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간단히 느낌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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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미 <요즘 어른들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생각은 누구나의 가슴속에 있지만, 그 역사가 개인의 일상까지 흘러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모습에 현재를 비춰보는 일은 중요하다.
이 책은 치우침 없이 딱 필요한 기록만 있어서 쉽게 읽히는 한국사 개괄서이다. 고조선부터 조선의 패망까지의 역사가 기술되어 있다. 함께 빌린 최태성쌤의 <최소한의 한국사>와 비교해서 읽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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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 <시차와 시대착오>
전하영 작가의 단편 모음집. 영화판에 있다가 등단한 분이라 그런가 작품마다 예술가가 한 명씩 등장한다.
그런데 <검은 일기>라는 첫 작품이 1080도 비틀어져 있다. 결말이 확실하고 강한 메시지를 남기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등장인물 모두의 정체를 모두 물음표로 남겨놓는다. 작가가 손으로 가려놓고 종이에 정체를 쓰고는 서둘러 지우개로 지우면서 끝나는 느낌. 아 짜증……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라는 작품은 ‘파트너에 비해 턱없이 좋지 않은 시력과 가뭄의 논밭처럼 갈라진 회복 불가능한 발뒤꿈치와 눈에 띄게 희끗희끗해진 음모’에 번민하는 ‘미혼 이모(비공식 이모)’가 다시 삶에 기쁨과 활력을 불어넣어 살고자 하는 희망적 결말에 그나마 좋게 읽었다.
<시차와 시대착오>는 굳이 수미쌍관을 사용한 부녀의 이야기다. 비혼의 여성 예술가가 아버지와 세대차이/젠더갈등을 겪는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잘 읽혔다.
나머지 작품은 잘 읽히지 않아 굳이 기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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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일본산고>
30년 전에 쓰신 글들이 아직도 가슴에 와닿는 걸 보면 그때 이후로 일본도 우리나라도 많이 변하지 않았나 보다.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셨음에도 잘 읽히는 걸 보면 내가 겪지는 않은 아픔의 역사가 나에게도 조금은 남아있나 보다.
일본인에겐 예를 차릴 필요가 없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공부해서 과거의 공과 사를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녹여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광복절이나 삼일절과 같이 상징적인 날에 한 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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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최소한의 한국사>
임소미의 <요즘 어른들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와 비교해 보려고 읽은 큰별 최태성 쌤의 한국사 개괄서. 역시 고조선시대-삼국시대-후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를 아주 빠르게 훑어본다. 이 책엔 추가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군사정권과 민주화 이후의 이야기까지 짧게 다룬다.
두 책의 논조 차이는 크지 않다. 한 사건마다 논문 하나씩은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수십 건씩 사실만 나열하는 수준이라 정말 말 그대로 ‘최소한’의 한국사이다. 치우치지 않고 성인들에게 잊어버린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기 위한 책의 목적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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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 생존장병의 PTSD를 다룬 책. 46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58명이 군인이 생존했다.
1. 사실 천안함 사건은 하필 동일한 형태 (국가의 관리 부재 및 미흡한 대처, 배의 침몰)의 사건인 세월호 참사와 많이 비교됐고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이 소모된 사건이다. '보수는 이용했고 진보는 외면했다'라는 한 생존장병의 말과 같이 정치 뉴스에 더 많이 보인 기억이 난다. 세월호를 조롱하는 댓글에 교묘하게 사용된 모습도 기억난다. 군인이든 학생이든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 그 누구도 피로감을 느낄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느낀다. 고백하자면, 천안함 사건이 잘 기억나지 않고 뇌리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그 아이들은 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고, 사후에 일부 반대 진영(이라기보다는 인간임을 포기한 그 어떤 생물들)이 천안함을 들먹이며 세월호를 애써 깎아내리는 모습에 마음속에 반감까지 생겼다.
그렇다. 저자가 책에서도 지적하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관점의 매체를 균형 있게 보고 읽어도 없어지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건설적인 접촉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직관이나 감각보다 충분한 사고를 통해 정보를 해석하려고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는 거머리 같은 확증편향. 고민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나에겐 가장 고치기 어려운 오류가 확증편향이다. 계속 고민해야지. 같은 목숨이 가라앉았고, 같은 목숨이 살아남아 숨 쉬고 있을 뿐 그 의미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2.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참사는 대중에게 잊힌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국민들의 허망한 죽음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 죽음들은 생존경쟁과 발전속도에 휩쓸려 잊혀져간다. 죽음마저 쉽게 잊혀지는 사회에서 그 참사의 생존자들이 기억되고, 아니, 인식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억울한 고통을 겪은 뒤 이해도 치유도 받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버려진 이들이 거대한 퇴적층처럼 겹겹이 쌓여 한국 사회의 지층을 이루고 있'다.
패잔병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국가유공자 등록/상이연금 등의 제도적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군, 피해자의 고통을 모욕하는 데에 앞장서는 정부. 그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로 벌써 14년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의 기회를 놓치고 나서야 '인간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까?
3.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이해받고, 정부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는커녕 "넌 그래도 살아있잖아"라고 사람들에게 그 살아있음이 죽은 자의 몫을 빼앗은 것이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생존자들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 실제 생존장병들 중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비율이 높다고 한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나 <허트 로커>에서 잘 그려진 전쟁 후 트라우마는 실로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붕괴를 보여준다. 그런데 생존장병들의 트라우마 비율은 통상적인 전쟁 후 트라우마 비율보다 더 높았다. 자살은 삶의 제반 상황들이 그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을 때 발생하는 사건인데 - 선택이라고 말하지 말자는 운동도 있더라. 그놈의 극단적 선택. 자살은 선택지가 아니다. - 심리적 지지, 제도적 지원, 사회적 시선 중 하나라도 생존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예산이 없다, 정신력이 나약해서 그런다,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재수 없는 x라는 변명과 비난은 이제 그만 내려놓자.
4. 전 보훈처장 피우진 중령의 고통스러운 싸움으로 (유방이 있을 때는 성희롱의 대상, 유방암으로 유방을 제거하니 전투불능의 대상이라는 아이러니) 직업군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가 생기면 무조건 전역해야 했던 규정을 당사자가 계속 근무를 원할 경우엔 심사를 거쳐 근무 가능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개정되면서 이 책의 제목인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아직 수많은 미래의 잠재적 피해자들은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수학여행에서, 회식 후 귀갓길에, 핼러윈 축제에서, 귀경길에, 군복무 중에, 근무 중에, 그 모든 순간에 항상 죽음이 곁에 있다. 언제쯤 우린 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좀 더 안전하고 보호막이 되어줄 국가와 사회 안에서 살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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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최재천의 생태경영>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역임한 최재천 선생님의 책. 물론 교수이자 학자로서의 화려한 이력도 있으시지만 이 책에서는 원장님 입장에서 생태원을 경영하면서 느낀 점을 써주셨다. 그렇다고 엄청난 경영자 바이블은 아니고 생태학자다운 관점도 많이 반영된 글이다. 생태계의 원리를 경영에 반영했다고 할까나?
선생님이 느낀 경영자의 열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중 가장 와닿는 건 ‘이를 악물고 경청해라’이다. 내가 윗사람이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많은 일들은 잘 들어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게 마련이다. 또한 리더는 숲을 봐야지 나무를 보면 안 된다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기 마련이다. 나무를 하나도 모르고 숲만 봤다가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나무만 하나하나 보는 리더는 곤란하지만.
평소 여러 저서에서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어서 잘 읽히는 책이다.
생태원 원장이 되기까지의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처음 서천에 건설 계획을 세울 때 한국생태학회 회장님이셨다는데 MB 취임 직후 4대 강 비판으로(칼럼을 기똥차게 쓰셨더라) 찍혀서 계획에서 배제됐다가 정권 바뀌면서 생태원이 완공되고 원장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국립생태원은 옛날 장항(장항선 기차의 그 장항… 나 옛날 사람인가)인 서천군에 있다. 서울에서 3시간 넘게 달려가야 하는 먼 곳이어서 새만금방조제를 건너면 나오는 군산과 묶어서 코스로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아, 올해도 인근 섬과 묶어서 한 번 또 다녀왔으니 세 번이다. 집을 가장 사랑하는 부자지간에 정말 이례적인 잦은 방문인 셈이다. 그만큼 좋은 곳이다.
일단 무지하게 넓다. 면적이 30만 평이니 내 모교 캠퍼스보다 조금 더 크다. 안에 정말 다양한 공간이 있다. 많은 종의 동식물들이 야외에서 잘 관리받으며 자라고 있고 희귀동물/멸종위기종 보호센터, 동식물 연구동 등에선 보호 및 연구가, 온대-열대-극지-지중해-사막 5개 관에선 각 지역의 기온 및 생태가 잘 구현되어 있다. (각 생태관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의 동식물이 있고 설명도 자세히 되어 있어서 교육/학습 목적으로 아주 좋다)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도 많다. 특히 본관에는 그 유명한 잎꾼개미를 관찰할 수 있는 상시 전시실이 있다. 도서관도 잘 꾸며져 있으며, 월별로 전시하는 프로그램이 달라지고, 신청하면 해설사 분들이 함께 이동하며 설명도 해주시는데 지식과 재미를 다 잡을 수 있는 엄청난 해설을 들려주신다. 4d 영화관도 있고, 푸드코트 음식들도 종류가 많고 맛도 있다.
책에도 소개되는 에피소드인데 선생님이 원장 부임하고 나서 보니 원래 계획하셨던 자연 생태를 배우는 놀이터는 어디로 가고 형형색색의 캐릭터로 가득 찬 ‘흉물스러운’ 놀이터가 있어서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개원 후에 모든 영유아 관람객에게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모습에 멋쩍어하며 놀이터 하나 더 만들자고 하셨다는 ㅋㅋㅋ 그 하다람 놀이터도 엄청 넓고 여름엔 물놀이도 할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이다.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있는 집에선 인근 군산과 묶어서 새만금방조제 드라이브도 하고 이성당에서 빵도 사 먹고 인근 맛집들도 가는 여행을 가면 딱 좋다. 생태원 관람엔 체력이 필수다. 엄청나게 넓어서 5개관 실내만 돌아도 몇 시간은 훌쩍 지나고 다리가 아프다. 야외에 있는 여러 구역들까지 제대로 보고 싶다면 하루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생태원 이야기를 꺼내니 멈추지 못하는 느낌인데, 사실 독후감을 쓰기보단 국립생태원의 장점을 이 기회를 빌어서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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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맥길리스 <아마존 디스토피아>
전직 정부 고위층을 (국가 구매 총책임자: 한국으로 치면 조달청장 정도?) 회사로 영입해서 소상공인이 담당하던 정부 물품 공급을 독점하고, 소상공인을 온라인에 입점시켜(입점하지 않으면 대형 고객들의 주문을 받기 힘들어짐) 수수료를 그 업체의 마진만큼 가져가고, 이렇게 입점된 소상공인의 경쟁력 있는 제품 정보를 수집했다가 유사물품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개발해 판매하고, 물류창고 입지 선정에서 지자체들의 조세 혜택을 받아내고, 그 물류창고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휴식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으며 최저시급으로 인력을 운용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은폐하기 급급하고, 가뜩이나 빈부격차, 공동화, 마약 등으로 고통받는 지역을 외면하고 비즈니스에 유리하고 부유한 곳만 목표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로비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제도를 변화시키고 규제를 완화하고, 엄청난 에너지(심지어 재생에너지도 아닌)를 사용해야 하는 데이터센터를 계속 확장시키고, 본사가 있는 시애틀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이 되는 회사. 바로 아마존이다.
예전 회사에서 팀에 6개월 근무하는 인턴들에게 글로벌 경제 이슈, 한국의 경제 이슈, (회사의) 글로벌 산업 동향, 국내 산업 동향, 경제 관련 서적 서평 중 매월 카테고리 하나씩 골라서 나와 발표 주제를 고르고 직접 공부한 후 회사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한 자료를 만들어 팀원들에게 발표시키는 일을 했다. 팀원들이 바빠서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 듯하여 인턴에게 수업을 듣고, 인턴도 주제 하나를 어떻게 잘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발표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꼬셔서 시켰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그때 선택된 주제 중 하나가 리나 칸의 로스쿨 시절의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을 간추려서 소개하기였다. 아마존이 낮은 가격의 힘으로 독점기업이 됐는데,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독점하는 새로운 행태로 인해 이러한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문의 반향으로 바이든 정부의 연방거래위원장(우리로 치면 공정거래위원장)에 파격적으로 발탁됐다. 뭐, 그 뒤엔 헛발질을 좀 하는 것 같던데, 그래도 IT 플랫폼 기업들의 새로운 독점 행태는 분명 견제받아야 하는 시장 교란 행위임에 틀림없다.
이젠 우리나라도 쿠팡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쿠팡의 롤모델은 아마존인 것 같은데 과연 그들도 우리나라에 같은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때 기성 기업에 도전했던 소박하고 약자이던 스타트업들이 석유 귀족과 철도 재벌 시대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 같은 독과점 업체가 되었다. 이 회사들은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력은 적절한 감시와 법 집행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와 민주주의가 걸린 일이다. (p.451)
부를 집중시킨 거대 기업들을 해체하면 그 기업들만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장소들도 더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라 전체에 걸쳐 더 많은 도시와 마을로 번영이 퍼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곳을 균일하게 만들자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되찾아서 한쪽에서는 좌절과 절망을 몰아내고 다른 쪽에서는 안일함과 불안을 몰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p.454. 조금 과격한 주장이긴 하지만 카네기의 스탠다드 오일을 해체한 것처럼 미국의 거대 테크 기업의 독과점 문제도 이런 방식으로 급진적인 접근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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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수 <비행기에 관한 거의 모든 궁금증>
비행기가 고장 나서 비상착륙하는 시뮬레이션(바다 위에서의 고장, 엔진 꺼짐, 기장/부기장 부재 시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써주심), 비행 중 응급환자 발생 시, 기장/부기장의 역할, 비행기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 국제선 목적지 체류 등등 여러 가지 비행 관련 생활과 상식을 전문지식을 가지고 쉽게 잘 풀어놓은 책이다.
저자 신지수 님은 알고 보니 학교 먼 선배님이시다. 졸업 후 일하다 조종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비행을 배워서 대한항공에 오래 있다가 하이난항공을 거쳐 에어프레미아에서 비행하고 있다.
애 책을 대신 빌려주려고 도서관에 왔다가 신작에 꽂혀있어서 제목만 보고 빌렸는데, 정작 애는 읽지 않고 내가 반납하기 전에 읽게 되었다. 저자가 이 분인지는 몰랐다.
2년 전 어느 가을날에 애랑 둘이 부모님 댁에 놀러 가서 그곳에서 잤다. 애는 먼저 자고 나는 잠이 안 와서 이곳저곳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어느 파일럿의 글 모음을 보게 됐다. 어떻게 조종사가 됐고, 교육받을 땐 무엇을 배웠고, 국적기를 몰면서 어떤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고(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비상착륙과 같은), 과거 발생했던 항공사고를 이분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등등 글을 엄청 잘 쓰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문과생이었고 선배님이셨다.
다른 때라면 그냥 재미있었다고 잊었을 글이겠지만 유난히 그때 읽었던 글이 기억에 남은 건 그날 밤 글을 다 읽고 잠들었다가 잠자리가 바뀌어 뒤척거리다 일어나서 다시 전화기를 들여다봤을 때, 이태원에서 사고가 나서 몇 명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 속보가 포털 홈에 떠 있었다. 그렇다. 그날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밤이었다.
책을 읽고 그때 그 글들이 무척 재미있었던 기억에 다시 읽어볼까 하여 블로그를 찾아봤더니, 이 책 말고 다른 책이 이미 출판되어서 그런가 블로그가 없어졌다. 그때 난 다른 주소를 찾아서 글을 읽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검색을 해서 흘러들어 갔는지 통 찾을 수가 없다. 다시 그 글들을 전화기로 읽으면 그날 밤에 계속 숫자가 늘어나던 사망자와 공식/비공식매체 가리지 않고 여과 없이 온갖 사이버 공간에 떠돌던 끔찍했던 영상을 몇 개 보고는 꽤 긴 시간 약한 트라우마에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그만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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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형 <인생은 파랑>
성우 남도형 님의 에세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보고 엔딩 크레디트에 ’성우 남도형‘이라고 나와 찾아봤더니 아주 유명한 성우였다. 83년생인데 19년 차 성우이다. 4년 전에 시작한 유튜브는 700개 넘는 영상을 업로드해서 구독자가 50만 명에 육박하고, 19년간 오디오북을 2만 권(!!!!!) 녹음했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일중독자의 성우 연기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3대 미키마우스라는…1대는 무려 장광 성우님, 2대는 디카프리오 전담 강수진 성우님이라니 참 영광스러운 역할이다.
그래.. 이렇게 열심히 사시니 결혼을 못하셨지.. ㅠㅠ
자기 목소리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직업.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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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기 <온에어, 미국은 내전중>
분열된 미국의 모습을 KBS PD특파원인 저자가 그려냈다.
올해 5월에 나온 책인데 그 뒤로 민주당 대선후보가 바뀌는 대사건이 일어나서 읽는 나도, 아마 저자분도 바이든 내용에 좀 머쓱하지 않았을까 ㅎㅎ
민주당 후보가 바뀌어도 이쪽엔 트럼프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책 내용이 계속 유효하다. 사실상 미국의 분열은 트럼프 등장 이후에 가속화됐으니까.
엄청난 빈부격차와 지역 간 격차, 총기, 마약, 젠트리피케이션, 학교폭력, 이민자, 인종차별 등의 다양한 문제가 불거져 나오지만 여전히 초강대국 지위를 잃지 않고 압도적인 총생산과 기술력과 군사규모를 자랑하는 특이한 나라. 국토 면적이 넓고 자원과 인구가 많은 것이 이 나라의 힘의 원천이려나. 아, 달러와 영어.
곧 있을 대선 결과가 궁금하다. 처음 트럼프 당선된 날 마침 미국 출장 중이어서 현지 직원들을 놀려줬던 기억, 그 차가운 늦가을의 공기와 넓은 지평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데, 그 뒤로 이직을 두 번이나 했다니! 참 세월 빠르다. 그러니까 8년 전이라는 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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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폐월: 초선전>
박서련 작가님은 어느 해인가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라는 단편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임 실력이 곧 권력인 남자 중학생 세계에서 아들에게 권력을 안겨주기 위해 엄마가 나서서 롤을 배우는 이야기.
그 뒤로 오디오북으로 들은 <체공녀 강주룡>은 일제강점기 평양 을밀대 위에서 아마도 최초로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고공농성을 했다고 짧은 기록이 남은 강주룡의 이야기이다. 혼인 후 독립군 시절과 이후 평양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겪는 서사의 빠른 전개와 주인공의 명확한 감정 흐름 덕택에 오디오북으로 들어도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워낙 성우들이 이북 사투리를 워낙 잘 구사하기도 했고. (“일 없습네다.”)
<폐월: 초선전>은 여성 인물 중 가장 비중이 큰 편이지만 다른 곳에 어떤 여인이 등장하는가 짚어보면 거의 유일한 여성 인물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초선의 이야기이다. (유비의 미부인/감부인, 조조가 빼앗는 대교/소교 정도가 스쳐 지나가지만 단역 수준)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은 왕윤의 양녀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켜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 한다. 그 유명한 연환지계의 히로인.
어떻게 초선이 왕윤의 양녀가 됐고, 어떤 마음으로 왕윤을 위해 동탁과 여포에게 몸을 던졌고, 왕윤이 죽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해서 여생을 살아가게 됐는지 작가님의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강주룡의 인생을 마른미역 불리듯, 다섯 빵과 두 물고기로 수천 명을 먹이듯 짧은 사실은 뚝딱 책 한 권 분량으로 부풀어 오른다. 물론 그 안은 비어있지 않고 가득 차있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도 오딧세이아에 짧게 등장하는 키르케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을 담아 한 독립된 여성의 일대기로 써 내려간, 이 책과 유사한 컨셉의 책이었다. 그리스 신화나 삼국지 모두 어릴 때부터 내가 즐겨 읽던 책이고, 그 이야기들에서 파생되는 다른 이야기들을 좋은 작가가 써낸 책이라 꼼짝없이 사로잡혀서 읽어 내려간 것 같다.
스포가 될 수도 있어 자세한 서술은 않겠지만, 초선은 결국 삶을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작가는 이를 ‘이상하지?’라고 묻는다. 아뇨,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좀 더 잘 살아도 좋았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 무척 행복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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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분노의 양치질만 잘하는 탤런트(TV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배우는 왠지 ‘탤런트’라고 불러야 할 것 같잖아)인 줄만 알았던 차인표 님이 알고 보니 소설을 세 권이나 출판한 작가였다니…
초반은 어린이용 동화 느낌이었는데 이야기가 풀려나갈수록 힘이 실리고 다양한 인물들이 잘 살아났다. 백두산 호랑이 관련한 내용은 영화 <대호>나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도 다뤄졌지만, 이렇게 잔잔하고 힘 있지만 감성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니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거의 20년 전에 쓴 글이 이제야 빛을 보다니 작가님도 몹시 기쁠 것 같다. 티브이에 출연하는 사람 중 몇 안 되는 올곧은 느낌을 주는 분이라 뭐든 잘 되면 좋겠다. 연기든 집필이든 활발한 작품활동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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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재단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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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크리스마스 타일>을 읽고 나서 난 앞으로 무조건 이 작가님 편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에 나온 짧은 소설 모음집이 눈에 띄어 금세 읽었다. 조금 날것의 글 느낌이지만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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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민 <멜라닌>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
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블루멜라닌이라는 파란색 피부를 가지고 베트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한국인 소년의 성장기이다.
워낙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유명한 미국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어서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나,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 역시 엄청난 인종차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깜둥이, 튀기, 짱개 등의 단어에서 물씬 풍기는 타국 출신 혹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의 이미지는 출산율이 0.6까지 떨어진 인구 소멸의 단계까지 이르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결혼적령기 남녀 100쌍에게서 60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 6명의 아이가 남녀 반반이라 30쌍이 생긴다 가정하면 다시 18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총 200명에서 두 세대를 거치면 18명으로 줄어드는 인구구조이다.) 이 와중에 인구를 늘리려면 외국인 이민을 받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넘어오는 인력들은 우리나라의 저임금노동을 담당하면서 정부 제도의 지원은 일부 받지만 사회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국가의 주류인 인종이 아닌 외국인을 차별하는 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의 일은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은 워낙 유명하고… 유럽연합 여러 나라들도 비슷한 문제 때문에 자주 뉴스에 등장한다.
주인공 재일이는 피부색과 생김새로 이미 어딜 가나 차별을 받게 된다. 아버지의 강요로 떠난 미국에서도 많은 차별을 겪는다. 그러나 그의 곁엔 진심으로 그를 대하는 삼촌, 몇몇 친구가 있어서 그의 성장을 돕는다.
안타깝게 소중한 주변 인물 몇은 안 좋은 일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어른이 된다. 사실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아버지는 그를 걸림돌로 생각한다.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까웠다. 삶의 고단함에 매여 자식을 위한 조금의 힘도 남지 않은 모습.
학교 안의 괴롭힘에서는 넷플릭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떠오르고, 미국 사회의 문제에선 얼마 전에 읽은 <내 이름은 데몬 코퍼필드>가 떠오른다. 물론 실제 미국인이 만든 콘텐츠와 비교하면 그 깊이에선 차이가 나지만, 이 책은 배경이 어디이든 차별받는 청소년이 그것을 어떻게는 이겨내보려 하는 과정이 중요해서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그나저나 작가님 미국 유학 다녀오셨나요? 미국 학생들 느낌 왜 이렇게 잘 살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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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시대예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의 작가 차인표 님의 2011년 소설. 나고단, 이보출, 박대수 세 남자가 막장으로 흘러가던 인생에서 희망을 찾아 살아나가는 이야기. IMF 시대의 불쌍한 가장들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세련된 문체는 아니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재미있게 읽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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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시대예보: 호명사회>를 읽기 전에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려고 빌려왔다. 이 글들의 메시지가 모두 와닿았고 이해되지 않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다 맞는 말이라 오히려 마음속에 남는 말이 없을 정도였다.
너무 술술 읽히는 글이 마치 밋밋한 140km/h 직구 같아서 쉽게 배트를 휘두르고 싶지만 아뿔싸 난 동네 야구연습장 100km/h 공도 못 쳐내는 하수다. 역시 보고 읽은 게 많으니까 눈만 높아져서는…
시대를 잘 올라타서 살고 있나 아님 시대에서 아무것도 못 남기며 살고 있나 걱정이 잠깐 됐지만 내일 회사에서 할 일이 많으니 그날 벌어 그날 사는 하루살이의 마음가짐으로 잠이나 푹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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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압도적인 퍼포먼스다. 대단한 필력이며 엄청난 속도감이다. 직유와 은유가 어느 하나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 문장 안에 몇 개의 동일한 품사를 나열하지만 산만하지 않다. 소위 말하는 떡밥을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회수해서 매조지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로도 충분히 힘 있는 소설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어두운 면이나 특정 성별의 힘듦이나 아직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유형의 사랑을 소재로 하지 않았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상 모든 바다>
재일교포/한국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주인공이 어느 아이돌의 덕후가 되어 발생한 사건으로 조금 더 혼란스러워진다. 작가는 아이돌 덕후의 세계를 어떻게 아는 거지..
<롤링 선더 러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는 솔로’의 포맷을 차용했는데 배경이 농장이라니 천재다…‘너희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좆같아졌어?’라는 워딩이 찰떡같다.
<전조등>
평소 속도로 글을 읽었는데 속독을 한 기분. ’전조등이 깨지게 되는 어떤 사건‘이라는 떡밥을 던졌는데 사뿐히 무시하고 지나가도 무방할 속도감.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세대를 거쳐 만나게 된 두 남녀의 빈곤 로맨스. “친하게 지내라”라는 먼 과거의 예언이 뒤늦게 이뤄지는 과정. 빈곤한 청춘 남녀의 삶을 직접 겪은 겁니까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본 겁니까 작가님…
<보편 교양>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책을 많이 읽음에도 항상 ‘난 지성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근원에는 ‘서울대 추천 고전 100선’따위의 고전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자격지심이 있다. 반대로 그 고전 중 일부라도 읽었으면 지적 허영심/자만심이 생기기도 한다. 주인공의 그 자격지심과 지적 허영심 사이를 교묘히 파고드는 영민한 고등학생 제자의 이야기가 빠르게 펼쳐진다. ‘난 지성인인가? 아니, 그냥 독서 중독자 정도 아닐까.‘
<로나, 우리의 별>
한 뮤지션의 20년간의 일대기가 또다시 빠른 속도로 그려진다.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주고 싶어 하는 로나가 꿋꿋이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흥미로운 건 그에 영향을 받거나 반응하는 닉네임들이 곳곳에 등장하는 형식이다. 마치 위대한 한 뮤지션의 일대기를 코멘터리 위주로 그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다.
<태엽은 12와 1/2바퀴>
그래서 사마귀는 누구고 검은 봉지 안에는 뭐가 들어있었냐고! 이 떡밥은 회수해 주셨어야죠 작가님 흑흑… 제 마음대로 상상하겠습니다.
<무겁고 높은>
아주 무거운 바벨을 높이 들면 끝, 들고 나서는 놓아버리면 되는 역도라는 운동을 시작했으나 다시 마무리하게 되는 어린 학생의 이야기. 바벨을 놓듯이 운동을 놓는 과정이 쇠락한 강원도 어느 지역을(아마 정선인 듯. 작가님 고향이 강원도인가..) 배경으로 그려진다.
<팍스 아토미카>
이 작품은 읽히지 않아서 안 읽었다.
가둬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소설 잘 쓰는 작가다. 시대소설? 통속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거의 끝판왕이랄까. 그나저나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평생 잘 쓴 세 권의 책만 발표해도 충분하다고 하셨는데, 아닙니다 작가님.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소재가 무궁무진하게 나올 텐데요… 장편 안 쓰셔도 되니까 단편만 계속 발표해 주시면 저는 입 벌리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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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은랑전>
오래전 읽은 <종이 동물원>의 작가 켄 리우의 단편집. 그동안 <삼체>를 영어로 번역하셨군요! 똑똑한 양반.
넷플릭스 <블랙 미러>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어릴 때 헤어진 딸을 재회하여 함께 유적을 탐구하며 관계를 회복하다가 딸을 지키려 자신을 희생하는 우주 고고학자 아버지의 이야기 <메시지>, 일본에 떨어진 원폭은 사실 오키나와 출신 무녀의 후손이 ‘맥스웰의 악마’라는(칸막이가 있는 상자 안에서 공기 분자의 속도 차이를 관측하는 악마가 빠르거나 느린 분자를 각 칸에 모아서 빠른 쪽의 뜨거움과 느린 쪽의 차가움의 차이를 이용해 무제한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이게 대체 뭐냐 이과놈들아…) 개념을 응용하여 두 혼령을 우라늄 238과 우라늄 235 분자 구분에 활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맥스웰의 악마>, 차원을 갈라 공간을 얻는 능력을 배운 은랑의 이야기 <은랑전>, 총기난사로 희생된 딸을 추모하려고 알고리즘 전문가에게 맡긴 모든 디지털 자료가 반대편의 인터넷 트롤링에서 사용되어 음모론과 딥페이크를 통해 악용되며 결국 추모를 원한 엄마를 무너뜨리는 이야기 <추모와 기도>, 가상현실과 블록체인기술을 통해 지구의 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을 실제 체험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전문가와 이를 이용하여 기부를 늘리려 하는 국제구호기구 담당자인 친구의 이야기 <비잔티움 엠퍼시움> 등 문과생은 집중해서 읽어도 100% 이해하려면 몇 번이고 앞 페이지로 돌아가야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진짜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를 경계심을 품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