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구조가 느림의 원인은 아니다. 중요한건 연결의 방식이다.
많은 조직이 규모가 커질수록 협업이 느려지고, 소통은 어려워지며, 결정은 멈춘다고 느낀다. 이때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은 '조직 구조'다. 부서를 쪼개거나, 라인을 단순화하거나, 계층을 줄이려 한다. 조직을 작게 만들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건 구조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구조 내부를 연결하는 방식, 즉 인터렉션(interaction)이 문제다.
복잡한 구조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빠르고, 단순한 구조도 단절되어 있으면 느리다.
속도를 결정하는 건 조직도의 선이 아니라, 그 선 위를 흐르는 신호의 질이다.
조직 내에서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행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그리고 조직과 조직 간의 '인터렉션'으로 이뤄진다. 협업의 속도와 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정보의 흐름이 투명한가?
의사결정이 명확하고 빠르게 이루어지는가?
조직 간의 목표와 사이클이 정렬되어 있는가?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한가?
리더는 연결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인터렉션은 구조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다. 조직도가 아무리 단순해도, 이 디자인이 없다면 일은 계속해서 어긋난다.
3.1 정보는 있는데, 접근할 수 없다
문서도 많고, 데이터도 있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제때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투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접근성과 탐색성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가 구조적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아 접근성이 낮으면 정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2 회의는 많은데, 결정은 없다
회의는 일의 중심이지만, 실행의 시작은 아니다. 많은 조직이 공유와 토론에 시간을 쓰면서도 정작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않는다. 회의 후에도 일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3.3 협업은 있지만, 정렬은 없다
서로 협업한다고 하지만, 팀 간 사이클이 맞지 않고 목표가 충돌한다. 이럴 경우, 인터렉션은 오히려 더 큰 피로를 만든다.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공통의 맥락 속에 서로를 위치시키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협업에도 각자의 호흡과 맥락, 기준과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렉션은 조직문화의 문제인 동시에 리더십의 산물이다. 리더의 관찰력, 구조 설계력, 연결자의 역할 수행 여부가 인터렉션의 질을 결정한다.
리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을 만들고 있는가?
리더는 정보가 필요한 곳에 흐르도록 하고 있는가?
리더는 중복된 일을 줄이고, 충돌을 정리하고 있는가?
리더는 일의 맥락과 목적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가?
리더십은 더 많은 일을 시키는 힘이 아니라, 더 좋은 인터렉션을 설계하는 힘이다.
흔히들 말한다. "우린 아직 작은 규모의 조직이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 수가 적다고 해서 인터렉션이 자동으로 원활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조직은 인터렉션의 미숙함이 더 큰 리스크가 된다.
모든 일을 구두로 처리해서 기록이 없다
리더가 직접 조율하지만, 피로도가 누적된다
각자가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실행하는 건, 빠르게 엉키는 길이 될 수 있다.
조직 구조는 선을 그리는 일이 아니다. 정보를 흐르게 만들고, 맥락을 정렬하며, 실행의 사이클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조직 구조의 문제는 대부분 '복잡성'이 아니라 '비설계성'이다. 연결이 없고, 기준이 없고, 흐름이 없기 때문에 느리고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구조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구조 안에서 무엇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구조는 느림의 원인이 아니다. 설계되지 않은 구조가 문제다.
조직은 점점 더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리더는 구조가 아니라 인터렉션을 설계해야 한다.
그 안에 협업의 속도와 밀도, 그리고 성과가 숨어 있다.