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 생존장병의 PTSD를 다룬 책. 46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58명이 군인이 생존했다.
1. 사실 천안함 사건은 하필 동일한 형태 (국가의 관리 부재 및 미흡한 대처, 배의 침몰)의 사건인 세월호 참사와 많이 비교됐고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이 소모된 사건이다. '보수는 이용했고 진보는 외면했다'라는 한 생존장병의 말과 같이 정치 뉴스에 더 많이 보인 기억이 난다. 세월호를 조롱하는 댓글에 교묘하게 사용된 모습도 기억난다. 군인이든 학생이든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 그 누구도 피로감을 느낄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느낀다. 고백하자면, 천안함 사건이 잘 기억나지 않고 뇌리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그 아이들은 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고, 사후에 일부 반대 진영(이라기보다는 인간임을 포기한 그 어떤 생물들)이 천안함을 들먹이며 세월호를 애써 깎아내리는 모습에 마음속에 반감까지 생겼다.
그렇다. 저자가 책에서도 지적하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관점의 매체를 균형 있게 보고 읽어도 없어지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건설적인 접촉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직관이나 감각보다 충분한 사고를 통해 정보를 해석하려고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는 거머리 같은 확증편향. 고민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나에겐 가장 고치기 어려운 오류가 확증편향이다. 계속 고민해야지. 같은 목숨이 가라앉았고, 같은 목숨이 살아남아 숨 쉬고 있을 뿐 그 의미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2.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참사는 대중에게 잊힌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국민들의 허망한 죽음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 죽음들은 생존경쟁과 발전속도에 휩쓸려 잊혀져간다. 죽음마저 쉽게 잊혀지는 사회에서 그 참사의 생존자들이 기억되고, 아니, 인식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억울한 고통을 겪은 뒤 이해도 치유도 받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버려진 이들이 거대한 퇴적층처럼 겹겹이 쌓여 한국 사회의 지층을 이루고 있'다.
패잔병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국가유공자 등록/상이연금 등의 제도적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군, 피해자의 고통을 모욕하는 데에 앞장서는 정부. 그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로 벌써 14년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의 기회를 놓치고 나서야 '인간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까?
3.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이해받고, 정부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는커녕 "넌 그래도 살아있잖아"라고 사람들에게 그 살아있음이 죽은 자의 몫을 빼앗은 것이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생존자들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 실제 생존장병들 중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비율이 높다고 한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나 <허트 로커>에서 잘 그려진 전쟁 후 트라우마는 실로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붕괴를 보여준다. 그런데 생존장병들의 트라우마 비율은 통상적인 전쟁 후 트라우마 비율보다 더 높았다. 자살은 삶의 제반 상황들이 그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을 때 발생하는 사건인데 - 선택이라고 말하지 말자는 운동도 있더라. 그놈의 극단적 선택. 자살은 선택지가 아니다. - 심리적 지지, 제도적 지원, 사회적 시선 중 하나라도 생존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예산이 없다, 정신력이 나약해서 그런다,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재수 없는 x라는 변명과 비난은 이제 그만 내려놓자.
4. 전 보훈처장 피우진 중령의 고통스러운 싸움으로 (유방이 있을 때는 성희롱의 대상, 유방암으로 유방을 제거하니 전투불능의 대상이라는 아이러니) 직업군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가 생기면 무조건 전역해야 했던 규정을 당사자가 계속 근무를 원할 경우엔 심사를 거쳐 근무 가능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개정되면서 이 책의 제목인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아직 수많은 미래의 잠재적 피해자들은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수학여행에서, 회식 후 귀갓길에, 핼러윈 축제에서, 귀경길에, 군복무 중에, 근무 중에, 그 모든 순간에 항상 죽음이 곁에 있다. 언제쯤 우린 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좀 더 안전하고 보호막이 되어줄 국가와 사회 안에서 살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