는 내내 축축 처진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마음이 많이 힘든 독자들은 감정이입이 좀 될지도 모르지만 난 나름 자존감이 단단한 편이라 공감이 전혀 안 된다. 그래 난 T다...
어릴 때부터 뭘 자꾸 훔치는 주인공과 그걸 계속 적발하는 남자. 남자의 쌍둥이 형이 엄마의 유품인 의안을 훔쳐달라고 했다가 또 적발되고... 하여튼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단편소설.
작가님, 저는 작가님이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자전적 에세이 1, 자전적 에세이 2에 이은 자전적 소설 1까지 다 읽고 났더니 사흘 연속 점심에 짜장면을 먹은 기분입니다.
엔비디아 살 걸..2
이건 공식 자서전이라고 하는데, 그럼 전에 읽었던 <엔비디아 레볼루션>은 비공식 자서전인가?
일론 머스크가 이상한 짓을 해서 생기는 리스크가 더 클까, 젠슨 황이 건강 문제로 더 이상 경영활동을 못 하게 되는 리스크가 더 클까. 젠슨 황이 없어도 과연 엔비디아는 지금과 같이 현재와 미래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을 유지할까?
지난 글에 언급한 대로, 요즘 한국 현대소설은 PC/퀴어/페미니즘/안온/다정/무해 키워드가 없으면 팔리지 않는지 대부분의 작품들이 저 공식을 따라가고 있다. 읽다 보면 조금 피로감이 생긴다.
그래서 집어든 중국 소설. 사실 한국에 소개되는 중국 소설들은 또 대부분 문화대혁명 시기의 비극이나 지금처럼 G2로 올라서 미국과 어깨를 겨루기 전의 가난한 시절이 이야기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위화의 소설이나 모옌의 소설이 그렇고, 심지어 SF소설도 그때를 다룬다. (삼체)
팡팡의 장편소설 <연매장>은 일제 패망 이후 한국전쟁까지 약 7-8년간 벌어진 토지개혁이 역사적 배경이다. 중국 공산당이 계급이론에 따라 '지주'의 토지를 인민에게 분배하면서 땅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은 모두 지주로 몰려 자아비판을 하고 인민재판을 받고 죽었다. 이때 죽은 사람만 2-3백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이때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구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2000년대에 아들과 행복하게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혼이 나간 사람이 되어 멍한 상태로 육신만 현생에 존재하면서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 기억은 18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토지개혁 때 주인공의 가족이 모두 죽고 주인공 혼자 살아남게 되는 끔찍한 기억을 시간의 역순으로 밟아 올라간다. 주인공의 아들은 어머니의 저런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어머니 인생의 비극을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우연히 만난 인연을 통해 알게 된다. 어머니의 기억 두세 편 - 아들이 차근차근 발견해 나가는 퍼즐 두세 편 - 다시 어머니의 기억 - 아들의 퍼즐. 이런 식의 구성이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만든다. 결국 모든 퍼즐이 풀리고 어머니의 기억도 완성된다.
10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만들면 딱 어울릴 것 같은 구성인데, 문제는 이 책이 중국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다는... 과거 공산당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광기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내용이라 감추고 싶었나 보다. 중국인들이 보면 불편할 만한 내용일 수도 있고, 정부가 허락하지도 않을 것 같으니 중국 내에선 수요가 적을 것 같고, 다른 나라 사람은 중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내용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수요가 적을 것 같고, 결과적으로 망하게 되는 드라마겠군.
그럼에도 뛰어난 구성 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 맛에 장편소설 읽는다. 가끔 중식도 먹고 일식도 먹고 양식도 먹듯이 다른 나라 소설들을 읽어주면 한국 소설을 읽는 맛도 더 좋아진다.
아무래도 나는 15년 넘게 사무실에서만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정말 다양한 사무실의 인간군상을 많이 만나왔기에 이런 회사생활 관련 소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제목을 <오피스>라고만 지어도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재생되는데 '괴담'까지 붙으니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들이 등장할지 기대가 되어 빌려봤다.
소위 'ㅈ소'라고 불리는 체계 없고 형동생 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중소기업의 홍일점 계약직으로 입사한 주인공의 뒤틀리게 되는 삶, 내가 체험해보지 않았지만 수많은 괴담을 들어왔던 공무원의 삶, 가구회사의 보안팀에서 근무하게 된 전직 간호사가 매장에서 귀신을 보는 삶,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만만찮은 직속상사에게 괴롭힘 당하는 삶, 쿠팡을 모델로 한 물류센터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르고 부속품처럼 일하는 삶.
대체 회사란 어디까지 악화될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씁쓸한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7월에 읽은 <잡 인터뷰>의 작가님의 소설집. 아무래도 외국계 회사에서 오랜 직장생활을 하다 등단한 작가님이다 보니 단편들이 대부분 회사를 배경으로 한다. 회사를 오래 다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심리를 잘 그려낸 작품들인데 반복되다 보니 개미눈물만큼 남아있는 내 회사에 대한 애정마저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어 막판엔 흐린 눈으로 대충 읽었다. 책은 덮으면 되지만 회사는 매일 나가야 하는 곳이고 난 아직 이 회사에 더 다녀야 하기에...
읽을 때마다 실패가 없는 이기호 작가님이 11년 만에 출간한 장편. 500페이지가 넘는데도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다. 책을 읽다가 아이한테 "아빠 읽는 책 제목 봐라? 이시봉이 어떤 존재일 것 같아?" "글쎄... 아저씨?" "땡" "음... 프랑스 사람?" "땡" "에이 그럼 뭔데?"
작가님이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이시봉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본견의 자전적 소설은 결코 아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이시습(여동생은 이시현, 강아지는 이시봉이다)은 그 충격에 방황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하고 스무 살이 되자 매일 알코올중독자처럼 술을 마시고 새벽에 이시봉을 산책시키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런 시습에게 누군가 찾아와서 이시봉이 사실은 엄청나게 희귀한 순종 비숑 프리제고, 자신에게 비싼 값에 팔라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시봉의 조상이 스페인 왕실에서 사랑받다가 왕실과 함께 몰락하는 과정과 이시봉을 팔라고 제안하는 사람이 왜 이시봉에게 집착하게 됐는지 그의 프랑스 유학시절을 교차하며 확장된다.
강아지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친구의 지지가 있으면 헤쳐나갈 수 있으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얻을 수 없는 가치들이 참 많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작가님은 대하소설로 쓰려다가 많이 잘라냈다고 하신다.
가족의 죽음으로 생긴 구멍을 전형적인 소재나 특이한 사건으로 메꾸는 구조의 소설들이 참 많지만, 읽을 때마다 느낀다. 가족 놔두고 아빠가 젊은 나이에 먼저 가버리면 절대 안 된다. 물론 반대 케이스도 일어나면 안 되고. 남은 가족들이 너무 고통받는다.
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아서 (강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많진 않다. 기껏해야 영유아기 시절 나만 바라보며 눈을 빛내던 아이와, 연애 초기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보고 싶다고 하던 지금의 아내가 줬던 사랑 정도? 이제 둘 다 나이가 들어가며 더 이상 그렇게 압도적인 사랑을 쏟아주진 않는다. 그래서 다들 자식 독립하면 강아지를 키우나 보다. 나도 늙어서 외롭고 집안의 침묵을 견딜 수 없으면 강아지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미 집에서 하층민으로서 여러 역할을 맡고 있는데, 강아지까지 키우면 또 얼마나 많은 일이 늘어나서 내 시간을 빼앗길까 생각하니 썩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 참 재미있다. 장편소설을 이 정도로 잘 뽑아내는 작가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기도.
요즘 워낙 인기가 많은 책이라 찾아서 읽어봤다. 어디서 본 제목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음악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의 제목이었다.
감상: '신자유주의 호러'
어느 날 직장 동료가 “그럼 더 상급지로 간 거야?”라 물었을 때 쉽게 대답 못한 건, 요즘 부동산 채널에서 유행하는 상급지니 하급지니 하는 말도 그때 처음 들은 데다 순간 자신이 개천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어서였다. 거주지에 따라 ‘급’이 아니라 ‘종’ 자체가 나뉘는.
이런 소재다. 씁쓸한 현실을 외면하고자 읽는 소설에서 다시 현실을 마주하는 공포.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자본주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재와 문장들로 가득 차있다. 돈이 없어서 힘들게 사는 등장인물들이 어쩌면 나도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행동이나 생각들을 보여주는데 읽는 내가 괜스레 부끄럽고 힘들고... 고고하게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모습만 보고 싶은데 이 책의 작품들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물속의 모습만 보여준다. 왜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작고 소중한 집이 이렇게 초라해 보이고 내 속물근성이 투영되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썰어대는 정유정/정해연 작가님 류의 스릴러물만 읽기 힘든 게 아니었구나...
작품 해설로 신형철 님의 평론이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데, '김애란은 사회학자다'라는 말에 무척 공감했다.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라 이런 자본주의적 내용들이 들어가는 게 맞지만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소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걸 읽는 나와 내가 사는 세상이 잘못된 것 같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서 힘든 가족사를 헤쳐나가며 희망을 주는 청소년들이 나중에 성장하면 이런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니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세상인가.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사람들, 물류창고에서 착취당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자가를 가져보려고 아등바등 먼 출퇴근길을 오가는 사람들, 계급의 사다리를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는 사람들,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이뤄보려고 자영업을 시작하지만 곧 좌절하는 사람들, 돈 앞에서 순수한 마음을 지켜보려는 사람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잘못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사회가 인정해 주고 손을 내밀어주면 좋겠다. (이러니까 내가 부자가 못 된다)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김명인 교수님의 회성록(지나온 삶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회고록이 아닌 회성록이라 부제를 붙였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교수직에 몸담고 계셨는데, 마침 동생이 졸업한 학교라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수업도 듣고 친하게 지냈던 교수님이라고 한다. 내가 읽은 책 작가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라니 신기했다.
1979년 박정희 사망 후 내려진 계엄령과 45년 후 2024년 윤의 계엄령 사이에 1958년생 엘리트 운동권 대학생이 어떻게 공안사건에 휘말렸고, 출옥 후 출판사 편집장 및 문학평론가로 살면서 직선제와 IMF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를 함께했으며,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건강이 악화되어 투병까지 하는 와중에 재심을 통해 과거 공안사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는 기록한 500페이지짜리 책이다. 운동권 사상의 거의 끝판왕급이며, 국문학 전공에 평론가로 활동하시고 교수 일까지 오래 하셔서 그런지 무척 어려운 단어로 문장을 쓰신다. 그럼에도 한 노장의 인생사는 몹시 흥미롭게 흘러가고, 어떤 부분은 꽤나 현장감/박진감 있게 써주셔서 읽는 데에 큰 부담은 없었다. (다 읽고 나서 따로 빌려놓은 두꺼운 서양사 관련 벽돌책을 잠깐 읽었는데, 워낙 어려운 문장들을 읽고 나니 다른 벽돌책이 수월하게 읽히는 기적적인 장점도 있다.)
학생운동을 경험해 보지 못했고 민주화의 단맛만 누리고 배때기에 기름이 잔뜩 껴서 알량한 부채의식만 안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아, 어떤 지점에선 엘리트의 오만한 관점이 느껴지고, 어떤 지점에선 엄청난 꼰대스러움도 느껴지긴 하지만 (나에게는) 감내 가능한 정도였다. 상아탑으로 피신해서 90년대에 벌어진 그 수많은 변절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초중고 시절 월사금도 못 내고 겨우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악착같이 공부해서 서울대에 진학한 선생님은(77학번), 당시 사회 분위기에 걸맞게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77 언더'라는 비밀 조직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학생운동의 지도부에서 서울대 내의 학생운동 역량을 강화시키고,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러다 박정희가 죽고, 짧은 서울의 봄 이후에 광주 학살이 벌어져 신군부가 집권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1980년 5월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학생처장 이수성의 설득으로 서울역에 모인 10만 명의 학생들을 해산시켜 신군부에게 틈을 줘서 광주에서의 시민 학살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유시민 선생님이 아직도 안타까워하는 그 유명한 사건) 당시 선생님도 현장에 함께하셨다고 한다. 본인은 당시 실망을 많이 했고, 광주에서의 일이 평생의 부채로 남을 만큼 충격이 컸던지라, 그때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뒤로 계속 '언더'에서 암약하던 선생님은, 1981년 학내 시위에서 '반파쇼학우투쟁선언'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의식화가 너무 강력하게 된 똑똑한 학생이 본인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쓴 글은 당시 엄혹한 상황에서 파격적인 주장이었고(좌익 혁명!!),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공안 당국의 관심을 끌어 결국 체포되었다. 이 선언문은 지금 읽어보면 물론 그 표현들이 과격하고 급진적이지만 '음 그래, 구구절절 맞는 말만 했는데?'라는 생각만 드는 명문이다.
회현동 시경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물고문을 받으며 배후가 누구냐고 아무리 파고든들 본인의 날카로운 사상임을 숨길 수 없었고, 조직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그 악명 높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옮겨져 그 유명한 이근안에게 조사를 받는다. 왜소하고 허여멀건한 학생이라 그런지 이근안이 심한 고문을 하진 않았고 잘 대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박처원 대공수사처 처장도("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며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거짓으로 은폐하려던 자) 선생님에게 전향을 권유하는 등 조사관들을 악마화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칠성판에 묶고 얼굴에 수건을 깔아 물을 붓거나, 척추가 녹을 때까지 전기를 흘려보내거나, 일주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심한 고문이 아니었을 뿐, 충분한 신체적 고통을 주는 고문이 이어지긴 했다. 고문자는 조사 후에도 간이침대를 놓고 조사실에서 같이 머물렀고, 24시간 내내 고문을 하진 않다 보니 선생님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했듯 스톡홀름 신드롬과 같은 상태로 고문자에게 친밀감까지 느끼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근안이 선생님의 손목 관절을 돌려 뽑은 이후(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조직에 대해 다 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숲 속의 안개처럼 흐릿하다는 이근안의 감상에 따라 '무림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고(이근안은 무림, 학림, 부림 등 수풀 남자를 붙여서 공안사건 작명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반공법/국가보안법 등의 위반으로 관련자들이 투옥되며, 선생님도 3년간의 옥살이를 시작한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운동권에 투신하여 역사에 작게나마 한 획을 그을 수 있었을까? 군부 정권에서의 투쟁사를 읽다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부모님은 대학을 보내놓고 데모하지 말라고 말리셨겠지만 귀가 얇아서 '불량한' 선배들의 의식화 교육에 어영부영 따라다니고, 어설픈 정의감에 거리로 나가 돌을 던졌을 것 같다. 하지만 맷집이 연약해서 체포되면 조금의 육체적 고통도 못 참고 아는 정보를 다 불어 버렸겠지...
옥살이 이야기도 자세하게 서술해 놓으셨다. 당시 '애인'이었던 같은 학교 약대 여학생이 헌신적으로 옥바라지를 해주셔서 3년 동안 300권의 다양한 책을 읽었고, 출옥 후 선생님은 출판사에 편집주간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그 출판사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풀빛출판사다.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으로도 유명하며, 나병식 풀빛 대표가 구속되게 한 <한국민중사> 또한 그렇다고 한다.) 선생님은 저 책들의 출간에 모두 관여했으며 특히 <넘어넘어>의 출간에 관여한 것은 큰 영광이라고 말한다.
7년간의 출판사 근무 중 역사는 계속 흘러갔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성취했지만 노태우의 집권으로 크게 실망하고, 출판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평론 일을 천직으로 삼게 된다. 아내분은 약국을 개업했고, 선생님은 셔터맨으로도 잠시 생활했다. 의약분업 이전의 약국 개업은 몇 년만 돈을 벌면 작은 빌딩 하나는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박사를 거친 건 돈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사실이 큰 이유다.
그렇게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김영삼 정권과 IMF를 거쳐 김대중 정권까지 오면서, 더 이상 예전 학생운동의 투쟁방식이 먹히지 않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고, 선생님은 무기력을 느끼는 와중에 인하대 교수로 취임한다. 20년 가까이 학생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강의-행정-연구에 표면적으로는 열심히 임했지만 과거와 같은 열정은 없었고,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기득권층의 민중 배제에 이를 갈기만 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 기대를 해봤지만, 아마추어와 같은 정권에서 선생님이 기대하던 수구 보수세력 타파, 신자유주의의 부작용 해소, 민주주의의 강화와 같은 지상 과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탓에 실망만 커졌다.
그리고 윤이 등장해 황당한 계엄과 함께 퇴장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가 남긴 유명한 문구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가진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되풀이된다고 언급한 적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말이다."를 인용하면서, 선생님은 "스물한살의 내란 때에 나는 울었고, 예순여섯살의 내란 때에 나는 웃었다"고 한다.
역시 두 번 겪어본 짬은 다르구나... 난 첫 번째 계엄이라 그날 새벽까지 공포에 떨었나 보다.
한국 현대사에서 전면에 등장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맡진 않았지만, 그 이면에서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주신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장암에 걸렸다가 치료했고, 자가면역질환에 고생하시고, 암이 간에 전이되어 또 항암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별로 좋진 않으시지만, 이제 교수직도 정년퇴임하시고 완전한 자유인이 되셨으니 남은 생애 행복만 누리시면 좋겠다.
네이버의 웹툰 수십 개를 팔로우하여 즐겨 본다. 인기 웹툰의 기본 설정은 타임슬립/회귀! 거기에 다양한 배경을 설정하면 이야기의 기본 틀이 완성된다. 과거로 돌아간 절대고수, 과거로 돌아간 악덕 CEO,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소방관, 재입대만 7번째 한 군인 등등 기발한 이야기들이 자고 일어나면 새로 나오니 매일 출퇴근길에 한 편씩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웹소설은 유명한 작품(<전지적 독자 시점>, <화산귀환>, <중증외상센터> 등)들을 좀 읽어봤는데, 진짜 끝내주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지만 남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읽지 않는다. OTT 드라마들도 정말 많이 봤는데 요즘엔 보지 않는다. 어릴 땐 주말 밤을 새워서 해외축구도 다 챙겨보고 아침엔 MLB도 챙겨봤는데 이젠 경기 결과나 가끔 하이라이트만 챙긴다. KBO는 아직도 끊지 못해서 마약보다 건강에 해로운 롯데 야구를 챙겨본다. (올시즌 꼬락서니 보니 접어야 할 듯)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즐길거리는 무척 많은데 책 읽는 일을 최우선순위에 놓으려고 나름 애쓰고 있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책도 마음만 먹으면 페이지터너들만 골라서 눈이 뻑뻑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몇 권이고 읽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종이책을 읽으려고 애를 쓴다. 그럼에도 소설에 치우친 독서습관이 들었다. 여기까진 느슨하게 허용하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매일 벽돌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들거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수행하듯 책을 읽을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가끔 자극적인 소재의 소설을 읽으면 억제하고 있던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이 소설이 그렇다. 교보문고 스토리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졌는데, 하필 꼰대 상사와 MZ 신입과 함께 사무실에서 살아남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솔로 남자'를 그린 이야기다. 좀비들보다 무서운 상사와 신입의 수많은 클리셰가 주옥같이 펼쳐지는데 멈출 재간이 없어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읽는 데 딱 한 시간 걸렸다. 웹소설처럼 남는 건 없다. 그래도 터져 나온 도파민에 붕 뜬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다. 적당히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은 소설인데 요즘 영화 시장이 다 망가져서 흥행은 어려워 보인다. 복잡한 설정이지만 끝까지 읽으면 감탄을 자아내는 그 유명한 <전지적 독자 시점>마저 대차게 말아먹은 영화계에 큰 희망이 없다.
나는 40년 넘게 아직까지 큰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 10대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잘 진학했고, 20대엔 지겨울 만큼 놀다가 준비하던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어찌어찌 취업에도 성공했고, 30대엔 결혼해서 토끼 같은 처자식을 부양하며 직장에서도 무탈하게 따박따박 월급 잘 받으며 살았고, 40대엔 잔병치레 없이(아내가 많이 아프긴 했지...) 여전히 회사 잘 다니며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사는데 아직 양가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도 건강한 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가 겪어본 삶의 경계만큼만 허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걸 넘어가면 미지의 세계가 등장하니까 내 소중한 자식을 거기까지 나아가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아이가 나보다 더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작은 좌절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선산에 성묘하러 가서 아이가 모기에 물릴까 봐 온갖 기피제를 다 뿌려주고 계속 모기를 쫓아주는 나를 보고 "넌 너무 애를 과보호해"라고 일갈하시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 맞다. 오냐오냐 키우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친구가 별로 없고 하는 일이라곤 퇴근 후 책을 읽고 밤에 따릉이를 타는 게 전부인 생활을 하는지라 아이와 친구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나도 안다. 인생이 항상 탄탄대로일 수 없지 않나. 적절히 좌절해 봐야 그놈의 회복탄력성이 생긴다는 거, 머리로는 다 안다. 그런데 마음이... 통 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도 안다. 이렇게 계속 보호하는 건 애를 망치는 길이다. 몇 년째 고민하고 있는 주제인데 계속 고민만 하고 있어서 큰일이다.
어쩌다 또 아포칼립스 좀비물을 들고 왔지... 제목만 보고 담이와 화이의 아름다운 우정이나 불꽃같은 애정을 그린 소설인가 하고 빌렸는데 모두가 좀비가 된 세상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하수도 오물청소부와 백화점 주차안내원이 서로를 극도로 증오하면서 함께 살아나가는 내용이었다. 작가님이 나름 두 인물의 비호감 요소들을 균형 있게 설계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몸에서 악취가 나고(구취까지 지독한) 왜소한 몸에 꽉 막힌 내성적인 성격인데 불친절하고 망상에 자주 사로잡히는 모쏠 게이 아저씨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세상이 멸망했는데 혼자 살아남는 것도 문제지만 둘이 살아남았는데 서로 안 맞으면 그것만 한 지옥이 또 없지 않을까.
어떤 작가는 자기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소설을 쓴다. 단편집을 읽다 보면 특정한 설정이 반복되어 작가 프로필이나 인터뷰를 찾아보면 대부분 본인의 경험을 거푸집 삼아 소설을 쓴다.
박서련 작가님은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체공녀 강주룡>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자(그런데 배경은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그리는가 하면, <폐월: 초선전>에선 우리가 모두 아는 삼국지의 초선을 주인공으로 한 줌의 설탕이 솜사탕으로 부풀듯 이야기를 뭉게뭉게 만들어 내고,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아들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해 게임을 배우는 엄마가 등장한다. 작가의 예전 직업이나 성장 배경 등을 조금도 파악할 수 없달까? 그래서 매번 새롭고 심지어 새로운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다. 아,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여성이다.
일곱 편 모두 공통적인 배경이 없다. 어리고 예쁜 후배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50대 성우, 인공 자궁을 이식하여 임신 후 출산까지 성공하는 트랜스젠더, 학창시절 알던 친구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다큐에 희귀병 환자로 출연하게 된 조연출, 대학교 친구와 함께 운영한 도서관에 그 친구의 죽음 이후 약속을 지키려고 불을 지르는 나,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전남편을 만나러 운전하는 중 살아남은 어린 남학생을 만난 나, 미스터리 쇼퍼 활동을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호텔 투숙 바우처를 사용하며 직원에게 박한 평가를 하다가 입장이 바뀌게 되는 나. 모두 다른 배경에서 다른 인물들이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섬세한 문장이 더해지니 책을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런 말을 한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테고 이해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니까 아무에게도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해하리라고 믿지만 그건 내게 직접 들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알아차려서라야 한다.
노안이라는 낱말의 질감은 오래 도망치다 마침내 붙잡힌 사람이 느낄 법한 무력감과 이상한 안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늙었구나. 모르지 않았으나 남의 입으로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이었다.
작가님 본인도 항상 새로운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신다고 한다. 이야기 주머니 마르지 않으려면 제가 뭘 해야 할까요? 아직 안 읽은 작품들도 챙겨서 읽겠습니다...
화장품 전문가(소비자로서)인 아내를 둔 남편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읽은 책. 일본 여행을 가면 드럭스토어에 가서 "오 이 브랜드가 여기에 쫙 깔렸네"라고 다양한 제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분인데, 옆에서 난 도통 알 수 없는 세계라는 표정으로 가만히 따라다닌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세계 최고의 품질인 원료를 만들어주고, (심지어 용기를 만드는 연우/펌텍코리아/삼화 등도 세계 최고) 실리콘투가 세계 주요국(특히 미국)에 팔 수 있는 물류 루트를 모두 뚫어놨다. 올리브영이 사관학교처럼 소규모 브랜드를 발굴해서 키워주기까지 한다. (독점 문제가 불거지고 있긴 하지만) 그럼 남은 건? 마케팅만 잘하면 된다. 전력을 다한 센스 있는 마케팅이 인스타, 틱톡, 유튜브 등에서 한 번 빵 뜨면 매출이 쭉쭉 올라간다. 그래서 억만장자가 된 컨설팅펌 출신 창업자들이 많다고 하고 새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화장품과 전혀 상관없는 업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고 소중한 연금펀드에서 화장품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조금 조정해 볼까 했지만 어느새 하염없이 올라있다. 보통 이럴 때 들어가면 떨어지더라...
모든 글재주를 유머에 올인한 브런치를 하나 구독하고 있는데, 어느 날 글을 모아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도서관 신간 서가에 있길래 붙잡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님 브런치에 연재된 과거 글들이 다 없어졌으려나... 다시 한번 가서 읽어봐야겠다. 마음이 울적할 때 읽으면 낄낄대며 시름을 잊을 수 있는 글들이다.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출간 이후 글이 없어지진 않았다)
김원 <한강, 1968>
목적을 갖고 책을 읽는 사람이 독서를 권장하려고 쓴 책. '코미디언이 책을 읽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을 텐데(나 또한 조금의 편견을 가졌었다), 생각해 보면 남을 웃기는 방법은 크게 말로, 행동으로, 상황으로 할 수 있는데, 말로 누군가를 웃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풍부한 표현이나 센스 넘치는 문장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보다 오히려 더 많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 코미디언 아닐까 싶다.
작가님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효능감을 독자들에게 계속 강요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진짜 효능 있다. 출퇴근길 혹은 잠들기 전에 쇼츠를 보며 뇌를 녹이다가 스마트폰을 놓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가라앉는다. 진짜다. 그리고 가끔 교훈을 얻기도 한다.
20대 초반에 읽고 다시 읽어보는 고전. (아직 100년도 안 지났지만 어쨌든 고전)
그 유명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라는 첫 문장으로 호로자식 커밍아웃을 화려하게 해 버린 뫼르소. 엄마의 장례식에서도 무심한 모습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도 여자를 만나서 놀기나 하고 멀쩡한 듯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평소 어울리던 불량한 친구와 해변에 놀러 갔다가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아랍인을 죽인다.
이 사건에 여론은 주변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살인범 뫼르소는 반성도 안 하고 엄마가 죽어도 관심도 없는 호로자식이라고 쳐 죽여야 한다며 들끓는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 뫼르소.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 오는 일이니 굳이 두렵지 않다고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에게마저 무관심한 뫼르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그는 관심에 지쳐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폭발한다. 모든 걸 불태우듯 폭발하고 난 뫼르소, 그제야 자기가 없이도 잘 굴러갈 감옥 바깥세상의 별빛과 밤 냄새와 뱃고동소리를 느끼고,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고마움을 느낀다.
회사에 MBTI를 맹신하는 사람이 있어서 부서 전 직원이 무려 MBTI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쓸모없어...'라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선 나름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캐릭터라 열심히 참가했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해왔던 무료 MBTI 테스트보다 문항이 훨씬 더 많은 유료버전 테스트의 결과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xx님 내향성이 만점이네요? 회사에선 어떻게 버텨요?"
그렇다. 난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된다. 남에게 정말 관심이 하나도 없다(직장 동료 아이의 이름을 절대 기억하지 못하는 식으로). 감정도 잘 요동치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서 (나 포함) 누군가를 통제하려 들지 않으며 벼락치기를 즐긴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특성이 구축됐는지, 그전부터 이런 성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20대 때는 대체 뫼르소가 왜 저런 일을 겪고, 저런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뫼르소는 ISTP다.
내가 항상 세상에 외치고 싶어 하는 말들을 뫼르소가 대신해준다. "LEAVE ME ALONE!" 힘든 티가 나도 그냥 가만히 혼자 놔두면 알아서 회복해 온다. 관심을 과하게 주면 부담스러워서 도망친다. 화가 나도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나는 조용했지만 축구를 곧잘 해서 교우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소위 말해 적이 없었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스타일. 싸움이란 것도 해본 적 없었다.
우리 반 축구 에이스 친구가 다리를 다쳐서 며칠 째 목발을 짚고 다녔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에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그때는 체육시간이 되면 여학생들은 여학생 탈의실로 갔고 남학생들은 교실에서 대충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다른 반 어떤 남학생이 우리 반에 놀러 와서는 교탁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다리 다친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난 원래 화도 잘 안 내는데 왠지 그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태양 때문이었을 거다) 교실 뒤쪽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신발을 그 녀석에게 풀스윙으로 집어던지고는 외쳤다. "꺼져 이 x새끼야! 어디 남의 반에 와서 행패야!" (<말죽거리 잔혹사>보다는 훨씬 뒷 세대다) 그 친구는 슬금슬금 교실을 나갔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진짜 모르겠는데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태양 때문이었을 거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 난 벌떡 일어나 도망친 그 녀석의 반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앞문을 확 여니 아직 선생님은 없었고 (아니..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엔 그 녀석의 얼굴만 보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뭔가 슬로모션처럼 남은 그때의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렸고, 얼굴을 감싸 쥐고 쓰러진 녀석에게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고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우리 반 교실로 돌아왔다.
사람을 때려본 적이 있어야 요령이 있는데, 그냥 무식하게 얼굴에 주먹을 날린 대가는 참혹했다. 그 친구는 코뼈가 부러졌다. 난 교내 폭력으로 징계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 친구의 부모와 학교에 싹싹 비셨고 합의금을 지급하셨다. 난 담임 선생님에게 이거 미친놈 아니냐는 비난을 들으며 허벅지에 피가 나도록 처맞았다. 왜 그랬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남의 반에 와서 다리 다친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그만..."이라고 변명했다. 차마 태양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요즘 세상이었으면 학폭으로 불거져 더 큰일이 됐을 만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사실,
아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읽고 뫼르소가 아랍인에게 방아쇠를 당겼던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 내가 그 친구에게 날린 주먹과 뫼르소의 총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태양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굳이 이유를 붙인 것일 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ISTP만의 일생 단 한 번 있는 분노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난 태어날 때부터 ISTP였던 것이고...
이렇게 책을 읽으며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그때 그 친구에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나중엔 앙금을 풀어냈다. 그 친구와 부모님과 담임선생님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그땐 제가 미쳤나 봐요... 이제 멀쩡한 성인이 돼서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