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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fficiency Trap

경쟁력은 결국 효율이 아니라, 축적과 반복을 견딘 시간이다.

by Nickneim


1. “쉽지 않네”라는 말의 정서

최근 직장 내에서 특히 스타트업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는 “쉽지 않네”다. 단순히 일이 어렵다는 의미를 넘어, 이 표현은 우리가 당연하게 기대했던 효율성과 결과의 간극에서 오는 실망 혹은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보다 많은 리소스가 들어가네

기대했던 만큼 결과가 빨리 안 나오네

결국에는 다시 해야하네


즉, “쉽지 않네”는 ‘어렵다’의 동의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효율성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투입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의 표현이다.




2. 우리는 언제부터 모든 것을 가성비로 보기 시작했나

스타트업은 리소스가 근본적으로 적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게 된다. 적은 시간, 적은 비용,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은 자연스럽다. ‘가성비’는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전략이 ‘모든 것’에 적용될 때 문제가 생긴다.

신제품/기능 출시: “최대한 빠르게 MVP 만들어서 피드백 받자”

인재 채용: “즉시 투입 가능한 사람 뽑자”

업무 배분: “그건 이 사람이 기존에 하던 거니까 그냥 붙이자”


이처럼 효율은 사고의 기본 프레임이 된다. 문제는 이 프레임이 일의 본질이나 필요 리소스를 재기 전에 ‘가성비’를 먼저 요구한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낸다”는 말은 전략일 수 있지만, 그것이 철학이 될 때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3. 효율성의 언어가 지배할 때 생기는 일

효율성은 항상 결과 중심 언어를 만든다:

“결과부터 보자”

“그게 당장 성과로 연결돼?”

“시간 너무 오래 걸리는데?”

이런 언어는 실행을 빠르게 만들지만, 동시에 실력 형성의 시간 즉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기 위한 쌓이는 시간을 무시하게 만든다.

학습이 필요한 시간, 맥락을 파악하는 시간,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은 ‘비효율’로 간주된다. 결국, 효율을 앞세운 조직은 결과는 요구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낼 ‘과정’에는 인색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만든다:

구성원은 빠른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 빠른 결과가 나오지 못함에 대해 조직과 스스로 에게 압박을 받으며 빠르게 탈진하거나 무기력해진다.

리더는 인재를 교체하려 한다. 적응하는 시간, 학습하는 시간은 모두 리소스의 낭비로 받아들여지며 사람을 교체해서 결과를 빠르게 내려고 한다. 다만 여기서도 최소의 리소스를 써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비용의 인재만을 채용한다.

조직은 장기적 경쟁력을 만들지 못한다. 단기적 성과만의 유일한 성과이므로 장기적 성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비효율로 판단하며 배척한다. 장기적 투자와 목표는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비합리적 사고이며 당장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변명으로 생각하게 된다.




4. 실력은 비효율의 축적에서 나온다

진짜 실력은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진짜 실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빠르게 만들어질 수가 없다.


실력은 다음의 요소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일을 여러 방식으로 시도해보는 시행착오

스스로 결과를 해석하고 개선해보는 학습

다양한 맥락 속에서 판단을 축적하는 경험


이 모든 것은 시간과 반복을 전제로 한다.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실력은 자라지 않는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특정 팀이 성과를 내는 것은 그 팀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비효율의 과정을 겪으며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 루틴과 의사결정의 방향성과 예측 가능성,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적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 상황, 변화 상황, 확장 국면에서 그 격차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5. 축적되지 않는 조직의 특징

효율을 맹신하고, 반복을 무시하며, 리소스만 최소화하려는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실행은 빠르지만 학습이 없다. 문제를 해결한 방식에 학습이 없었으므로 비슷한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조금의 변수나 상황이 생기면 과거에 성공했던 실행의 방식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담당자는 자주 바뀌고, 지식은 사라진다. 새로운 담당자는 맥락과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고 문제해결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시도는 많지만, 노하우는 축적되지 않는다.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노하우는 남더라도 조직과 팀의 노하우가 되지 못하고 개인의 역량과 의지에만 머무르는 성과를 내게 된다. 그리고 그나마도 개인이 떠남에 따라 모든 지식과 노하우는 증발한다.

같은 문제를 계속 반복하고,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은 조직, 시스템, 구조가 아닌 개인의 문제가 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남게 된다. 즉 해결할 수 없는 원인만 남고 아무도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조직 전체의 문제 해결력이 증가하지 않는다.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무능력이기 때문에 어렵고 오래걸리는 “쉽지 않네”로 대표되는 문제는 배제된다. 결국 쉬운 문제를 다 풀게 되면 정말 쉽지 않은 문제들만 남게 되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그 결과, 조직은 외형적 성장은 하더라도 내실은 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정 규모를 넘으면 바로 ‘한계’가 찾아온다. 왜냐하면 축적 없는 조직은 문제 해결력이 멈춰 있기 때문이다.




6. 진짜 경쟁력은 '투입'에서 나온다

우리는 경쟁력을 결과로 판단하지만, 실질적인 경쟁력은 투입된 인풋의 구조에서 결정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요소가 축적되어야 한다:

문제 해결 과정에 소요된 시간과 반복 횟수

팀 단위에서 형성된 정렬, 피드백, 루틴의 방식

실패를 통한 학습하고 새롭게 적용한 피드백 기록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

이러한 요소들이 조직의 ‘총 투입량’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총투입량이 시스템 격차, 실력 격차, 결과 격차를 만들어낸다.

스타트업은 자주 말한다. “우리는 대기업보다 인재 밀도가 높다.” 하지만 이 인재 밀도가 투입의 구조 그리고 문화와 결합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고 단기적 성과만을 추구하는 조직 역량을 갖추게 된다.




7. 리더가 해야 할 일: 견디는 구조 설계하기

리더가 조직에 만들어줘야 할 것은 ‘빠른 결과’가 아니라 ‘반복을 견딜 수 있는 구조’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리더의 구조 설계를 이끈다:

우리는 반복 가능한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갖고 있는가?

동일한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행 결과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구조가 있는가?

실행 주기 속에 회고와 개선이 포함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리더가 효율을 넘어서 축적의 프레임을 가지는 데 필요한 기준들이다.




8. “쉽지 않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쉽지 않네”라는 말이 조직에서 나올 때,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럼 하지 말자”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다시 보자”


전자는 효율의 프레임이고, 후자는 축적의 프레임이다.

“쉽지 않네”는 조직이 지금 단기 효율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회의가 아니라, 더 단단한 구조다. 더 많은 탓이 아니라, 더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 우리가 쉽게 하지 못하는 그 일이,
앞으로의 조직 경쟁력을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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