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내 유전자엔 어떤 나쁜 상황이 생겼을 때 ‘뭘 먹어야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부터 나게 하는 회로도가 들어있다. 잠이 부족하면, 목이 아프면, 감기에 걸리면, 과로를 하면, 기분이 안 좋으면, 날씨가 더우면/추우면, 살이 찌면(아이러니) 등등. 뭐든 입에 넣고 몸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해소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살은… 평생의 동반자 아닐까?
사랑하는, 곁에 있든 없든 내 반쪽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죽는다. 땅에 묻을 수도, 태울 수도 없다. <구의 증명> 담이는 그래서 먹는 걸로 상황을 해결한다. 죽은 구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처음 읽고는 ‘대물림된 빈곤이 갈기갈기 찢어버린 조각난 사랑을 뜯어먹는 이야기’로 리뷰를 쓰려다가, 다시 읽으니 ‘잃어버린 사랑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남겨진 자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먹기‘를 통해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슬픈 시도’인 것 같아서 지금처럼 리뷰를 쓰고 있는데, 다시 읽어보면 역시나 ‘계속 가슴에 묵직한 압박이 가해지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죽은 구가 남겨진 자신의 육신을 울면서 먹고 있는 담이를 보며 말하는 마지막 전언을 읽어보면, 메마른 자신의 감성에 물을 주고 잘 작동하는지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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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몸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 만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태어났고 죽었지만 아직은, 다시 태어나지 못했으니. 다시 태어나 다른 존재로 만난 너를 내가 사랑하게 될까? 다른 존재인 나를 네가 사랑해 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너 아닌 그 어떤 너도 상상할 수 없고, 사랑할 자신도 없다. 이승에서 너를 사랑했던 기억, 그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나를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너를 지켜볼 수 있기를. 살고 살다 늙어버린 몸을 더는 견디지 못해 결국 너마저 죽는 날, 그렇게 되는 날, 그제야 우리 같이 기대해 보자. 너와 내가 혼으로든 다른 몸으로든 다시 만나길, 네가 바라고 내가 바라듯, 네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후에, 그때에야 우리 같이.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 년, 만만 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