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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ing Behind OKRs

목표의 환상과 착각

by Nickneim
목표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스템과 방식이다.


1. OKR은 왜 매력적인가?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은 언뜻 보면 이상적인 도구다. 간결한 문장 하나로 조직의 방향을 설명하고, 명확한 수치로 진척도를 관리할 수 있다. 직원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각자의 목표가 상위 목표와 연결되는 그림은 그 자체로 조직의 ‘정렬(alignment)’을 상징한다.


구글, 인텔, 링크드인 같은 기업들이 OKR을 도입하고 성과를 냈다는 이야기는 많은 스타트업에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OKR은 하나의 ‘정답’처럼 받아들여졌다.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은 OKR을 도입했고, 내부 워크숍과 발표 자료에는 “우리는 OKR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필수처럼 붙었다.

OKR은 이처럼 ‘좋은 조직’의 상징처럼 기능한다. 하지만 이 매력은 강력한 착각을 낳는다. OKR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OKR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목표가 마치 ‘어떻게’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조직은 종종 목표를 명시하고 나면, 마치 그 자체가 실행 계획이자 해결 전략인 것처럼 오해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실행은 멈춘다.




2. 목표의 환상

OKR은 멋진 목표를 만든다. “우리는 시장 점유율을 2배로 늘린다”, “고객 이탈률을 50% 줄인다”, “서비스 만족도를 95점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같은 문장은 강한 메시지를 가진다. 명확하고, 도전적이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성원들은 이러한 목표가 자신들의 일에 미치는 영향력을 빠르게 인지하고, 감정적으로도 ‘함께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목표는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을 생략한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구조다. 목표는 문제를 정의할 수는 있지만,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 해결은 설계이고, 실행이고, 반복과 교정의 과정이다.


목표는 문서에 적힌 순간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만, 구체적인 방법이 없을 때 실행은 흐릿해진다. “목표는 멋진데, 현실은 멀다.” 이 간극은 조직의 피로도를 높인다. 구성원들은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때 OKR은 희망의 문장이 아니라 압박의 프레임이 된다.




3.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실행의 단절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OKR을 도입하면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실행의 단절이다.

목표는 문서로 존재하지만, 실무는 과거 방식 그대로 움직인다.


프로젝트는 OKR과 상관없이 기획되고,

미팅은 OKR을 검토하지 않은 채 진행되며,

우선순위는 언제나 급한 일에 의해 바뀐다.


OKR을 세웠다고 해서 조직의 운영 방식이 바뀌지는 않는다. 새로운 목표가 기존의 구조와 충돌할 때, 조직은 대부분 기존의 방식으로 회귀한다. 왜냐하면 OKR은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방향일 뿐이다.


이때 조직은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한다. “이번 분기 OKR을 보면 다 정리돼 있어요”, “우리 팀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같은 말들이 실행 없는 조직에서 반복된다. 그 결과 OKR은 실행의 동력이 아니라 회피의 근거가 된다. “이미 목표는 있다”는 말은 “더는 고민하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4. 수치와 지표의 착시

OKR의 ‘KR(Key Results)’는 대부분 수치 기반이다. 이는 명확성과 측정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수치가 문제의 본질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OKR은 오히려 조직의 시야를 좁히고 오해를 확산시킨다.

예를 들어,

전환율을 20% 높였지만, 전체 사용자는 줄고 있다.

고객 응답률은 개선됐지만, 불만 리뷰는 더 늘고 있다.

실행 수치는 상승했지만, 재구매율은 하락하고 있다.


지표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수치만으로 문제를 판단하면, 원인과 결과가 뒤섞이기 쉽다. OKR을 통해 '성과 관리'를 하겠다는 조직은 수치와 실행 사이의 맥락을 생략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지표는 목표가 아니라 증거다. 실행의 결과이며, 방향이 맞았는지를 확인하는 도구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조직은 OKR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에 갇혀 움직이는 조직이 된다.




5. OKR이 실패하는 다섯 가지 패턴

1. 목표는 있지만 실행 계획이 없다
아무리 좋은 목표도, 그것이 구체적인 실행 액션과 연결되지 않으면 조직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걸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략된 OKR은 그저 슬로건일 뿐이다.


2. 지표는 있지만 진단이 없다
수치만 존재하고, 왜 그 수치가 중요한지에 대한 해석이 없다면 KR은 비어 있는 껍데기다.
진단 없는 목표는 맥락을 무시하고, 변화에 둔감해진다.


3. 공유는 있지만 정렬이 없다
OKR을 전사 공유했지만, 실제 일은 목표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각자의 OKR이 위에서 내려온 문장일 뿐,
실행 흐름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 이럴 땐 OKR이 아니라 ‘OKR 장식물’만 존재한다.


4. 관리자는 있지만 책임자는 없다
OKR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있지만, 실제로 그 KR을 책임지고 결과를 만들어야 할 사람은 없다.
책임이 없는 목표는 항상 ‘누군가의 일’로 남는다.


5. 성과는 있지만 시스템이 없다
일시적인 성공은 있었다. 하지만 재현 가능한 방식은 없다. 성공은 사람에 의존했고, 목표는 개인의 역량으로 달성됐다. 이런 OKR은 사람은 지치고, 조직은 남는 게 없다.




6. OKR을 넘어서야 비로소 OKR이 작동한다

OKR은 목표 설정 도구가 아니라 운영 시스템의 일부여야 한다.


다시 말해 OKR이 작동하려면 다음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실행 리듬: OKR은 분기 단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간 단위의 실행 점검과 목표 기반의 일일 의사결정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피드백 구조: 목표에 대한 중간 점검, KR 진행률에 따른 회고와 교정,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채널과 시간이 필요하다.

책임의 명확화: 각 KR은 담당자와 책임자가 명확해야 하고, OKR 전체의 설계는 결국 실행과 결과에 대한 책임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 시스템이 없이 OKR을 세우면, OKR은 목표가 아니라 무력감의 문장이 된다. 특히 성장 중인 스타트업일수록 목표는 더 명확하고 예리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가’다.




7.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방식이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다. 시장에서 풀고자 하는 문제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실행의 문제, 구조의 문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등 수많은 내부 과제가 존재한다.

이 문제들은 OKR이라는 도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문제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다. 그 방식이 없다면, 목표는 반복될 뿐이고, 실망만 커진다.


목표는 위대할수록 위험하다. 구성원의 기대가 커지고, 그만큼의 시스템적 뒷받침이 없을 경우 조직의 신뢰는 무너진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뢰 기반의 실행 구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OKR은 좋은 말로 가득 찬 문서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OKR은 문제를 명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실행의 방식과 반복 가능한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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