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한다고 다 하는 건 아니다. 일의 착각은 속도의 착각에서 시작된다.
“팀은 열심히 움직이는데, 왜 성과는 보이지 않을까?”
많은 리더들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회의는 매일 있고, 슬랙은 쉬지 않고 울린다. 누군가는 늘 데드라인에 쫓기고, 누군가는 뭔가를 ‘정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바쁘다. 그런데도 결과는 빈약하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 ‘일하는 척’이 조직문화가 된 경우에 발생한다. 보여주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을 압도하고, 속도감이 곧 유능함처럼 간주된다. 그리고 그 착각은 어느 순간 조직의 기본값이 된다.
스타트업이나 저성장기에 접어든 조직은 구조적으로 방어적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생존이 위협받고, 리소스는 부족하며, 실패에 대한 인내심은 줄어든다. 이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해결책은 속도감이다.
속도감은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가진다.
빠르게 뭔가를 한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나아 보인다
결과가 없어도, 노력은 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책임 회피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속도는 곧 진행이지, 진전은 아니다.
진짜 속도는 ‘정확한 문제 정의’와 ‘반복 제거’에서 나온다.
문제가 뭔지도 모른 채 시작한 일은 결국 다시 하게 된다
반복되는 실수는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보여도 제자리걸음이다
분석 없는 실행은 일의 질이 아니라 양만 늘린다
바쁜데 성과가 없다면, ‘빨리’가 아니라 ‘헛되이’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속도감의 착각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서 비롯된다.
툴 과잉: 슬랙, 노션, 지라, 피그마... 툴이 많을수록 일보다 ‘설명’이 업무가 된다
회의 중독: 결정은 없고 공유만 있다. 회의는 끝나고, 일은 시작되지 않는다
피상적 실행: 빠른 실행은 있으나, 실패 분석과 회고는 없다. 늘 처음처럼 일한다
상시 응답 체계: 실시간 응답은 깊은 몰입을 방해하고, 얕은 사고를 유도한다
이 모든 구조는 일을 하는 듯한 착각을 만든다. 즉 일의 해결보다는 일을 하는 과정에만 집중하게 되고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모두가 빠져든다. 결국 모두가 일을 열심히 하지만 해결되는 일은 없게 된다.
조직의 일의 구조와 방식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리더가 설계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리더가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바쁜 조직은 반복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이 문제는 왜 반복되고 있는가?
실행 결과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가?
이것은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익숙한 일인가?
이 질문들이 없다면, 리더는 팀에게 바쁜 하루는 줄 수 있어도, 의미 있는 성장은 줄 수 없다. 결국 반복되는 문제 해결의 과정의 연속에서 성장은 사라지고 비효율과 바쁨의 허울만 남게 된다.
즉 방향 없이 바쁜 조직은 리더의 역량 부족을 의미한다.
정말 빠른 팀은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한다. 올바르지 않은 문제정의는 이후의 모든 실행의 어긋난 방향성을 만들고 리소스의 낭비를 만들 수 있다. 완벽한 문제정의를 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문제정의의 방식을 추구하고 고도화 해나가야 한다.
실행 후 반드시 회고한다. 회고 없는 실행은 학습과 성장을 만들지 않는다. 학습과 성장이 없는 팀은 이후에도 같은 문제에 동일한 리소스와 문제해결의 접근만 시도하게 된다.
실행은 작게, 설계는 반복 가능하게 한다. 실행이 굳어지면 관성을 만들고 관성을 되돌리거나 개선하는건 시작하는 것보다 어려움을 만들기도 한다. 실행의 과정에 있어 작은 실행을 통해 테스트하고 검증의 과정을 수반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지 않을 일을 먼저 정한다. 해야한다 보다 어려운 결정은 하지 않는 결정이다. 해야 하는 일만 많아지면 중요한 일을 해야할 여유가 없어 지기도 한다.
속도감 있는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속도의 방향을 가진 팀만이 존재할 뿐이다.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빠 보이는 일’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렬되지 않은 실행은 성실한 낭비다
의미 없는 회의는 책임의 회피다
반복되는 실패는 문제 정의 실패다
리더는 팀이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리듬과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리더십은 속도를 내는 게 아니라, 속도의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진짜 일은:
의미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반복하지 않게 설계하며,
정렬된 흐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면, 더 자주 멈춰야 한다.
그 길이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