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성장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인재의 정의와 리밸런싱의 의미
Rebalancing :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원을 재조정하는 작업
한 스타트업이 시리즈 A 투자를 받고 조직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20명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팀은 어느새 100명 수준이 되었고, 팀장 역할도 생기고, 직무별 책임도 세분화되었다. 그런데 창업 초기부터 함께해 온 핵심 인재 한 명이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위기 상황에서 해결사처럼 움직였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팀의 일은 복잡해졌고, 의사결정에는 프로세스가 필요해졌다. 그가 주도하던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았고, 동료와의 충돌도 늘어났다. 결국 그는 이직을 선택했다.
많은 리더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핵심 인재’였던 사람이, 조직이 성장하면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건 그 사람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조직의 요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회사의 성장 곡선은 단순히 규모의 변화가 아니다. 조직이 성장하면, 일의 성격과 문제 해결 방식, 협업의 방식이 모두 변한다. 그 변화에 따라 ‘적합한 인재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래리 그레이너(Larry Greiner)의 조직 성장 모델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기업의 성장 단계를 ‘창조 → 지시 → 위임 → 조정 → 협력’으로 설명하며, 각 단계에서 요구되는 리더십, 구조, 인재의 역량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 창업 초기에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실행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 확장기에는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이 중요해진다.
• 성숙 단계에 이르면 정량적으로 성과를 개선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때 조직은 스스로 반문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조직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이를 위해 어떤 인재상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바탕으로, 조직의 현재와 미래에 맞는 인재 정의를 재설계해야 한다.
• 과거에 성과를 냈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역할의 기대와 성공의 기준 또한 함께 바뀌어야 한다.
• 직무기술서 하나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조직이 구성원에게 기대하는 ‘일하는 방식’ 자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고 설계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기존 인재가 조직과 맞지 않게 되는 것을 실패나 개인의 한계로 보지 않는 태도다.
성장은 방향의 전환이며, 그 전환은 조직과 사람 모두에게 변화의 기회를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많은 조직이 성장을 이야기할 때,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성장이 본격화되었을 때 진짜 중요한 건, 사람이 아니라 ‘구성의 균형’이다.
리밸런싱은 단순한 인력 교체가 아니다. 기존 구성원과 새로운 역할 간의 조화를 재설계하고, 그 변화가 조직 내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관계를 조율하는 일이다.
조직이 리밸런싱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순간:
1. 역할이 분화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담당하던 초기와 달리, 조직이 커지면 업무는 분화되고 역할은 세분화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혼란은 구성원의 감정에서 발생한다.
“내가 하던 일이 줄어든다는 건,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가?
리더가 이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역할 변화는 구조가 아니라 정체성의 상실로 받아들여진다.
2. 새로운 직군과 기능이 도입될 때
데이터, 프로덕트, 브랜드 등 기존에 없던 영역이 새로 생기면, 기존 인재는 때로 위협을 느낀다.
예컨대, PM이 처음 도입된 조직에서 개발자가 “이제 누가 내 일에 간섭하는 거지?”라고 말한다면, 이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설명 부족이다.
3. 성과의 기준이 달라질 때
조직이 커지면, 일의 수준과 기대하는 성과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기존 구성원은 자신이 ‘덜 노력하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리더는 기대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기대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점을 소통해야 한다.
리밸런싱은 조직도의 수정이 아니라, 사람 간 신뢰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 역할의 경계를 명확히 하되, 협업의 연결 지점을 만들어야 하고,
• 기존 구성원의 맥락과 경험을 새로운 구조에서 어떻게 살릴지 고민해야 하며,
• 변화의 필요성을 감정적 언어로 전달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사람, 예전엔 진짜 잘했는데.”
이 말은 종종 구성원을 존중하는 듯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과거의 성과는 맥락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때의 조직 구조, 일의 방식, 기대 수준이 지금과 다르다면, ‘예전의 잘함’은 지금의 기대와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구성원은 자신이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도 갑자기 평가가 달라지고, 회의에서 발언의 무게가 줄어들고, 더 이상 중심에 있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심리적으로 이탈한다.
많은 리더들이 이 시점을 지나서야 문제를 인식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구성원이 마음속에서 회사를 떠난 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성원을 평가하기 전에 다음을 자문하는 것이다.
• 조직이 변화했을 때, 우리는 그 변화에 대해 구성원에게 충분히 설명했는가?
•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을 때, 기존 구성원이 이를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도왔는가?
• 역할 변화의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과 정체성을 함께 고려했는가?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변화보다 조직의 설계가 먼저 바뀌어야 할 수도 있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사람’에 대한 전략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전략의 중심에는 적합성에 대한 성찰과 관계의 설계가 있어야 한다.
리더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 조직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역량은 무엇인가?
• 기존 구성원은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역할 부여, 지속적 피드백)를 제공받고 있는가?
• 새로운 인재를 어떻게 기존 조직에 연결(온보딩)하고 있는가?
• 이 모든 변화 과정을 조직이 투명하고 존중감 있게 설명하고 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질문이다:
“이 사람과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성실히 답할 수 있는 조직은, 좋은 인재를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좋은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조직의 성장은 인재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변화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진짜 리더는 ‘누가 맞지 않는가’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 사람이다.
그 물음을 가진 조직은,
빠르게 커지는 조직이 아니라,
오래 가는 조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