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HR이 아니라 역량관리의 시대입니다.
마트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대신, 이제는 셀프 계산대에서 직접 바코드를 찍는 모습이 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빼곡한 책자를 뒤적이던 여행사 직원을 찾기보다, 스마트폰 앱으로 항공권과 숙소를 몇 번의 터치만으로 예약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이처럼 기술이 일상과 일자리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해왔습니다. 키오스크와 온라인 플랫폼, 자동화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편의를 더하는 것을 넘어, 특정 역할의 필요성을 줄이거나 업무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AI)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와 범위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AI는 단순히 계산원을 대체하는 키오스크나 예약 시스템을 넘어, 데이터 분석, 콘텐츠 생성, 복잡한 문제 해결 지원 등 과거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지적 노동까지 수행하며 '인당 생산성'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의 깊이와 속도는 과거의 기술 혁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이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용어로 묘사하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문명사적 전환을 야기하는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의 제목을 'Singularity'로 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AI로 인한 생산성 혁명과 그에 따른 인재 관리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요구는, 다가올 더 큰 변혁의 전조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특이점적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전환 앞에서, 과거 '사람'을 관리하던 방식, 즉 '인적 자원(Human Resource)' 중심의 접근법이 과연 미래에도 유효할까요? 과거 기업 경영의 핵심은 단연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제한된 자본과 기술력으로 경쟁해야 했던 스타트업에게 인재 확보와 관리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인재, 소위 '핵심 인재'를 찾아 영입하고, 육성하며, 그들이 떠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채용하는가가 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고,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러한 관점을 대변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도래는 이 익숙한 공식에 근본적인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AI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의 양과 질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며 '인당 생산성'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했던 데이터 분석, 콘텐츠 초안 작성, 단순 반복 작업 등 소위 '노동 집약적' 업무들은 점점 더 AI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업무 효율성이 개선되는 차원을 넘어, 기업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서 '어떤 핵심 역량(Competency)을 확보하고 조합하여 활용하는가'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뛰어난 개인 몇몇에 의존하기보다, 조직 전체가 필요한 역량을 유기적으로 갖추고 급변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적 자원 관리'라는 낡은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역량 관리(Competency Management)'라는 새로운 렌즈로 조직과 사람을 바라봐야 합니다.
AI가 가져온 가장 극적인 변화는 개인 수준의 생산성 향상입니다. 코파일럿(Copilot)과 같은 AI 비서는 개발자의 코딩 시간을 단축시키고, AI 기반 분석 툴은 데이터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복잡한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도록 돕습니다. 글쓰기 AI는 마케터의 콘텐츠 제작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는 단순히 개개인의 업무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특정 전문가만 수행 가능했던 고부가가치 업무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개인은 확보된 시간을 통해 더욱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활동, 혹은 AI와 협력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팀 수준에서도 변화는 명확합니다. AI 툴을 활용하여 팀원 간의 정보 공유, 협업 프로세스, 의사결정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관리 AI는 최적의 업무 분담과 일정 관리를 제안하고, 회의 요약 AI는 논의 결과를 효율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여 팀 전체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느냐가 팀의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뛰어난 개인들의 합이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매개로 역량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증폭되는 팀이 경쟁 우위를 갖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조직 전체의 생산성 패러다임이 전환됩니다. 과거에는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조직의 민첩성(Agility)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도 AI의 도움을 받아 과거 대규모 조직이 수행했던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조직 구조는 더욱 유연해지고 핵심 역량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업무는 자동화되고, 조직은 시장 변화와 새로운 기회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역량의 확보와 재배치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AI 시대의 생산성 변화는 우리가 사람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합니다. 기존의 'Human Resource' 관점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냅니다.
'인재 확보' 경쟁의 함정:
과거 우리는 소수의 '슈퍼스타'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물론 뛰어난 개인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AI는 평범한 개인의 역량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중간 수준의 역량을 가진 직원이 AI를 능숙하게 활용한다면, AI 활용 능력이 부족한 뛰어난 직원보다 특정 영역에서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즉, '누구'를 뽑느냐 만큼이나 '어떤 역량을 갖추도록 하고, 어떻게 AI와 협력하도록 할 것인가'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최고'를 찾는 것보다, 조직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정의하고, 그 역량을 갖춘 사람(혹은 갖출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찾거나 육성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고정된 직무 중심의 관리:
전통적인 HR은 명확하게 정의된 직무 기술서(Job Description)를 기반으로 사람을 채용하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AI는 직무의 경계를 허물고 요구되는 스킬셋을 끊임없이 변화시킵니다. 특정 소프트웨어 사용 능력이나 단순 반복 스킬은 언제든 AI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정된 직무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직의 목표 달성에 필요한 핵심 역량들을 정의하고, 이러한 역량들을 중심으로 역할을 유연하게 조합하고 재구성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개인은 하나의 고정된 직무가 아닌, 다양한 프로젝트와 과업에 자신의 역량을 기여하는 형태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리' 대상으로서의 인재:
'인적 자원 관리'라는 용어에는 사람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인재는 단순히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조직의 핵심 역량을 구성하고 AI와 협력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입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학습하고 성장하며 새로운 역량을 습득해야 합니다. 따라서 리더의 역할은 통제와 관리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고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조력자(Enabler)'이자 '코치(Coach)'로 변화해야 합니다.
AI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조직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기 위해, 경영자와 리더는 다음과 같은 관점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에서 '역량 포트폴리오'로:
조직을 단순히 '직원들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핵심 역량의 포트폴리오'로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조직이 보유한 역량은 무엇이며, 미래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어떤 역량이 부족하고, 어떻게 확보하거나 개발할 것인가? 특정 역량이 특정 개인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시스템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마치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듯, 조직의 목표와 전략에 맞춰 핵심 역량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최적화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기술적 역량(AI 활용 능력, 데이터 분석 등)뿐만 아니라,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비판적 사고, 창의성, 공감 능력, 윤리적 판단,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채용'에서 '역량 확보 및 개발'로:
신규 인력 채용 시, 단순히 과거의 경험이나 특정 스킬 보유 여부만을 보기보다는,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 AI 리터러시 등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역량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잠재력'과 '핵심 기반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외부 영입에만 의존하기보다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 강화(Upskilling) 및 재교육(Reskilling)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개인별 맞춤 학습 경로를 제공하며, 실제 업무를 통한 역량 개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정된 역할'에서 '유연한 역량 기반 역할'로:
전통적인 직급 체계나 고정된 직무 설명서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대신, 프로젝트나 과업 중심으로 필요한 역량들을 정의하고, 해당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유연하게 배치하고 협력하도록 하는 방식이 확산될 것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다양한 역할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조직의 민첩성을 높이고 개인에게는 성장과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개인 성과'에서 '역량 발휘와 기여도' 중심으로:
평가와 보상 시스템 또한 변화해야 합니다. 단순히 개인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했는지, 얼마나 많은 업무를 처리했는지를 넘어, 개인이 보유한 핵심 역량을 얼마나 잘 발휘하여 팀과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특히, AI를 포함한 다양한 도구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시너지를 창출했는지, 동료들과 어떻게 협력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것입니다.
'통제'에서 '자율과 지원'으로:
AI 시대의 인재들은 더 많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가치를 창출하기를 원합니다. 리더는 세세한 업무 지시와 통제에서 벗어나, 명확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한 자원과 정보를 지원하며, 구성원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실패를 용인하고 실험을 장려하는 문화를 조성하여, 구성원들이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활용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사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AI와 협력하여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과거의 '인적 자원 관리' 방식에 머무르는 것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직의 핵심 동력을 '사람'이라는 자원에서 '역량'이라는 능력으로 전환하여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역량이 우리 조직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가? 그 역량들을 어떻게 확보하고, 개발하며, 최적의 방식으로 조합하여 활용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AI 시대, 경영자와 리더가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Human Resource'에서 'Competency Management'로의 전환은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닙니다. 이는 조직의 운영 철학이자 전략이며,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적인 변화입니다. AI 시대의 파고를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면, 이제 과감하게 낡은 관점을 버리고 '역량 중심'으로 조직을 재설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