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설계하는 조직의 힘
효율은 빠르게 처리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설계된 흐름에서 온다.모든 팀에 동일한 시스템은 없다. 진짜 효율은 구조와 맥락의 조화로 만들어진다.
스타트업에서 '효율'은 거의 만능 키워드처럼 쓰인다. 결재라인이 길면 비효율적이다. 회의가 많으면 비효율적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리더들은 효율을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프로세스를 줄이고 승인 단계를 없애고 조직을 납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단순화된 조직은 종종 더 많은 실수, 더 잦은 커뮤니케이션 충돌, 더 낮은 몰입을 겪는다. 정제되지 않은 자율성은 방향을 잃게 하고, 절차 없는 속도는 불필요한 반복과 수습을 만든다.
효율은 단순화로 오지 않는다. 정확한 구조화와 조직의 현재 상황을 고려한 맥락에 맞는 설계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은 효율과 속도를 동일시한다. 그래서 빠르면 효율적인 줄 알고, 느리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속도가 곧 효율이라는 인식은 위험하다. 빠르게 실행된 잘못된 결정은 조직에 더 큰 손실을 남긴다. 반대로, 느리지만 신중하게 정렬된 의사결정은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
또한 절차가 많다고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다. 절차가 많지만 명확하고 일관성 있다면, 오히려 불확실성을 줄이고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이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고도화된 B2B SaaS나 하드웨어 기반의 제조 스타트업은 매우 정교한 품질 검토 체계와 단계별 승인 흐름을 갖고 있다. 단순히 속도보다는 일의 정확성과 반복 가능성을 효율의 정의로 삼는 것이다.
효율은 '빠르다 vs 느리다'의 이분법이 아니라, '적합하다 vs 부적합하다'의 문제다.
효율을 평가할 때,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프로세스는 현재 팀의 규모와 성장 단계에 적합한가?
이 승인 단계는 의사결정의 중요도나 리스크 수준에 비례하는가?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팀의 기능적 협업 방식과 맞는가?
예를 들어, 3인 팀은 모두가 모든 걸 알고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30인 조직에서는 정보 비대칭이 생기고, 역할 정리와 승인 체계가 없으면 협업 자체가 붕괴된다. 반대로, 작은 팀에 복잡한 프로세스를 도입하면 업무가 느려지고 동기마저 떨어진다.
또한 조직의 ‘프로덕트 중심도’ 또는 ‘전략 중심도’에 따라서도 효율의 기준은 달라진다. 전략 중심 조직은 통찰과 의사결정의 품질이 중요하고, 프로덕트 중심 조직은 기능별 속도와 정렬이 중요하다. 이 두 조직에 같은 절차를 적용하면 한쪽은 병목이 되고, 다른 한쪽은 방임이 된다.
효율은 절대적인 구조가 아니라, 상대적인 정합성의 문제다.
모든 팀에 적용 가능한 만능 효율 구조는 없다.
제품팀은 자율성과 실험 기반의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CX팀은 명확한 대응 기준과 빠른 보고 구조가 중요하다.
세일즈팀은 실적 중심 정렬과 리포팅 루틴이 핵심이다.
디자인팀은 피드백 회고와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여백이 필요하다.
즉, 효율은 기능(function)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그러나 많은 조직이 ‘효율화’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규칙과 구조를 일괄 적용한다.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어떤 팀은 속도가 붙지만, 어떤 팀은 오히려 역행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이는 구조의 문제라기보다, 맥락을 무시한 전면적 개편의 실패다.
팀의 맥락에 맞는 효율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무력해진다.
효율을 설계한다는 건 단순히 단계를 줄이거나, 권한을 몰아주거나, 조직을 나누는 일이 아니다.
진짜 설계는 다음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 팀은 어떤 유형의 결정에서 가장 많은 병목을 겪는가?
이 조직은 어떤 정보 흐름이 가장 자주 끊기는가?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정렬이 필요한가?
이 질문의 답을 바탕으로 프로세스, 승인 체계, 커뮤니케이션 방식, 책임 구조를 팀별로 조정하는 것이 효율 설계다.
예를 들어, 신사업 TFT에는 빠른 실행과 후속 보고 구조가 적절하고, 리스크가 높은 대외 파트너십에는 사전 승인 체계와 cross-check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실무자 중심으로 설계된 실행 흐름과, 리더 중심의 전략 조율 흐름은 별도로 분리되어야 한다.
이렇게 분화하고 맥락을 반영한 설계 없이는, 조직은 ‘모든 것에 하나의 답’을 적용하다 병목에 갇히고 만다.
효율적인 조직은 프로세스가 없는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팀의 현실과 역할에 맞는 리듬과 기준을 가진 조직이다.
빠른 실험이 필요한 팀에는 간결한 실행 기준과 후행 정산 구조를
품질 통제가 중요한 팀에는 명확한 승인 절차와 품질 기준을
협업이 많은 팀에는 역할을 선명히 나누고, 정기적인 싱크를
또한, 조직의 성숙도에 따라 리듬도 조정되어야 한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주간 단위로 결정과 실행이 반복되지만, 시리즈 B 이후에는 분기 단위 목표, 월간 리뷰, 주간 싱크 등 복합 리듬이 필요하다.
조직은 리듬이 있어야 에너지를 모을 수 있고, 그 리듬은 상황에 따라 맞춰져야 한다.
효율적인 팀을 만드는 리더는 단순히 “이건 복잡해”, “이건 느려”라는 느낌에 기대지 않는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시스템을 진단한다:
프로세스와 구조는 팀의 전략과 연결되어 있는가?
정보가 병목되지 않고 순환되는가?
책임은 위임되어 있고, 피드백은 순환되는가?
리더는 조직을 단순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에너지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 구조는 팀별 기능, 성장 단계, 결정 중요도, 리스크 수준 등을 고려해 유연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효율은 단순함이 아니라, 맥락에 대한 정교한 이해의 결과다.
정적인 매뉴얼은 조직을 보호하지 않는다. 프로세스와 시스템은 살아있는 조직에 맞게 진화하고 조정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구성원 수가 바뀌었을 때,
리더십의 무게중심이 바뀌었을 때,
팀의 역할과 기능이 전환되었을 때,
그에 따라 효율의 기준과 판단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는 최적이었던 시스템이 오늘의 비효율을 만든다.
조직은 생물과 같다. 진화하지 않는 시스템은 정체를 만든다.
그리고 정체는 성장 정체로, 실행력 저하로, 결국 팀의 해체로 이어진다.
효율을 높이는 리더는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적합한 흐름을 설계하고, 병목을 해소하며, 실행 흐름을 정렬한다.
효율의 진짜 목적은 ‘더 빠르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낭비하고, 더 많이 정렬하는 것’이다.
결국 조직의 에너지를 일관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 진짜 효율이다.
이를 위해 리더는 구조적으로 다음을 점검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디서 막히는가?
어떤 단계에서 가장 자주 재작업이 발생하는가?
어떤 결정은 매번 상위 결재를 기다리며 병목이 되는가?
어떤 팀은 지나치게 절차화되고, 어떤 팀은 지나치게 방임되는가?
이 질문에 구조적으로 답하지 않는다면, 효율화는 명분 있는 혼란이 될 뿐이다.
이제 리더가 자문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직은 기능별로 다른 흐름과 기준을 설계하고 있는가?
어떤 팀은 과하게 단순화되어 있고, 어떤 팀은 불필요하게 복잡하지 않은가?
현재의 결재 구조, 커뮤니케이션 방식, 피드백 리듬은 이 팀의 상황에 맞는가?
우리는 ‘단순함’을 효율로 착각하고, ‘정확한 흐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효율은 단순한 감이 아니다. 설계의 결과이고, 리더의 판단력의 결과다.
진짜 효율은 맥락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그 맥락을 읽고 설계하는 것은 리더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