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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 Shortcut

빠른 길, 쉬운 길, 실패 없는 길

by Nickneim
빠르고 쉬운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일까?
우리는 성장을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1. 우리는 착각 속에 일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속도’다. 빠르게 MVP를 만들고, 빠르게 출시하고, 빠르게 검증해서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투자자도 속도를 요구하고, 리더도 속도에 집착하고, 구성원들도 속도가 곧 성과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빠른 것이 좋은 것일까? 빠르고 쉬운 방식으로 달성한 결과가 진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자주 '쉬운 길이 좋은 길'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 착각은 성장의 모래성을 만든다.

스타트업의 속도는 종종 착시다. 지표는 빠르게 움직이지만, 실제로 내실은 비어 있다. 외형은 성장하지만, 팀은 구조적으로 정렬되어 있지 않다. 고객은 들어오지만, 남지 않는다. 이 모든 현상은 ‘속도를 위해 본질을 생략한 대가’다.




2. 쉽게 이룬 결과는 누구나 복제할 수 있다

전략이 단순할수록 경쟁자도 모방하기 쉽다. 실행이 쉬울수록 비용도 낮고, 진입장벽도 낮아진다. 그래서 쉽게 성취한 성과는 오래 가지 못한다. 진짜 경쟁력은 ‘어렵고 느리게 만들어낸 복제 불가능한 구조’에서 나온다.


쉬운 길을 택하면 빠른 반응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객은 빠르게 반응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떠난다. 내부는 단순한 성과에 익숙해지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잃는다.

초기에는 실행력이 곧 전략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일단 시작하고, 데이터로 검증하고, 피벗하며 방향을 정하라는 조언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접근법은 ‘학습 가능한 실패’에만 효과적일 뿐, 전략적 설계가 필요한 구조 문제에는 오히려 위험하다.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프레임이 없다면, 그 실패는 조직의 체력만 소진시킨다.




3. 빠른 길의 환상: 위워크 사례

위워크는 2010년 아담 뉴먼(Adam Neumann)과 미겔 맥켈비(Miguel McKelvey)가 뉴욕에서 설립한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일의 미래를 재정의한다'는 비전을 내세우며, 단순한 사무실 임대가 아닌 커뮤니티 기반의 공간 플랫폼을 표방했다. 초기에는 친환경 코워킹 스페이스 ‘그린데스크(GreenDesk)’를 운영한 경험을 기반으로, 사용자 경험과 브랜드에 집중한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부터는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를 발판 삼아 글로벌 확장에 나섰고, 2018년 기업가치는 47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수익성보다는 외형 확장에 집착한 전략은 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고정 임대 계약으로 공간을 확보한 뒤 이를 단기 재임대하는 구조는 고비용 리스크를 키웠고, 운영 효율성보다는 속도와 확장 중심의 의사결정이 반복되었다.

2019년 IPO를 추진하던 위워크는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의문을 받기 시작했다. 회사의 재무구조는 적자였고, 아담 뉴먼의 비상식적인 리더십 스타일과 거버넌스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자산의 개인적 활용, 가족 구성원의 경영 참여 등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고, IPO는 결국 철회되었다. 이후 뉴먼은 CEO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후 위워크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수익성이 낮은 지점을 폐쇄하고 인력을 감축했다. 2021년에는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방식으로 우회 상장에 성공했으나 기업가치는 9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23년, 회사가 18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미국 법원에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맞이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근무 확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위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에 치명타를 입혔다. 결국 빠르게 부풀려진 가치와 속도 중심의 성장 전략은 위기의 순간 버티지 못했다.

위워크는 '빠르고 쉬운 길'이 결코 지속 가능한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대표 사례다. 외형적 성장, 브랜딩, 투자 유치는 성공했지만, 수익 구조와 조직 운영, 리더십 설계라는 본질적 기반이 부실한 조직은 위기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4. 느린 길의 전략: 당근마켓 사례

당근마켓은 2015년 김재현, 김용현 공동대표가 창업한 지역 기반 C2C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초기에는 '판교장터'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목표는 단순한 물품 거래를 넘어선 지역 커뮤니티 구축이었다. 사용자 인증, 동네인증, 평판 시스템 등을 통해 플랫폼의 신뢰 기반을 설계하는 데 집중했고, 외형 확장보다 사용자의 반복 거래와 체류 시간을 높이는 데 전략적 초점을 맞췄다.

2018년부터 전국 단위 서비스로 확장했지만, 이 확장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었다. 각 지역의 거래 빈도, 품목 특성, 커뮤니티 문화 등을 분석하여 확산 속도와 운영 방식을 조절했다. 특히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지역별 맞춤 알림과 추천 기능을 통해 정착률과 재방문율을 높였으며, 이는 단기간 성장에 비해 더 안정적인 성장 곡선을 가능하게 했다.

수익 모델도 신중하게 다뤘다. 2020년부터 '당근알바', '지역 상점 광고', '동네생활'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지역 중심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이 시기 기준으로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평균 앱 체류 시간은 타 거래 앱 대비 2배 이상이라는 결과를 보여줬다.

2023년에는 주요 수익 부문인 지역 광고 수익이 큰 폭으로 성장하면서 재무 지표가 안정화되었고, 주요 수익 지표가 흑자 전환에 가까운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이러한 정성적·정량적 성장 지표는 단기간 내 외형 확장을 시도하기보다, 느리더라도 사용자와 지역 상권 간의 정합성과 재사용 구조를 설계한 결과로 분석된다.

당근마켓은 겉으로는 빠른 확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간의 사용자 학습과 시장 구조에 대한 반복적 설계가 축적된 결과다. 사용자의 반복성, 지역 상점과의 연계성, 광고 클릭율 개선, 체류 시간 증가 등의 지표는 조직 전체가 '느리고 복잡한 길'을 선택한 결과임을 증명하고 있다.




5. 실패 없는 길은 없다

모든 기업은 실패한다. 다만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빠른 길과 쉬운 길은 실패를 외면하게 만든다. 실패는 비효율이고, 속도를 늦추는 장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직이 실패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학습하고, 구조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때 성장의 방향이 바뀐다. 느리고 복잡한 방식은 실패를 전제로 한 설계다. 바로 그것이 진짜 경쟁력을 만드는 방식이다.

실패를 감당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실패를 분석할 수 있는 정보 구조.

둘째, 실패 이후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리더십.

셋째, 실패한 사람을 낙오시키지 않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문화.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실패는 학습이 아니라 공포가 된다.




6. 빠른 길을 택할수록 본질은 생략된다

속도는 판단을 생략하게 만든다. 더 빨리 하려면 덜 고민해야 하고, 덜 설계해야 하며, 덜 검토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을 미룬 채 실행만 반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략된 질문은 나중에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 문제를 푸는 게 정말 우리의 전략과 맞는가?

이 방식이 반복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가?

지금의 속도가 내년에도 유효할 것인가?

이 질문들을 생략한 조직은 빠르게 성장해도, 방향을 잃는다. 본질을 건너뛴 결과는 지연된 붕괴다.




7. 진짜 경쟁력은 견디는 능력이다

성장은 견디는 것이다. 혼란을 견디고, 실수를 견디고, 정렬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능력이 없다면 조직은 깊어지지 않는다. 깊어지지 않은 조직은 넓어질 수 없다. 넓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유지하려면 구조가 필요하다. 구조는 속도로는 만들 수 없다. 설계로만 만들 수 있다.

견디는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일의 목적과 기준이 명확하다

리더십이 일관된 기준을 유지한다

실패가 정제되어 다음 전략으로 환원된다

속도보다 정렬을 우선한다

견디는 능력을 가진 조직만이 위기 속에서도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8. 우리는 어떤 조직을 설계해야 하는가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면, 느리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쉽게 실행하고 싶다면, 어렵게 설계해야 한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조직은 시스템이다. 단순히 사람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라, 방향과 기준과 반복 가능한 구조로 엮인 하나의 생명체다. 이 시스템은 속도로 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설계와 수많은 시행착오로 완성된다.

조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지금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며, 지표를 빠르게 쌓는 길

지금 어렵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구조를 만드는 길

전자는 빠르지만 위험하고, 후자는 느리지만 깊다. 리더는 이 두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조직은 후자를 선택한 조직이다.


빠른 길은 있다. 하지만 그 길에 힘은 없다.
우리는 느리고, 어렵고, 실패 많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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